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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가자 참상, 외면이 더 어렵다"… 릴레이 외침 '700회 코앞'

2026.07.19 07:00

<주한 이스라엘대사관 앞 1인 시위 현장>
어느덧 680여 회… "집단학살 중단하라"
평일 점심시간 때 학생·시인 등 참여 계속
"동시대의 홀로코스트, 못 본 척하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연대와 책임 다해야"
대학원생 강의영씨가 15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중단하라"는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윤기훈 인턴기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중단하라."


평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주한 이스라엘대사관 앞에 가면 이렇게 적힌 팻말을 든 '한 사람'을 볼 수 있다. 얼굴은 매일 바뀐다. 어제는 회사원, 오늘은 학생, 내일은 시인….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장애인일 수도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침공한 이스라엘에 항의하는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선 이들이다. 전쟁에 반대하는 한국 시민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352개 국내 시민사회단체가 이름을 올린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 주최하는 1인 시위는 벌써 2년을 훌쩍 넘겼다.

"작은 도움이나마… 안 나오면 죄책감"



684번째 1인 시위가 열린 지난 15일, 이스라엘대사관 앞을 지킨 사람은 서강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강의영(29)씨였다. 지난해 봄 처음 1인 시위에 나선 뒤, 강씨는 한두 달에 한 번꼴로 이 자리에 선다. 그는 "못해도 10번은 될 것"이라며 "안 나오면 죄책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미약하게나마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리고, 바로 여기에 점령국의 대사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이거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는 평일 점심시간마다 릴레이 1인 시위가 열린다. 15일 684번째 1인 시위에 나선 강의영(맨 오른쪽)씨가 피켓과 함께 서 있다. 윤기훈 인턴기자


폭 5m 남짓한 대사관 앞 인도에서 강씨는 질서유지선(폴리스라인) 바깥에 자리를 잡았다. 시야는 경찰기동대 버스 두 대가 가로막고 있다.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강씨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여기 혼자 서 있는 게 아주 외로운 행동만은 아니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거나 박수를 쳐 주는 분들이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의 침공을 당장 막아설 수는 없더라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연대의 뜻을 전하는 일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게 강씨의 믿음이다. "동시대에 이런 폭력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저렇게 죽어 가는데 모른 척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뿐입니다."

"팔레스타인 역사 알게 되자 엄청난 충격"



경상국립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박영서(22)씨는 이달 3일 생애 첫 1인 시위에 참여했다.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정파) 전쟁이 발발한 지 1,001일째 되는 날이었다. 개전 2년 만인 작년 10월 '휴전 1단계 합의'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무시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미사일을 쏘고 있다. 경남 사천시에서 서울로 올라온 박씨는 "엄청난 굉음을 내뿜는 폭격의 위험을 느낀 적도 없고, 죽음의 위기를 느끼게 하는 배고픔도 없으며,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도 없는 아주 평범한 대학 생활을 보냈다"며 "이런 1,000일을 뒤로 하고 1,001일째에야 잠시나마 (전쟁의 고통을 겪는 가자 주민들과) 연대하는 마음을 실천으로 옮겨봤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대사관을 등지고 서면 경찰기동대 버스 두 대가 시야를 가로막는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 제공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지난해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때 휘날리던 팔레스타인 깃발을 본 뒤부터다. 박씨는 "'저게 뭔데 계속 들고 나올까' 하는 궁금증에 찾아봤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며 "지금까지 아무도 나에게 이런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눈이 번쩍 뜨이게 된 계기였다.

2학기부터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공부하는 스터디그룹도 직접 꾸릴 계획이다. 박씨는 "대부분 팔레스타인 문제 자체를 모른다"며 "이스라엘이 무슨 상관인지, 미국이 어떻게 개입하는지, 국제 정세는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한번 알게 되면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니까요. 그 한번을 알게 하는 게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대의 감각, 그 어느 때보다 잘 느껴져"



'나는 사람입니다.' 2023년 11월 17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모든 희생자를 애도하는 신발들의 시위'에 참여했던 희음 시인은 이렇게 시작하는 시를 짓고 낭송했다. 제목은 '과자를 쥔 작은 손에게'. 시인은 "열두 살 생일을 맞은 작은 손이 자신의 생일에는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본 사람입니다. 그 손의 걱정과 공포가 75년 전부터 이어져 온, 이제는 없는 손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버린 사람입니다"라고 썼다. 실제로 가자지구 희생자의 상당수는 아동과 여성, 노인이다. "인간답게 살 권리, 모두가 공존할 권리를 (가자 주민들과) 함께 외치기 위해" 그는 이달 6일 1인 시위에도 나섰다.

'모든 희생자를 애도하는 신발들의 시위: 이스라엘은 학살을 멈춰라. 팔레스타인에 자유와 평화를!' 시위가 열린 2023년 11월 17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 광장에 신발 2,000켤레가 놓여 있다. 하상윤 기자


1인 시위에 대한 세간의 회의적 시선이 없는 건 아니다. 희음 시인도 "'시위 한 번 하는 게 무슨 소용이야'라고 생각할 순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우리가 여기 모여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해방을 요구해 온 수많은 목소리가 결국 압력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가 속한 예술가 모임인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은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에도 함께하고 있다.

'연대'가 거창한 게 아니라고도 했다. 시인은 "우리가 모두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연대의 감각을 그 어느 때보다 잘 느낄 수 있는 시대인 것 같다"고 짚었다. "영상과 뉴스를 통해 끊임없이 우리 눈앞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비명과 증언이 들려오잖아요. 오히려 그것을 못 본 척, 못 들은 척 외면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요."

"여기서,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일 있다"



무엇보다 한국 역시 이 전쟁과 무관하지만은 않다는 게 '1인 시위' 참여자들의 목소리다. 이를테면 HD현대의 중장비는 국제법에 반해 자행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 유대인 정착촌 건설 등에 사용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는 자회사를 통해 가자지구 인근 해역의 가스·원유 탐사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을 비판하며 펼치고 있는 이른바 'BDS(보이콧, 투자 철회, 제재) 운동'이 한국 기업·정부를 겨냥해서도 전개되는 이유다.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는 "프란체스카 알바네세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인권상황 특별보고관이 작년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HD현대는 '집단학살로부터 이윤을 얻는 기업'으로 거론된 48곳 중 유일한 한국 기업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HD현대에는 이스라엘에 굴착기를 팔지 말 것을, (한국) 정부에는 수출을 규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 성격으로 각국 정부 차원의 대(對)러시아 수출 규제가 이뤄지듯, 이스라엘을 상대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울러 "팔레스타인 영해인 가자 앞바다에서 이스라엘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자원을 불법 수탈하고 있는 한국석유공사 역시 사업 철수에 나서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여기서, 한국인들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얘기였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1년을 맞은 2024년 10월 6일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이스라엘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휴전 1단계 합의 발효가 무색하게도, 그 이후에만 1,0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인구 집단을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할 의도를 갖고 저지르는 행위'로 집단학살을 정의한다면, 오늘날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집단학살'이 맞다. 뎡야핑 활동가는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집단 학살)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배우는 이유는 다시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지금 우리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홀로코스트를 외면하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자지구에서 폭력이 멈추는 날까지, 주한 이스라엘대사관 앞 '릴레이 1인 시위'를 계속 이어 가려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이 집단학살에 연루돼 있다면, 우리 역시 그만큼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한)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계속 말하는 겁니다."
뎡야핑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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