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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워스 트랩’ 연구한 이승주 옥스퍼드대 재무경제학 교수 [인터뷰]

2026.07.17 21:01

반도체 횡재 세수…미래 생산성 투자해야
자산 격차보다 투자 기회 박탈이 양극화 가속


서울대 물리학과/ 서울대 경제학 학사·석사/ 미국 UC버클리 경제학 박사/ 2016~2019년 육군사관학교 경제학 교관(장교 복무)/ 옥스퍼드대 사이드경영대학원 재무학 부교수(현)/ 옥스퍼드대 그린템플턴칼리지 리서치 펠로 (본인 제공)
대한민국 곳간에 유례없는 돈이 쌓이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발(發)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법인세를 비롯한 재정수입이 급증하면서다. AI 인프라 투자 붐을 타고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첨단 D램 수요가 폭발하자 ‘횡재성 세수’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놓고 나라 전체가 들썩인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초과 세수의 ‘국민배당금’ 환원을 제안하자 코스피가 5% 넘게 급락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이 논쟁을 가장 흥미롭게 지켜본 학자가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사이드경영대학원의 이승주 재무경제학 교수다. 그의 대표 연구인 ‘넷워스 트랩(Net Worth Trap)’은 경제주체의 ‘신념(beliefs)’이 과도한 낙관으로 쏠려 레버리지를 키울 때 작은 충격도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시장의 ‘불안하다’는 심리만으로 실제 불안이 만들어지는 자기실현적 변동성(self-fulfilling volatility), 정책당국의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고차 기대(higher-order beliefs)까지 움직인다는 연구 등은 중앙은행 통화 정책의 새 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경이코노미는 이 교수에게 반도체 보너스 시대의 재정 운용 원칙부터 국민배당금·국부펀드 논쟁, 고환율 논란, 집값 기대심리까지 해법을 들어봤다.

이승주 교수의 한국경제
Q. 삼성전자·SK하이닉스발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법인세 등 재정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거시경제학자 입장에서 이 ‘횡재성 세수’는 구조적 수입인가, 일시적 경기순환의 산물인가.

A. 이번 반도체 세수 증가를 100% 경기순환적이라고도, 100% 구조적이라고도 보지 않는다. 다만 과거와 비교하면 구조적 요인 비중이 상당히 커졌다. AI 상용화는 단순한 경기 회복이 아니라 경제의 생산함수 자체를 바꾸는 기술 변화다. AI 인프라 구축에는 HBM, 첨단 D램, 패키징 등 반도체 수요가 필수적이다. 반도체 산업의 장기 수익성과 세수의 하한(lower bound)이 과거보다 높아졌다는 해석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다만 내 연구가 강조하는 것은 구조적 낙관 자체가 위험하다는 게 아니다. 그 낙관이 경제주체의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확대할 때 금융 취약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수록 기업과 투자자, 금융기관은 더 많은 차입으로 미래 수익을 현재로 앞당겨 쓰려는 유인이 생긴다. 그 결과 경제가 자산가격에 더욱 민감해지고, 작은 충격도 위기로 이어질 소지가 커진다.

Q. 최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초과 세수의 ‘국민배당금’ 환원을 제안해 논쟁이 일었다. 발언 직후 코스피가 5% 넘게 급락했다. 알래스카 영구기금 배당 등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한국형 국민배당금은 성립 가능한 모델인가.

A. 김 실장의 문제의식에는 상당 부분 공감한다.

다만 ‘국민배당금’이라는 표현은 아쉬웠다. 이 용어는 투자자에게 기본소득(UBI)이나 새로운 횡재세를 연상시키기 쉽고, 실제 시장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논란 이후 “새 세금 도입이 아니라 초과 세수 활용 원칙 제시”라는 해명이 나왔지만, 시장은 이미 정책 예측 가능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한 뒤였다. 알래스카 영구기금은 석유라는 명확한 천연자원 수익을 장기 적립한 뒤 투자수익을 배당하는 구조다. 반면 한국의 AI·반도체 초과 세수는 기업 혁신과 글로벌 경쟁, 기술 변화에 좌우되는 법인세 수입이라 훨씬 변동적이다. 동일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Q. 정부 안팎에서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참고 모델로 거론된다.

