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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던 여름 룩, 짜임새가 생겼다[박민지 디자이너의 옷 잘 입는 공식]

2026.07.18 10:00

(24) 라피아 백| 박민지 패션 디자이너



짚·왕골·야자잎 등으로 짜 여름 느낌 ‘물씬’
휴양지선 큰 토트형, 도심에선 중간 사이즈
표면 거칠어 섬세한 원단 옷과 매칭 땐 주의

여름 옷차림에는 계절을 단번에 말해주는 아이템이 있다. 리넨 셔츠, 흰 팬츠, 샌들, 그리고 라피아 백이다. 옷을 갖춰 입었는데도 어딘가 답답해 보이고, 서머 룩처럼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손에 라피아 백 하나를 들면 분위기가 바로 달라진다. “지금 이 옷차림은 여름이다”라는 신호가 된다.

라피아 백, 이른바 서머 바스켓 백은 이름보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가방이다. 남프랑스의 오후, 시장바구니, 휴양지, 흰 셔츠에 데님을 입은 모습, 가벼운 원피스와 플랫슈즈. 이 모든 장면을 하나로 묶어주는 아이템이 바로 짚으로 짠 여름 가방이다. 라피아는 라피아야자의 잎에서 얻는 천연 섬유다. 햇볕에 말린 식물 섬유 특유의 건조한 질감과 가벼움이 있어 여름 모자와 바구니, 가방의 대표적인 소재로 쓰여왔다. 우리가 흔히 라피아 백이라고 부르는 가방은 엄밀한 소재명이라기보다 자연 소재를 엮어 만든 여름 가방 전체를 가리키는 말에 가깝다. 그래서 라피아 백에는 진짜 라피아뿐 아니라 스트로(밀짚), 라탄(왕골), 야자잎, 종이 섬유로 만든 바스켓 백까지 포함되곤 한다.

라피아 백이 패션의 언어로 자리 잡는 데에는 제인 버킨의 영향이 컸다. 트레이드 마크인 ‘에르메스’ 버킨 백 이전, 그에게는 둥근 바스켓 스타일 라피아 백이 있었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도, 짧은 여름 드레스를 입은 날에도, 때로는 조금 더 차려입은 옷에도 바구니를 들었다. 원래 장을 보거나 피크닉을 갈 때 쓰던 생활용품이었지만, 제인 버킨의 손에 들리자 그것은 전혀 다른 물건처럼 보였다. 꾸미지 않은 듯하면서도 세련되고, 실용적인 듯하면서도 낭만적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가방이 완벽하게 실용적인 물건은 아니라는 데 있다. 입구가 벌어져 있는 디자인도 많고, 각이 살아 있는 바스켓은 몸에 착 감기지 않는다. 비 오는 날에는 조심해야 하고, 표면의 거친 짜임은 섬세한 옷감에 닿았을 때 올을 건드릴 수도 있다. 그런데도 라피아 백은 여름마다 다시 돌아온다.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옷을 크게 바꾸지 않아도 계절감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같은 흰 셔츠와 베이지 팬츠라도 어떤 가방을 드느냐에 따라 인상은 달라진다. 검은 가죽 토트백을 들면 단정하고 도시적인 차림이 되고, 라피아 백을 들면 한결 여유로운 서머 룩이 된다. 그래서 라피아 백은 휴양지에서만 필요한 가방이 아니다. 여름의 도심에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한다. 주말 외출, 전시장 방문, 점심 약속, 가벼운 여행길에도 두루 어울린다.

오늘날 라피아 백은 가격대도, 형태도 매우 넓다. ‘자라’나 ‘H&M’ 같은 SPA 브랜드에서도 매년 선보이고, 동남아 여행지의 시장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반대로 명품 브랜드는 로고와 가죽 트리밍을 더해 고가의 시즌 백으로 내놓는다. 이때 가격을 가르는 것은 소재 자체의 희귀성만이 아니다. 얼마나 촘촘하고 단단하게 짜였는지, 손잡이와 몸판의 연결이 얼마나 안정적인지, 형태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지가 중요하다. 여기에 현대적인 비례와 색감, 세심한 마감이 더해지면 가격은 올라간다. 라피아 백은 결국 짜임의 완성도와 디자인의 균형이 값을 만든다.

대표적으로 눈여겨볼 만한 브랜드로 ‘센시 스튜디오(Sensi Studio)’가 있다. 센시 스튜디오는 식물 섬유 수공예 기법인 스트로 위빙 기술을 바탕으로 모자와 가방을 선보이는 브랜드다. 화사한 색감의 토트백, 형광색 포인트를 더한 디자인 등 밝고 경쾌한 스타일이 특징이다. 소박한 바구니형 가방보다 조금 더 장식적이고 활기 있는 여름 가방을 찾을 때 눈여겨볼 만하다. 전통적인 수공예를 바탕으로 하지만 결과물은 꽤 현대적이다.

수제 가방 브랜드 ‘뮨(MUUN)’은 라피아 백을 조금 더 단정하고 미니멀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과 일본적 미니멀리즘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가방을 보면 장식보다 형태의 균형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손잡이와 몸판의 비례, 안쪽 파우치, 가죽 트리밍 같은 요소가 과하지 않게 정리되어 있다. 그래서 휴양지용 가방이라는 인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검은 원피스, 리넨 재킷, 흰 팬츠, 플랫슈즈와 함께 들었을 때 도시의 여름 옷차림에도 잘 어울린다.

‘드래곤 디퓨전(Dragon Diffusion)’은 엄밀히 말해 라피아 백 브랜드는 아니다. 가죽을 손으로 엮어 만든 우븐 레더 백으로 유명한 브랜드다. 하지만 여름 가방을 이야기할 때 함께 언급할 만하다. 라피아 백이 주는 자연스러운 짜임의 감각을 가죽으로 옮겨 왔고, 라피아 백의 계절감과 가죽 백의 견고함 사이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죽 소재 특성상 초가을까지 들기에도 적합하다. 라피아 특유의 휴양지 분위기가 조금 부담스러울 때 좋은 대안이 된다.

라피아 백을 고를 때는 먼저 자신의 여름 스타일을 생각해야 한다. 휴양지에서 중심 아이템이 될 가방인지, 도시의 여름 옷차림에도 함께 들 가방인지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 바닷가와 리조트에는 입구가 넓고 몸판이 큰 토트형이 좋다. 선글라스, 책 한 권, 얇은 카디건, 작은 파우치가 들어가는 큰 바구니형은 여름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반대로 도심에서는 너무 큰 피크닉 바스켓보다는 손잡이가 가죽으로 마감되고 안쪽 파우치가 있는 중간 크기의 가방이 좋다. 물건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 옷차림도 한결 정돈되어 보인다. 형태는 너무 흐물거리는 것보다 약간 각이 잡힌 편이 낫다. 여름옷은 소재가 가볍고 실루엣이 느슨해지기 쉬우므로, 가방마저 지나치게 풀어지면 전체 인상이 헐거워 보일 수 있다.

결국 라피아 백은 비싼 가방인지 아닌지보다 자신의 여름 스타일에 맞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잘 고른 라피아 백은 매년 여름 다시 꺼내 들게 된다. 유행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름마다 반복되는 클래식에 가깝다.

▶박민지



파리에서 공부하고 대기업 패션 브랜드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20여년간 일했다. 패션 작가와 유튜버 ‘르쁠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세 번째 저서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 50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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