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광우 "정년 연장, 재고용 방식으로 가면 청년층과 충돌 없어"
2026.07.18 06:00
"청년은 빨리 달리지만, 노인은 지름길을 안다."
2011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꽂힌 문장이다. 당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현 EU 집행위원장(당시 독일 고용노동부 장관)이 소개한 독일의 캠페인 캐치프레이즈였다. 흔히 고령 인력은 기술 변화에 취약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전 이사장의 진단은 정반대다.
지난 6월 24일 서울 강남구 무역센터 내 세계경제연구원 사무실에서 만난 전 이사장은 "챗GPT 등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신입(엔트리 레벨) 일자리가 사라지는 시대일수록, AI에 정교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경험 많은 베테랑'의 가치가 역설적으로 핵심 경쟁력이 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단순히 정년의 '숫자'만 늘리는 방식은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전 이사장은 "고용 연장은 필수지만, 직무와 역할을 원점에서 리셋(Reset)하는 임금 체계 개편과 노동시장 유연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며 일률적인 정년 연장보다 일본식 '계속고용(재고용)' 모델이 한국 현실에 가장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위원회 위원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을 지낸 그는 특히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연장과 정년 연장이 하나의 패키지로 맞물려 가야 소득 공백의 치명적인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시점, 고용 연장이 불가피한가. "한국의 기대수명은 이미 84세를 넘어섰으며, 통계적으로도 조만간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의 장수 기록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에 설정된 '60세 정년'은 100세 시대 관점에서 보면 한창 일할 청춘에 불과하다. 축구선수 메시가 39세의 나이에도 월드컵에서 골을 넣으며 활약하듯, 현재 60~70대는 과거와 다르다. 신체적·정신적으로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인력이 일을 하지 못하고 방치되는 것은 개인의 삶의 질 차원에서도 불행이며,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다. 심지어 생산가능인구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가용할 수 있는 생산가능인구를 최대한 활용해야 글로벌 경쟁력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 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에 가장 적합한 롤모델이 일본이라 했다. "독일 등 유럽 주요국은 법정 정년을 67세 등으로 일률 상향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연공제 중심의 임금 구조와 기업 문화 등 구조적 특성이 일본과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시장 상황과 기업 여건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일본식 '재고용' 모델이 정서적·문화적 측면에서 훨씬 적합하다."
- 일본의 세 가지 옵션(정년 연장·정년 폐지·재고용) 중 한국 실정에 가장 적합한 선택지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재고용' 방식이 가장 적합하다. '정년 폐지'는 끝이 없어 현장의 혼란이 크고, '정년 연장'은 얼마까지 연장할 것인지 등 미리 정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 여러모로 불편하다. 반면 재고용의 경우 모든 퇴직자를 의무적으로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주 입장에서도 생산성과 기여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인력을 선택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 메리트가 크다. 물론 구체적인 대상 범위나 시기 등은 다음 단계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 재고용 제도의 긍정적인 효과는. "처음부터 '리셋'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정년 이후 추가로 근무할 때 수행할 직무와 역할, 그에 따른 임금 체계를 원점에서부터 고려할 수 있다. 또한 정년을 맞은 사람이 은퇴 전 최고 직급자였더라도 조직 내 중견 간부보다 낮은 급여를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임금 구조를 유연화한다. 근무 연수가 쌓였다는 이유로 무조건 더 많이 가져가는 연공서열식 구도는 청년들에게 명백히 불리하다. 기업도 감당하기 힘들다. 임금 체계의 유연한 조정이 전제된다면 고용 연장은 청년 실업을 유발하지 않을 것이다."
- 도입 시 예상되는 부작용은. "핵심은 제도의 도입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실행하느냐(How)'의 문제다. 임금 체계를 혁신적으로 개편해 청년 고용에 미칠 부정적 효과를 사전에 차단하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만약 이런 노력이 없다면 젊은 세대의 일자리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또한 재고용이나 정년 연장으로 인해 기업의 부담이 높아지는 것도 잠재적 부작용이다. 이러한 부작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임금 체계 개편 등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 한국 사회와 기업 문화에서 재고용이 수용될 수 있겠는가. "국내 노동시장에서는 정서적 거부감 탓에 아직 확산되지 못했다. '내가 선배인데 어떻게 후배보다 덜 받고 일하나'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서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고용 연장은 단순히 정년의 숫자를 뒤로 미루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 문화 혁신이 고용 연장과 동시다발적인 패키지로 변화한다면 실효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연장과 고용 연장은 어떻게 연동돼야 하는가. "과거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세계 최초로 공적 연금을 도입했을 당시 수급 개시 연령은 60세였다. 당시 인류의 평균 수명이 40대였으니 정부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였다. 그러나 100세 시대를 맞이한 지금은 재정 안정을 위해 수급 연령을 늦출 수밖에 없다. 핵심은 연금 지급을 늦추는 만큼 고용 연장 정책도 맞물려 가야 한다는 점이다. 재고용이든 정년 연장이든 고용 연장 정책이 같이 가지 않으면 고령층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 최근 국민연금 기금 운용과 관련해 우려점이 있다면. "최근 주가 상승으로 기금 고갈 시기가 연장됐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는 장부상 가격일 뿐이다. 시장이 폭락하면 언제든 고갈 시기가 당겨지므로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특히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을 강제로 늘리려는 움직임이 우려스럽다.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미래 세대를 생각할수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기금을 확보하려면 주가가 올랐을 때 과감히 차익을 실현해야 한다. 팔아서 진짜 돈이 들어와야 종잣돈이 되는 것이다. 팔아서 돈이 되기 전까지는 자기 돈이 아니다."
- 생성형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고령 인력의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챗GPT 등 생성형 AI가 보편화되면서 회계, 법률, 컨설팅을 비롯한 많은 기업의 엔트리 레벨(Entry-Level·신입 단계)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AI 시대에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은 '경험을 많이 쌓은 숙련자'들의 역할에 달려 있다. AI를 최대한 활용하려면 명령을 잘해야 한다. 따라서 오랜 경력을 가진 고령 베테랑들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 재고용 문제를 AI 시대의 경쟁력 강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도 의미 있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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