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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안 사면 지각비만… 서울 밖에서 영끌 매수

2026.07.19 19:08

[부동산 전쟁 30대 리포트] ② 밀려나는 사람들
연합뉴스

지난 13일 서울 송파구 잠실지하환승센터. 오후 5시30분부터 버스를 기다리는 퇴근길 직장인들이 북적거렸다. 빨간 버스들은 저마다 앞 유리에 남양주, 구리, 하남 같은 경기도 행선지를 표시한 채 정류장에 들어섰다.

“안 그래도 집을 알아봤는데 당장은 돈이 부족해요. 그래도 2년 후에는 매매하고 싶어요. 그때쯤 가격이 조금 떨어져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구리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1991년생 개발자 A가 말했다. 현재 그가 살고 있는 구리의 한 빌라는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70만원.

남양주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도 놀이공원처럼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평내호평과 다산으로 가는 버스 대기 줄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던 지방 출신 1996년생 B가 말했다.

“잠실로 출퇴근하는데 이 주변에 구하려고 하니깐 너무 비싸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어요. 전세사기 당할까봐 전세는 무섭고, 월세는 점점 사라져가서 경기도로 갈 수밖에요.”

삼성역 인근에서 월세를 살던 1998년생 C도 월세 부담에 다시 구리 본가로 돌아갔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으로 출근하는 1997년생 D도 서울 월세 생활을 접고 구리 본가로 복귀했다. 월요일 저녁부터 퇴근길 버스 환승센터를 가득 채운 직장인들은 하나같이 “어쩔 수 없죠”라는 말만 반복했다.

“서울에서 하남, 하남에서 구리로”

1995년생 E는 2017년 고향인 경남에서 결혼한 뒤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태어난 아이가 희귀병 진단을 받았는데 지방에서는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 때문에 위생을 엄청 신경 썼는데 서울에서는 저희가 갖고 있는 금액으로는 깨끗한 집을 구할 수 없었어요. 반지하나 아주 오래된 집 정도만 가능했어요. 그래서 하남에 있는 원룸 오피스텔에서 월세를 시작했지요. 그런데 지하철이 완공되면서 집값이 너무 오르더라고요. 마침 구리에 조금 저렴하게 나온 방이 있어서 옮겼어요.”

전월세상한제로 한 번은 큰 부담을 막을 수 있었다. 문제는 두 번째 계약 기간이 종료되는 내년이다. “집주인이 내년부터는 주변 시세에 맞춰서 집값을 조금 올려야 될 것 같다고 했어요. 그러면 월세가 100만원이 넘을 것 같거든요. 1년 동안 부지런히 집을 알아봐야죠. 다음엔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할지….” E는 초조한 마음으로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밀려남’을 인정하기까지

“전세가 너무 지긋지긋했어요. 보증금 돌려받기도 어렵고. 서울은 너무 비싸서 일단 포기하고, 경기도권으로 가서 자가를 얻자, 이렇게 생각한 거죠.”

30대 직장인 F는 199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평생을 서울에서 보낸 그는 당연히 자신의 고향이자 보금자리인 이곳에 평생 머물 것이라고 생각하고 중랑구 면목동에 전세로 신혼집을 구했다. 하지만 결혼 5년 차인 F는 올해 결국 서울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경기도 남양주의 아파트를 매수했다.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이들의 선택 이면에는 ‘밀려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30대가 느끼는 서울은 대부분 일자리와 인프라, 교육 시설이 몰려 있는 거대한 ‘성’이다. 그럼에도 이 성벽을 넘어 경기도를 매수하는 건, 조금만 더 타이밍을 놓치면 이 시장마저도 진입할 기회를 영영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올해 1월 집을 매수한 F의 선택은 옳았다. 그가 매수한 ‘다산롯데캐슬’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9억원 언저리(34평형 기준)에 살 수 있었지만, 지난달에는 10억원을 넘겼다. 현재 가격은 10억5000만원이다. “전세 도중에 나오면서 복비(부동산 중개수수료)를 날리긴 했지만, 조금만 늦었어도 같은 집을 사는 데 1억원을 더 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F의 말에는 기쁨보다 안도감이 배어 있었다.

경기도 과천에 사는 1998년생 G는 월세로 살며 지역 주민에게만 주어진다는 신혼부부 청약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실제 주택청약은 희망고문에 가깝다. 조급해진 G는 최근엔 ‘영끌’로 살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주말마다 부동산을 찾아 돌아다닌다.

“주변에선 ‘문재인 시즌2’가 되면 모든 게 끝난다는 생각에 방어적으로 나서고 있는 거예요. 서울도 아니고 안양 동안구, 인덕원을 봤거든요. 6억~7억원 갖고 봤던 집들이 지금 최소 1억원씩 올라 있어요. 주변에서 ‘지금이라도 안 사면 지각비만 늘어난다’고 하니 미치겠는 거죠.”

