‘베트남 애들’ ‘스리랑카 애들’… 말부터 고치자
2026.07.19 16:05
새로고침(F4)- 환대(Feast) <4> 이주민의 ‘친정’ 된 구미국제교회
금요일 저녁이면 권주은(46) 박정림(46) 구미국제교회 목사 부부는 경북 경산의 한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루비니 페레라(33) 전북은행 행원의 다섯 살 딸 시해리 디한사를 태워 구미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서다. 루비니씨는 외국인 노동자를 상대하는 업무 특성상 주말 근무가 많고 남편도 교대근무를 해 주말 돌봄이 쉽지 않다.
구미에서 경산까지 편도로 60㎞ 남짓,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거리다. 지난달 갑작스럽게 시작된 돌봄이지만 권 목사 부부에게 낯선 일은 아니다. 아이는 금요일부터 사흘간 목사 부부와 지낸다. 일요일 밤 루비니씨가 근무를 마치면 다시 경산으로 데려다준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밤 10시를 넘길 때도 있다.
시해리는 두 사람을 ‘큰엄마’ ‘큰아빠’라 부른다. 누가 가르친 호칭이 아니다. 함께 먹고 자며 주말을 보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저절로 붙었다. 목사 부부는 루비니씨가 마땅한 돌봄 대책을 찾을 때까지 이 역할을 이어갈 생각이다.
구미국제교회의 환대는 정해진 계획에 따라 진행되는 사역이 아니다. 이주민의 삶에 빈틈이 생기면 그때그때 새로운 돌봄이 시작된다. 권 목사는 이를 “환대는 강도보다 빈도”라는 말로 설명했다.
루비니씨는 2015년 한국에 와 영남대에서 건축디자인을 공부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스리랑카로 돌아가 부모가 정해준 상대와 결혼했고 2022년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입국 뒤 격리 기간에 임신 사실을 알았다. 당시 남편은 비자가 두 차례 거부돼 함께 오지 못한 상태. 출산과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절실했지만 주변 동향인들도 저마다 낯선 땅에서 자기 삶을 꾸리기 바빴다.
지인의 소개로 목사 부부를 만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두 사람은 친정 식구처럼 병원 진료에 동행하고 출산 준비를 도왔다. 아이가 태어난 뒤엔 육아도 나눠 맡았다. 루비니씨는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두 목사님은 그렇게 도와주면서도 한 번도 교회에 나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스스로 예배당을 찾은 건 두 사람을 만난 지 3년쯤 지나서였다. 루비니씨는 “도움을 받아서가 아니라 이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구미국제교회는 2006년 중국인 유학생 위주의 구미중국인교회로 시작했다. 2013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면서 외국인 노동자와 유학생, 결혼이주민이 함께 예배하는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지금까지 13개국 출신 이주민이 이 교회를 거쳐 갔고, 주일예배엔 보통 15~20명이 모인다.
교회는 이주민을 구미 예배당에 붙잡아두지 않는다. 멀리 이사한 교인이 자기 집에서 예배드리기를 원하면 그곳을 새로운 예배처로 삼는다. 매달 마지막 주일에는 구미 예배당 문을 아예 닫고 경북과 대구, 경남 의령 창원 마산 등에 흩어진 공동체를 찾아가 예배한다. 그곳에서 세례를 베풀고 함께 밥을 먹으며 모임을 이어간다. 권 목사는 “그들이 있는 곳에 예배처가 없다면 우리가 내려가면 된다”고 말했다.
권 목사는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 한국교회가 갖춰야 할 ‘다문화 감수성’을 강조한다. 다문화 감수성은 이주민에게 친절을 베푸는 태도에 그치지 않는다. 공동체 안에서 누가 말하고 결정하는지를 살피고, 국적과 언어에 따라 매겨진 서열을 바꾸는 일이다.
