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에 1분기 국내총소득 13.2% 뛰었지만…“특정 산업 쏠림, 다른 산업 성장기반 잠식 우려” 네덜란드병 경고한 한은
2026.07.19 12:01
19일 한국은행 조사국이 발표한 ‘이번 교역 조건 개선은 왜 다른가: 반도체 경기 호조의 실물 경제 파급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총소득(GDI)은 전년 동기 대비 13.2%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3.8%)을 크게 웃돈 수치다. 이에 따른 GDP와 GDI 간 성장률 격차(9.4%포인트)는 관련 통계를 편제하기 시작한 1960년 이후 최대 폭을 기록했다.
한은은 이번 반도체 호황은 과거의 경기 호황과 완전히 다르다고 평가했다. 과거 2009년, 2015~2016년, 2020년의 호황은 국제 유가 하락 등 수입 물가가 떨어져 생긴 ‘비용 절감형’이었다면, 이번에는 AI 수요 폭발로 반도체 가격이 92.5% 급등하는 등 ‘수출물가 상승’이 교역 조건 개선을 견인하고 있다. 특히 과거 반도체 호황기였던 2003~2006년(IT 혁명기)이나 2016~2018년(클라우드 확대기)에는 반도체가 잘 팔려도 국제 유가가 더 크게 올라 교역 조건이 오히려 악화하기도 했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지금 같은 ‘수출 가격 견인형’ 호황은 경제 전반에 즉각적인 파급 효과를 미친다. 과거 유가 하락기에는 기업들이 수익 개선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약 3분기의 시차를 두고 투자를 늘린 반면, 수요가 뒷받침되는 현재는 기업들이 생산 능력을 확충하기 위해 즉각적으로 투자에 나서기 때문이다.
실제 주요 예측 기관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자본 지출(CapEx)이 지난해 75조원에서 올해 120조원, 내년 150조원까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관측했다.
한은 조사국은 “이번 교역 조건 개선은 글로벌 AI 확산과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에 따른 국제 유가 안정화 전망이 맞물려, 그 충격의 크기와 지속성이 상당할 것”이라며 “내수로의 파급 효과가 과거에 비해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반도체 독식 체제가 굳어지면서 그늘도 짙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조업 생산 중 IT 제조업 생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과거 30% 미만에서 올해 1분기 51%로 치솟았다. 전 산업 생산에서 IT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도 18.8%로 뛰었다.
하지만 전체 고용에서 IT 제조업 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6%에 불과하다. 호황으로 늘어난 소득과 임금 인상의 열매가 반도체 등 특정 IT 부문에만 집중되면서 전체 가계의 구매력 확산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의미다. 주가 상승에 따른 자산 효과 역시 소비 성향이 낮은 고소득·고자산층에 집중돼 있어 전체 소비를 끌어올리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투자의 실질적인 내수 진작 효과도 미지수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제조 장비의 약 60%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데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직접 투자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특히 특정 산업으로 돈과 인력이 과도하게 몰려 다른 핵심 산업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이른바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의 발생 가능성을 경고했다. 네덜란드병은 가스 등 천연자원의 호황으로 뜻밖의 횡재를 거둔 국가가 자원에만 의존하다 결국 다른 산업군의 수출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1950년대 천연가스전을 발견한 네덜란드가 ‘반짝 호황’ 끝에 몰락의 길을 걸은 데서 유래됐다.
재정 역시 반도체 사이클에 지나치게 취약해질 수 있다는 평가다. 법인세와 근로소득세 등이 늘어 세입 여건은 일시적으로 개선되겠지만, 반도체 수출과 국세 수입 증가율의 상관관계가 최근 들어 급격히 높아진 만큼 반도체 업황에 따라 세수 변동 폭이 커질 우려가 있다.
한은 조사국은 “세수 여건의 반도체 의존도 심화로 향후 재정 여력이 반도체 경기에 따라 크게 변화될 수 있다”며 “지난 2021~2022년 IT 호조기에 발생했던 초과 세수가 이후 업황 조정 국면에서 세수 결손으로 빠르게 반전된 바 있다”고 했다.
아울러 한은은 호황으로 불어난 유동성이 생산적인 설비 투자가 아닌 부동산 등 비생산적 자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갈 경우 금융 불균형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물가 측면에서도 늘어난 소득이 서비스 등 비교역재 부문의 가격을 밀어 올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 조사국은 “반도체 산업의 성과가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여타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되도록 산업 생태계의 연결 고리를 강화해야 한다”며 “높은 IT 의존도로 인해 경기·재정·금융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는 위험을 유념하고 중장기 정책을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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