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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세대’ 없는 인도, 바퀴벌레 인민당 ‘사건’

2026.07.18 08:29

대법원장의 ‘바퀴벌레’ 발언은 인도 청년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밈으로 출발한 ‘바퀴벌레 인민당’은 입시 비리와 실업, 카스트와 정당정치에 갇힌 청년 현실을 폭로하는 사건이 됐다.
6월20일 인도 뉴델리에서 ‘바퀴벌레 인민당’이 연 시위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REUTERS


6월의 델리는 45℃가 우습다. 그 땡볕 아래 청년들이 바퀴벌레 가면을 쓰고 모였다. 이들을 모이게 만든 가상 정당의 이름이 ‘바퀴벌레 인민당’이었기 때문이다. 영어로 ‘Cockroach Janta Party’, 줄여서 CJP다. 창당 일주일 만에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2200만명을 넘었다. 집권 여당이자 당원 수 기준 세계 최대 정당인 인도국민당 BJP의 팔로어는 900만명이다. 밈에서 출발한 농담 하나가 일주일 만에 집권당을 추월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발단은 어이없을 만큼 사소하다. 인도에서 ‘선임 변호사’는 법원이 변호사에게 부여하는 일종의 훈장으로, 전체 변호사 130만명 가운데 0.2%뿐인 희소한 자리다. 여기서 탈락한 한 변호사가 절차가 부당하다며 같은 소송을 세 번째 내자, 주심이던 수리아 칸트 대법원장이 폭발했다. “취업도 못하고 변변한 직업도 없는 바퀴벌레 같은 젊은것들이 있다. 그중 일부는 언론이, 일부는 소셜미디어가, 일부는 운동가가 되어 모두를 공격한다.” 칸트 대법원장 발언의 맥락은, 소송을 건 ‘그 변호사’를 향한 질타였다. 그러나 SNS 시대에 가장 먼저 증발하는 것이 맥락이다. ‘바퀴벌레’만 남아 전 세계를 휩쓸었다. 바로 다음 날, 미국에 살던 인도 청년 아비지트 디프케가 밈 정당을 만들었다. ‘최고 법정이 우리를 바퀴벌레라 부른다면, 기꺼이 바퀴벌레가 되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디프케조차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이 밈 정당은 대히트를 쳤다. 사실, 인도 청년들은 이미 분노의 임계점에 있었다. 이를테면 올해 5월 의대 입학시험 NEET가 문제 유출로 통째로 취소된 사건이 컸다. 응시생만 227만명, 재시험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험생이 잇따랐다.

아짐 프렘지 대학의 인도 청년고용 보고서를 보면 25세 미만 대졸자의 실업률이 40%에 이르고, 취직에 성공해도 정규직을 얻는 비율은 열에 하나꼴이다. 심지어 최근 대법원은 학력 상한이 정해진 일자리에 고학력자가 응시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냈다. 대졸자가 학력을 숨기고 들어간 말단직에서 해고된 일을 정당하다고 본 것이다. 대학을 나와도 갈 곳이 없는데, 눈을 낮추는 것마저 법이 막아버렸다.

구호로도 외칠 수 없는 지독한 현실



여기까지는 익숙한 그림이다. 부정한 입시, 청년 실업, 분노한 세대의 거리 투쟁. 그런데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인도에는 ‘청년세대’라는 것이 없다. 인도 청년들은 동일 세대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카스트로 갈리고, 진학이나 취업 시 신분에 따라 배분되는 할당제로 다시 갈린다. 브라만과 불가촉천민 청년, 그리고 기타 하위계층(OBC)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이해관계는 하나도 같을 수 없다.

학생운동도 그렇다. 1970년대 인디라 간디의 긴급조치에 맞선 청년운동(JP 운동)은 당시 인도를 뒤흔들었다. 그때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스타급 학생 지도자들은 긴급조치 시대가 끝난 후 거의 모두 정계로 진출해 오늘날 인도 정치에서 가장 부패하고 폭력적이며, 기회주의적 정치인이 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CJP 창립자인 아비지트 디프케(오른쪽)와 교육운동가 소남 왕축(가운데). ©AFP PHOTO


JP 운동 이후 학생운동의 조직력에 공포를 느낀 기성 정당들은 각자의 학생·청년 조직을 육성했다. 인도에서 정치를 한다는 말은 일단 이 하부조직에서 투사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투사란 그 당의 당리당략과 한 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청년이 거리로 나와도 인도인들은 ‘또 어느 당이 학생을 동원했군’ 하고 지나친다. 이렇게 청년운동 자체가 인도에서는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다. CJP(바퀴벌레 인민당)가 해프닝이 아니라 ‘사건’이 된 지점이 바로 여기다. 할당제를 둘러싼 밥그릇 싸움이나 기성 정당의 동원령이 아니라, 스스로를 ‘바퀴벌레’로 부르는 밑바닥의 연대감이 청년들을 자발적으로 광장에 불러냈다.

물론 서툴렀다. 6월6일의 델리 첫 집회 시간은 오후 5시까지로 신고됐으나 정작 청년들은 우왕좌왕하다 3시30분에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미숙함이야말로 동원된 군중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이들은 곧 중부 푸네와 북부 루크노우 등 전국을 돌며 집회를 이어갔고, 6월20일 다시 델리로 모여 집중 농성에 들어갔다. 장난으로 치부한 밈이 진짜 혁명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인도 정부는 이들의 SNS 계정을 차단했다. 여당의 외곽 조직은 이들의 배후에 파키스탄이 있다는 소문까지 퍼뜨렸다.

영화 〈세 얼간이〉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교육운동가 소남 왕축은 6월28일부터 무기한 연대 단식을 선언했다. 요구도 ‘교육장관 사퇴’ 하나가 아니다. 사법부 독립부터 재벌의 언론 독점 해체까지, 인도라는 시스템 전체를 갈아엎겠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운동을 입시 비리에 분노한 청년들의 소동으로만 본다. 표면은 맞다. 그러나 이런 청년 시위에는 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내건 슬로건 안쪽에, 차마 구호로는 올리지 못하는 더 지독한 현실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읽어내는 건 어른의 몫이다. 하긴, 한때 아스팔트에서 청춘을 보낸 세대조차 지금의 청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남의 나라를 말할 처지는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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