그는 한국인이 성인 이주노동자를 흔히 ‘애들’이라고 부르는 언어 습관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베트남 애들’ ‘스리랑카 애들’처럼 한국인 성인에게는 잘 쓰지 않을 표현을 이주민에게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데에는 이들을 동등한 이웃보다 관리하거나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보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어 “다문화 감수성은 상대를 어떤 말로 부르는지 살피는 데서 시작된다”며 “이주민에게 무엇을 더 해줄지 묻기 전에 교회 자신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부터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미국제교회의 주일예배 형식에도 다문화 감수성이 반영돼 있다. 설교와 기도는 쉬운 한국어로 한다. 성경 본문은 한국어로 먼저 읽은 뒤 참석자들이 각자의 모국어로 다시 읽는다. 매주 성찬을 나누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언어가 달라도 같은 빵과 잔을 나누며 한 공동체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박 목사는 “이곳에서 이주민은 도움받으러 온 손님이 아니라 예배를 함께 만드는 구성원”이라고 말했다.
교회의 환대는 예배당 밖에서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최근 스리랑카 출신 임신부 니푸니 바두시카(33)씨가 태아의 심장 이상 소견을 받았다. 박 목사는 대학병원 진료에 세 차례 동행했고 지난 17일 출산 때도 곁을 지켰다. 낯선 의료 체계와 빠르게 이어지는 설명 앞에서 불안해하는 산모를 혼자 두지 않기 위해서였다. 박 목사는 “립훈씨에게 필요했던 건 의학 지식이 아니라 옆에서 함께 설명을 듣고, 이해되지 않은 부분을 대신 물어봐 줄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교회가 모든 어려움을 대신 해결하지 않는 것도 원칙이다. 당사자와 이주민 공동체가 먼저 스스로 방법을 찾도록 기다리고, 그 힘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때 필요한 자원과 사람을 연결한다.
2024년 9월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수메트 반다라(52)씨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도 그랬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병원비 2500만원이 청구됐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같은 스리랑카 출신 친구들이었다. 이들은 1000만원을 모았다. 교회는 이랜드복지재단과 후원자를 연결해 나머지 비용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탰다.
오른쪽 몸이 마비됐던 수메트씨는 치료를 마치고 휠체어를 탄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 지난 5월 권 목사와 박 목사가 스리랑카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혼자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돼 있었다. 권 목사는 “교회가 일방적으로 구한 게 아니다. 이주민 공동체가 먼저 보여준 연대에 우리가 조금 보탰을 뿐”이라고 말했다.
“목사님, 낙 죽었어.”
2018년 가을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에게서 걸려 온 다급한 전화 한 통은 교회 사역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당시 32세였던 캄보디아 출신 낙 빅터씨는 부산의 한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철근 절단 작업을 하다 후진하던 굴착기에 치여 숨졌다. 고국에는 아내와 어린 딸이 있었다.
권 목사는 소식을 듣자마자 시신이 안치된 병원으로 달려갔다. 장례 절차를 맡아줄 사람도 마땅치 않았던 낙씨를 위해 교회가 가족 역할을 했다. 구미국제교회 교인들은 지금도 부활절이면 그의 이름을 부르며 한국에서 삶을 마친 이주민들을 함께 기억한다.
이 죽음 이후 교회의 목회 우선순위가 달라졌다.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이주민이 한국에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지 않도록 돕는 일이 먼저가 됐다. 권 목사는 “낯선 땅에서 건강히 일하고 살아가다 가족 품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 자체가 선교”라며 “예수 믿는 이의 삶을 곁에서 살아내는 데 힘을 기울이되 복음을 말로 꺼내는 일은 서두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태도는 교회의 환대 원칙과도 맞닿아 있다. 구미국제교회는 도움을 조건으로 교회 출석이나 신앙을 요구하지 않는다. 권 목사는 “도움을 줬으니 교회에 와야 한다고 기대하는 순간 환대는 거래가 된다”고 말했다. 교회의 역할은 이주민의 삶을 대신 책임지는 게 아니라 필요한 순간 곁에서 함께 걷는 데 있다는 설명이다.
박 목사는 “우리가 이들의 인생을 바꿔준 게 아니다. 그저 옆에 계속 있었을 뿐”이라며 “그 꾸준함이 결국 이들이 스스로 설 힘이 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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