A. 노르웨이는 국부펀드가 있어 성공한 게 아니다. 정부가 스스로 돈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도록 만든 재정 운용 원칙이 있어서 성공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는 재무부가 소유하되 운용은 중앙은행 산하 NBIM이 전문적으로 맡는다. 원금이 아니라 장기 기대 실질수익률(과거 연 4%, 현재 3% 수준)만 재정에 활용한다. 불황기에 다소 초과할 수 있지만 호황기에는 덜 써서 장기 평균을 맞춘다. 한국형 국부펀드도 방향 자체는 검토할 가치가 있다. 다만 지금 노르웨이식 모델을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노르웨이는 북해 석유라는 명확한 국가 자산수입을 적립하지만, 한국 세수의 대부분은 일시적인 법인세다. 지속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영구 제도를 먼저 만들면 제도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

Q. 그래도 한국형 新국부펀드를 만든다면 어떤 형태여야 하나.

A. 장기적으로 설계한다면 세 가지 원칙이 필수다. 첫째, 운용의 독립성이다. 투자 의사결정을 정치에서 최대한 분리해야 단기 정치 일정이 장기 전략을 흔들지 못한다. 둘째, 명확한 인출 원칙이다. 일시적 평가이익이나 원금이 아니라 장기 기대수익의 일정 부분만 활용해야 재정의 경기순응성을 완화할 수 있다. 셋째, 정치 약속이 아닌 제도 신뢰다. 아무리 좋은 규칙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정되거나 예외가 반복되면 시장은 믿지 않는다. 노르웨이 모델의 본질은 정부가 스스로 미래 세대와의 약속을 어기기 어렵게 만든 제도 설계에 있다.

Q. 중앙은행이 “앞으로 금리를 이렇게 운용하겠다”고 알려주는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정책 방향 제시)가 강력한 이유가, ‘다른 사람들도 저 약속을 믿고 움직일 것’이라는 서로에 대한 기대까지 바꾸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세수가 넘치는 지금이야말로 “이 돈을 어떤 원칙으로 쓰고 얼마나 쌓아두겠다”고 미리 약속하는 ‘재정판 포워드 가이던스’가 필요한 시점 아닌가.

A. 그렇다. 재정 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상보다 많은 세수를 어떤 원칙으로 쓰고, 얼마나 적립하고, 어떤 경우에만 추가 지출을 허용할지 일관된 메시지를 주면 시장 불확실성이 줄어든다. 영국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영국은 예산 발표 때마다 예산책임청(OBR)의 독립적 재정 전망과 함께 중기 재정 지속 가능성을 설명하며 시장과 소통한다.

반대로 2022년 리즈 트러스 총리와 콰지 콰텡 재무장관이 독립적 검증 없이 대규모 감세를 담은 ‘미니 버짓(Mini Budget·정기 예산과 별도로 발표하는 약식 재정계획)’을 발표하자 국채금리가 급등하고 파운드화가 급락했다. 결국 정책 대부분이 철회됐고, 트러스 총리는 취임 49일 만에 사임했다. 시장이 반응한 것은 감세 규모가 아니라 정부 스스로 제시한 재정 운용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신호였다.

한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새 재정준칙을 서둘러 만드는 일이 아니다. 재정준칙보다 ‘재정원칙(fiscal principles)’이 먼저다. 구조적 초과 세수가 어느 규모로, 얼마나 지속될지 아직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데, 검증되지 않은 세수를 전제로 숫자 중심의 엄격한 준칙을 설계했다가 몇 년 뒤 반복 수정하거나 예외를 인정하면 오히려 신뢰가 무너진다. 정책 신호는 ‘다른 사람들도 이 약속을 믿을 것’이라는 기대를 만들어야 한다. ‘초과 세수는 미래 생산성 투자와 재정 여력 확충에 우선 활용한다’는 원칙을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것이 우선이다.

Q. 반도체 호황의 과실이 양극화를 조장한다는 시각도 있다. 넷워스 트랩 이론을 가계에 적용하면 ‘순자산이 임계점 아래로 떨어진 계층은 자력으로 부를 재건하지 못하는 함정에 갇힌다’고 이해할 수 있나.

A. 넷워스 트랩 이론은 순자산의 절대 크기보다, 순자산이 경제주체의 투자 능력과 위험감수 능력을 어떻게 제약하는지 설명하는 이론이다. 빈곤의 함정이라기보다 ‘투자 기회의 함정’에 가깝다. AI 시대와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성장은 분명 긍정적 변화다. 다만 구조적 낙관은 자산가격에도 반영되고, 그 낙관이 레버리지를 통해 자산가격 상승을 증폭시키면 자산을 이미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의 격차가 커질 수 있다. 즉, 불평등의 핵심은 소비 격차가 아니라 투자 기회 격차다. 장기적으로 자산 격차를 줄이려면 사람들이 투자에 참여할 기반을 넓히는 게 더 중요하다. 교육과 직업훈련, 청년 자산 형성 지원, 창업·혁신 금융 접근성 확대, 장기 투자 기회 확대 같은 정책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Q. 한국 경제 문제 중 또 하나가 수도권·지방 불균형이다. 영국이 낙후지역을 살리겠다며 추진한 ‘레벨링업’ 정책 논의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정책은 실패했다. 왜인가.

