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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 적고 들어간 현장… 눈앞에서 폭탄이 터졌다

2026.07.18 19:21

외국 언론에 처음 공개된 라오스 까시군 '센터 523부대' 작전구역
 라오스 비엔티안주 까시군에서 센터 523부대 대원이 위험 표지판 주변을 탐지기로 수색하고 있다.
ⓒ ACN아시아콘텐츠뉴스

"폭파합니다."

불발탄 처리 책임자의 신호가 떨어지자 안전지대에 있던 대원들과 취재진의 시선이 폭파 지점으로 향했다. 잠시 뒤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치솟았다. 불발탄 위치를 표시한 깃발과 주변에 쌓아둔 모래주머니가 순식간에 흩어졌다.

50여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폭탄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폭발력은 줄지 않았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폭음이 가슴을 울렸다. 폭발 지점 가까이에 사람이 있었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력이었다.

기온이 36도를 넘은 지난 6월, 라오스 불발탄제거청 산하 센터 523부대가 작업 중인 비엔티안주 까시군을 찾았다. 수도 비엔티안에서 방비엥을 거쳐 비포장도로를 3시간가량 더 달려 현장에 도착했다. 겉보기에는 라오스의 평범한 농촌과 다르지 않았다. 주변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비탈은 가팔랐다.

현장 주변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통제선이 설치돼 있었다. 담당자는 센터 523부대가 까시군에서 진행하는 불발탄 제거 작업을 외국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26 다큐멘터리 국제공동제작 지원사업’으로 선정된 ‘불발탄 위의 삶, 전쟁을 지운 여성들’의 라오스 촬영이 6월 15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됐다. 제작진은 이 가운데 6월 17일부터 19일까지 비엔티안주 까시군의 불발탄 제거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 ACN아시아콘텐츠뉴스

현장에 들어가기 전 출입 명부를 작성했다. 이름과 생년월일에 이어 혈액형까지 적어야 했다. 취재 현장 출입 명부에서 혈액형을 요구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센터 523부대 소속 의료진은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신속한 응급조치를 할 수 있도록 혈액형을 미리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눈앞에 펼쳐진 땅이 평범한 밭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 났다.

까시군 현장에는 의료진을 포함해 불발탄 탐지와 제거 업무를 맡은 대원 20여 명이 투입돼 있었다. 대원들이 작업에 앞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장비 점검이었다. 점검은 세 단계로 진행됐다. 먼저 탐지기의 전원과 기본 작동 상태를 확인했다. 이어 깊이별로 묻어 놓은 금속에 탐지기가 제대로 반응하는지 검사했다. 마지막으로 쇠와 자석 등 종류가 다른 금속 물체에 정상적으로 반응하는지 다시 확인했다.

하위사이 워라봉 불발탄 제거팀장은 "어제 정상적으로 작동한 장비도 오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지하 약 50㎝에 묻힌 금속에 탐지기가 정확히 반응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장비 점검이 현장 투입 전 매일 거쳐야 하는 필수 절차라고 설명했다. 탐지기의 작은 이상 하나가 대원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점검을 마친 대원들을 따라 제거 현장으로 들어갔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발밑에 불발탄이 묻혀 있을 수 있다는 긴장감이 커졌다. 무더위에 흐르는 땀과 긴장으로 밴 식은땀이 뒤섞였다. 대원들은 각자 맡은 구역에 자리를 잡았다. 1m가량 간격을 유지한 채 탐지기를 좌우로 천천히 움직였다. 넓은 지역을 한꺼번에 훑지 않고 조금씩 전진하며 땅속의 금속 반응을 확인했다.

 라오스 비엔티안주 까시군에서 센터 523부대 대원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탐지기와 삽으로 불발탄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 ACN아시아콘텐츠뉴스

9년간 밤낮없이 8분마다 폭격한 양 …라오스 땅에 남은 전쟁

라오스는 세계에서 1인당 불발탄이 가장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은 북베트남군의 병력과 군수물자가 이동하던 '호찌민 루트'를 차단하기 위해 중립국이던 라오스에 200만 톤 넘는 폭발물을 투하했다.

이 가운데 집속탄에서 흩어진 소형 폭탄인 자탄만 2억 7000만 개가 넘었다. 이는 전투기 한 대가 24시간 쉬지 않고 8분에 한 번씩 9년 동안 폭탄을 떨어뜨리는 양이다. 라오스에 투하된 폭탄 가운데 상당수는 하나의 큰 폭탄에서 수백 개의 작은 자탄이 흩어지는 집속탄이었다.

투하된 자탄의 30%인 약 8000만 개가 폭발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에서는 자탄은 물론 박격포탄을 비롯한 대형 폭발물도 발견된다. 베트남전이 끝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라오스의 땅속에서는 지금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까시 지역은 비엔티안에서 방비엥을 거쳐 라오스 북부로 이어지는 주요 교통로다. 미군은 전쟁 당시 북베트남군의 병력과 군수물자 수송을 차단하기 위해 이 일대를 집중적으로 폭격했다.