“흙수저 개천용입니다. 꿈은 경기도”

“‘흙수저 개천용’입니다.” 이른바 ‘전문직 맞벌이 부부’인 1997년생 H의 자소 섞인 자기소개다. 고소득 전문직 청년들 중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경제적 자립에 성공한 이들은 스스로를 ‘흙수저 개천용’이라 부른다고 한다.

“우리 같은 흙수저 개천용이 지금 세상에서 제일 살아남기 힘든 것 같아요. 임대주택에도 못 들어가, 디딤돌 대출도 안 돼, 진짜 내 돈으로 모든 걸 해야 하는데 내가 아무리 벌어도 자산 가격이 더 빠르게 올라가니까 세상에서 버려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둘 다 약사 면허를 가진 부부는 서울 신림역 인근 10평대 빌라에서 월세로 살며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원래는 2년 정도 열심히 돈을 모은 다음에 경기도 하남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사이에 부동산이 폭등한 거예요. 그냥 1년 전에 주택담보대출 최대한 받고 신용대출까지 싹 끌어서 매수했으면 돈을 꽤 벌었겠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달려도 뒤처지는 것 같은 박탈감. H가 지난해 10월 알아보던 하남의 아파트는 최근 1년 사이 실거래가가 1억4000만원이나 올랐다.

H는 좌절감을 토로했다. “금수저들에 대한 혐오까지 생기려고 해요. 나처럼 아무것도 증여받지 못한 30대는 이제 겨우 자본을 모으기 시작하는데 어떡하란 말이에요. 그런데 뭐 어떻게 하겠어요. 그들은 부모 운이 좋았던 거죠.”

서울 서초구의 한 빌라에서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1989년생 I의 최종 꿈도 ‘경기도 아파트’다. 그는 2017년 문재인정부 때 서울의 한 나홀로 아파트 갭투자에 성공했고, 그 차익을 밑천으로 재개발을 노릴 수 있는 위치까지 왔다.

“재개발 얘기가 나오는 지역에 일부러 들어왔어요. 일종의 ‘몸테크’죠. 값이 오르거나 재개발이 되면 입주권은 팔고 그 돈으로 경기도 광명이나 수원 쪽에 대출 없는, 온전한 ‘내 명의’의 집을 사고 싶어요. 어차피 분담금을 부담할 여력도 안 될 거고요. 그냥 죽을 때까지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대출 없이 하나 사는 게 목표예요. 큰 꿈은 없어요.”

연봉 1000만원 올랐는데 1억원 뛴 집값

서울 금천구에 사는 1994년생 J는 성실한 직장인이다. 2021년 처음 직장에 입사한 그는 두 번의 이직을 거쳐 연봉을 1000만원 넘게 올렸다. 하지만 그사이 서울 집값은 1년에 1억원이 우습게 올랐다. “‘중국인이 많은 동네구나’ 생각하면서 지나다녔던 대림동 아파트가 있거든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지어진 아파트죠. 그때 7억원 정도 했어요. 그것도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보니까 10억원, 11억원 부르고 있더라고요. 그때 ‘어디든 내 집은 있어야겠다’ 생각이 확 들었어요. ‘서울 괜찮은 집’은 절대 무리고, 경기도에서라도 모험을 해보자고 마음을 굳혔어요.”

J도 처음에는 남들처럼 ‘영끌’을 생각했다. 5년간 꾸준히 모아놓은 통장을 보니 8000만원가량 있었다. 그의 눈길을 끈 것은 경기도 광명의 구축 아파트. 1989년 지어졌고 19평에 불과했지만 “좁더라도 세 식구까지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재건축도 차례차례 진행 중이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지난해 J는 어머니 앞에서 말했다. “혹시 1억원 정도 빌려줄 수 있어요?” 미안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J가 보던 매물의 가격은 6억원. 생애 첫 주택을 매수하는 이들에게는 집값의 80%까지 대출할 수 있는 ‘LTV 특혜’가 주어졌다. 그래도 1억2000만원이 모자랐다. “큰아버지, 죄송한데 혹시….” 급해진 그는 친척들까지 백방으로 찾아다녔지만 허사로 돌아갔다.

“하루 일과는 아침마다 부동산 앱을 켜는 거예요.” 오전 6시30분. 눈을 뜨자마자 J의 스마트폰에는 그가 눈여겨보던 아파트의 실거래가와 호가 알림이 떠 있다. 그가 6억원에 사지 못했던 아파트는 이날 6억9000만원에 다시 올라왔다.

“열심히 산다고 살고 있지만, 결국에는 부모님께 증여를 받거나 나와 경제력이 비슷한 수준의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최고의 재테크가 아니겠어요?” J가 허탈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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