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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영원한 언더독은 없다

2026.07.18 00:14

인구 52만 카보베르데와
'중소돌' 리센느의 거센 돌풍

절실한 언더독은 환영받지만
성공하는 순간 위기는 온다

바닥부터 올라온 대한민국
우리는 안심할 수 있을까

정소람 유통산업부 차장
인구 52만 명의 아프리카 작은 섬나라, 카보베르데를 ‘2026 북중미 월드컵’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의 예기치 못한 돌풍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월드컵 첫 무대였음에도 강호 스페인과 우루과이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며 조별리그부터 무패 돌풍을 일으켰고, 마흔 살 노장 골키퍼 보지냐(Vozinha)는 온몸을 던져 골문을 지켰다.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와의 32강 경기에선 ‘나도 모르게 카보베르데를 응원하게 된다’는 댓글까지 잇따랐다. 비록 연장 혈투 끝에 아쉽게 패배했지만, 이들의 투혼만큼은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듯하다.

이름도 낯선 작은 나라를 향해 축구팬들이 한마음으로 응원을 보낸 배경은 단순하다. 불리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링 위로 올라가는 전형적인 ‘언더독’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세계 대중이 영화 ‘록키’의 무명 복서에게 열광한 것도,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이야기가 수천 년 동안 신화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국내 가요계에서 차트 역주행 돌풍까지 일으킨 걸그룹 리센느도 이 공식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다. 이들은 대형 기획사나 거대 자본 없이 데뷔한 이른바 ‘중소돌’(중소 아이돌)이다. 언더독이 챔피언의 문법을 따르지 않듯 리센느도 기존 아이돌의 공식을 좇지 않았다. 화려한 해외 로케이션 대신 고향인 경남 거제로 내려가 걸쭉한 사투리를 쓰는 모습, 잔뜩 멋을 낸 영어 가사 대신 “거제, 야호”를 외치는 모습까지. 억지로 꾸며낸 흔적이라곤 없는 소탈한 모습은 전에 없던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멤버 원이의 ‘무섭노’라는 사투리 표현이 뜬금없는 ‘일베 논란’에 휩싸인 것.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파장은 더욱 커지는 듯했다. 하지만 대중은 이제 막 날개를 펴기 시작한 신인에게 가해진 무리한 잣대에 오히려 반감을 드러냈고, 논란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위기 직후 리센느가 선배 그룹 카라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해 내놓은 신곡의 가사(안 된다는 맘은 노노노노)가 마치 언더독의 ‘한방’처럼 시원하게 느껴진 이유다.

이들은 어떻게 그토록 아낌없는 박수와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까. 어려운 외부 조건, 강자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 독창성, 그리고 잃을 것 없는 자의 절실함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질 때 대중은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케팅학계에서는 열정을 무기로 싸우는 중소 브랜드에 소비자들이 강력한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는 현상을 ‘언더독 브랜드 바이어스(Underdog Brand Bias)’라고 부른다.

비단 스포츠나 엔터테인먼트에 국한된 얘기만은 아니다. 한때 원조에 의존하던 세계 최빈국에서 반도체와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가 된 한국의 서사도 마찬가지다. ‘코리아’라고 하면 ‘노스 오어 사우스?(North or south?)’라는 질문부터 받던 나라가 지금은 세계에서 주목받는 K컬처를 만들어냈다. 역사상 많은 국가 중 이토록 빠르게 성공한 언더독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늘 고점이라고 생각할 때 위기는 찾아온다. 한때의 절실함을 잃어버리고, 기득권의 편안한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순간 뜨거웠던 응원은 싸늘하게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새로움이 사라지면 대중은 미련 없이 또 다른 혁신가를 향해 눈을 돌린다. ‘설익음’에 대해 세상이 베풀어주던 면죄부의 유통기한 역시 그리 길지 않다. 과거의 영광과 시스템에만 기대다가 잊혀버린 이들의 역사는 이미 도처에 널려 있다. 만약 카보베르데가 차기 월드컵에서도 골키퍼의 눈물겨운 선방에만 기댄다면, 리센느가 다음 음원에서도 과거의 인기곡을 리메이크하는 안전한 선택만 고집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지금의 뜨거운 관심을 그대로 이어가긴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추격해 오는 신흥국의 기세는 무섭고, 세계는 더 이상 한국을 약자로 보지 않는다. 중국은 조용히 각종 산업에서의 기술 격차를 좁히고 있고, 동남아시아 국가는 인구 파워를 무기로 콘텐츠와 문화 사업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과거 산업화의 성공과 K컬처의 영광만으로는 다음 10년을 보장받을 수 없다. 지금 한국이 누리는 프리미엄의 유통기한을 냉정하게 되물어야 하는 이유다. 언더독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실패했을 때가 아니라 성공을 거뒀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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