 센터 523부대 대원이 붉은 줄로 구획한 작업구역을 탐지기로 수색하고 있다.
ⓒ ACN아시아콘텐츠뉴스

라오스 당국은 과거 폭격 자료와 주민 신고, 불발탄 발견 기록 등을 검토해 제거 대상지를 선정한다. 사상자가 발생한 지역이나 학교, 농경지, 주거 예정지처럼 주민 생활과 밀접한 곳을 우선순위에 둔다.

센터 523부대는 2017년부터 이 지역에서 사전 조사와 주민 대상 위험성 홍보를 진행해 왔다. 그러던 중 2021년 2월 까시군에서 불발탄 폭발 사고가 발생해 어린이 2명이 숨지고 3명이 청력을 잃는 등 부상을 입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불발탄 제거 작업을 본격화했다.

까시군에서는 지금까지 4개 마을 주변의 제거 작업을 마쳤다. 올해 제거 목표는 폰시다 마을과 후아무앙 마을 일대 18헥타르다. 축구장 약 25개 규모에 해당한다. 하루 20여 명의 대원이 주 5일 교대로 투입됐다. 4월부터 6월까지 석 달 동안 작업을 마친 면적은 전체 목표의 3분의 1인 약 6헥타르다.

풀과 나무를 걷어내고 탐지기로 땅을 조금씩 확인한 뒤 금속 반응이 나타난 지점을 일일이 파내야 해 작업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7월부터 9월까지는 우기로 접어들어 작업도 중단된다. 라오스의 모든 불발탄을 제거하는 데 최대 130년이 걸릴 수 있다는유엔개발계획(UNDP) 보고서도 있다. 현장에서 작업 속도를 지켜보니 결코 과장처럼 들리지 않았다.

사흘 내내 나온 불발탄

 불발탄을 폭파 처리하는 순간 흙과 검은 연기, 주변에 설치된 위험 표지판이 공중으로 솟구치고 있다.
ⓒ ACN아시아콘텐츠뉴스

그늘 하나 없는 현장에서 탐지 작업이 이어지던 순간, 한 대원이 큰 소리로 불발탄 발견을 알렸다. 탐지기에 금속 반응이 잡힌 것이다. 주변에서 작업하던 대원들은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탐지 대원은 신호가 잡힌 지점의 흙을 조심스럽게 걷어냈다. 잠시 뒤 땅속에서 테니스공 크기의 둥근 집속탄 자탄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캄싱 핌판타원 까시군 불발탄 제거부대 총책임자는 곧바로 현장으로 이동해 불발탄의 종류와 상태를 확인했다. 불발탄 처리 요원은 교육과 처리 능력에 따라 폭발물 처리(EOD) 레벨 1부터 4까지 구분된다. 폭발물의 종류와 위험도에 따라 현장 투입 인원과 처리 책임자가 결정된다.

대원들은 불발탄이 발견된 지점에 깃발을 세우고 주변에 모래주머니를 쌓았다. 폭약과 기폭 장치를 설치한 뒤 모든 인원을 폭파 지점에서 200m 이상 떨어진 안전지대로 이동시켰다. 주변은 적막했다. 조금 전까지 이어지던 대원들의 목소리와 탐지기 소리도 멎었다. 캄싱 총책임자가 기폭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순간 흙과 모래주머니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뒤이어 굉음이 길게 울렸다.

눈앞에서 폭탄이 폭발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취재 첫날부터 불발탄 발견과 처리 전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현장에 오기 전에는 불발탄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첫날 곧바로 불발탄이 발견되자 운이 따랐다고 여겼다. 그러나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불발탄이 나왔다. 박격포탄까지 땅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캄싱 총책임자와 하위사이 워라봉 불발탄 제거팀장이 현장에서 발견된 박격포탄을 설명하고 있다. 폭발력이 큰 박격포탄은 안전한 장소로 옮겨 폭파 처리한다.
ⓒ ACN아시아콘텐츠뉴스

며칠 지나지 않아 '운이 좋았다'는 생각은 사라졌다. 이 좁은 밭에서 매일 불발탄이 나온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폭탄이 이 땅에 떨어졌기에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하루도 빠짐없이 불발탄이 나오는 것일까. 농민들이 제거되지 않은 땅에 들어가 밭을 갈거나 불을 피웠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캄싱 총책임자는 "이곳에서는 하루에 많게는 20∼30개의 불발탄이 발견된다"며 "훈련받은 전문 대원들도 매일 긴장 속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더운 날씨와 열악한 환경이 힘들지만 불발탄이 제거된 땅에서 주민들이 안전하게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제거 작업 기간 대원들은 수개월간 현장 인근에서 합숙한다. 대원들은 긴장 속에서 작업하는 것보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일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마주한 라오스 불발탄 문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땅이 있어도 들어갈 수 없고, 밭이 있어도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집을 짓고 도로를 놓으며 학교와 병원을 세우기 위해서도 불발탄 제거가 먼저였다.

폭파가 끝난 뒤 대원들은 다시 탐지기를 들었다. 제거 작업을 마친 구역에는 안전을 알리는 표시가 세워졌다. 주민들이 다시 밭을 갈고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땅이었다. 그러나 그 표시 너머에는 아직 확인하지 못한 땅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다음 편에서는 센터 523부대원들의 합숙 생활과 불발탄 제거 이후 달라진 농민들의 삶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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