A. 학계 평가는 대체로 ‘문제의식은 좋았지만 뒷받침할 제도와 실행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실패 이유는 첫째, 정책이 지나치게 단기 프로젝트 중심으로 운영됐다. 지역 생산성과 혁신 역량을 높이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한데 공모 사업과 개별 프로젝트에 집중됐다. 둘째, 일관성이 부족했다. 정부 조직과 산업 전략이 반복적으로 바뀌면서 지방정부와 기업이 장기 계획을 세우기 어려웠다. 셋째, 권한을 준다고 했지만 실제 재정과 의사결정 권한은 여전히 중앙에 집중됐다. 지방은 중앙이 만든 공모 사업에 경쟁적으로 신청하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Q. 대안은 뭔가.

A. 지역경제도 자본배분 문제다. 예산 이전만으로는 부족하고, 기업·대학·금융기관·연구기관·지방정부가 함께 움직이는 혁신 생태계, 즉 코디네이션 문제를 풀어야 한다. 존 밴 리넌 교수 등이 강조하듯 핵심은 기업을 이전시키는 게 아니라 혁신이 지속되는 클러스터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영국 옥스퍼드·케임브리지가 좋은 사례다. 한국도 모든 지역을 똑같이 만들 게 아니라 각 지역 비교우위에 맞는 혁신 생태계를 키우는 접근이 현실적이다.

Q. 최근 정부 고위 관계자가 고금리·고물가·고환율 ‘3고’를 “위기의 전조가 아닌 도약의 마찰음”이라 규정해 격론이 벌어졌다. 정부 측 해석은 논리적인가, 아니면 그런 발언 자체가 변동성을 키우는 위험한 신호인가.

A. 현재 고환율을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시각으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만 한 가지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환율을 ‘설명’하는 것과 ‘정당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금융 시장은 펀더멘털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정책당국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환율이 왜 움직이는지 설명하는 것은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시장이 ‘정부가 현재의 높은 환율 수준을 정책적으로 용인한다’고 해석하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 순간 정부 발언은 설명이 아니라 시장 기대를 바꾸는 정책 신호(policy signal)가 된다. 정부는 환율을 설명해야 하지만 특정 환율 수준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거나 목표로 삼는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

Q. 한국 부동산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A. 한국은 중요한 전환점에 있다. 초과이윤과 세수 증가는 단순한 재정 여유가 아니라 미래 생산능력을 확충할 기회다. AI 인프라를 위한 전력과 데이터센터, 연구개발, 대학과 인재 양성, 벤처 생태계, 지역 혁신 생태계에 투자해야 한다. 반대로 부동산을 포함한 기존 자산가격 상승에만 머문다면 미래의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때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기대’의 역할이다. 동일한 경제 조건에서 시장참가자의 기대와 믿음에 따라 다른 가격 균형이 나타날 수 있다. ‘집값은 결국 오른다’는 믿음 이면에는 과거 경험, 공급 제약, 금융환경, 정부 정책에 대한 기대가 모두 반영돼 있다. 이 믿음을 바꾸려면 정부가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발표 대신 앞으로도 일관된 정책을 지속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

넷워스 트랩(Net Worth Trap)이란?
“대박 날 거야” 기대에 빚냈다가 회복 불능
이승주 교수가 공저자들과 발전시켜온 넷워스 트랩 이론은 ‘왜 어떤 경제는 위기 이후 오래도록 회복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핵심은 순자산(net worth)이 단순한 부의 크기가 아니라 경제주체의 투자 능력과 위험 감수 능력을 결정한다는 것. 미래에 대한 기대가 과도하게 낙관으로 쏠리면 기업·투자자·금융기관은 차입을 늘려 미래 수익을 현재로 앞당겨 쓴다. 이때 경제 전체 순자산은 자산가격 변동에 극도로 민감해진다. 이 상태에서 작은 충격이 오면 자산가격 하락 → 순자산 붕괴 → 투자 위축 → 추가 가격 하락의 악순환이 작동한다. 이를 ‘함정’, 즉 트랙에 빠졌다고 표현하는 이론이다.

[영국 옥스퍼드 시티 =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8호·창간 47주년 특대호(2026.07.15~07.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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