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의 여름을 수놓은 '한글'과 '예술'…세계적 연극 축제에 번지는 ‘K-컬처’ [현장]
2026.07.18 07:59
교황청 앞 광장 비롯해 크고 작은 골목길은 버스킹 무대로 변모[데일리안 = 박정선 기자] 세계 최대의 연극 축제가 한창인 프랑스 아비뇽의 여름은 뜨겁다. 인구 수만 명에 불과한 이 작은 요새 도시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인구의 수배에 달하는 예술가와 관객들로 가득 차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열린 무대가 된다.
축제 공식 안내소와 매표소에서 가장 먼저 손에 쥐게 되는 공식 가이드북과 축제 지도 전면에 당당하게 배치된 한국어 안내다. 영어나 불어 같은 서구권 언어 속에서 한글이 지닌 독특하고 정갈한 미학이 축제의 공식 얼굴로 인쇄되어 있는 모습은 현장의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축제의 메인 무대들이 들어선 극장 안팎, 관객들이 빈번하게 오가는 골목길의 주요 이정표와 간판 곳곳에도 한국어 안내가 선명하게 걸려 있다.
축제 기간 매일 발행되는 공식 일간지와 현지 문화 예술지들의 1면은 한국 초청작들에 대한 소식으로 장식되고 있다. 특히 소리꾼 이자람의 판소리 공연이 선사한 미니멀하면서도 폭발적인 무대 장악력, 그리고 극단 1도씨 등 한국 창작진이 선보인 독창적인 신체 언어와 연출 기법에 대해 현지 평단은 “동양의 깊은 철학과 현대적 연극 미학이 완벽하게 결합한 정수”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공연장에서 만난 프랑스 현지 관객 루카(38)는 “한국의 연극과 전통 예술은 서양의 연극이 잃어버린 깊은 정신성과 영혼을 흔드는 울림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며 “올해 아비뇽에 소개된 한국 작품들을 모두 예매해 관람 중인데, 매 작품마다 신선한 충격을 받고 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비뇽의 거리는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아날로그 미술관이다.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아비뇽의 오랜 돌담벽과 낡은 가로등 기둥은 형형색색의 공연 포스터들로 가득 채워진다. 스마트폰과 디지털 스크린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라지만, 이곳 아비뇽에서만큼은 종이 포스터와 사람의 목소리가 지닌 아날로그적 생명력이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교황청 앞 광장을 비롯해 크고 작은 골목길의 빈터는 자연스럽게 거리의 악사들과 예술가들이 주도하는 버스킹 무대로 변모한다. 바이올린, 첼로, 아코디언 같은 서양 악기부터 이름 모를 이국적인 타악기 소리까지 거리 구석구석을 채우기 시작하면, 길을 걷던 이들은 자연스레 걸음을 멈추고 둥근 원을 그리며 모여든다. 가볍게 박수를 치며 지켜보던 관객들이 아티스트의 손짓에 이끌려 하나둘씩 무대 중앙으로 나서면서 국적도, 나이도, 언어도 다른 이들의 춤사위가 펼쳐진다. 아티스트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거리의 소통은 아비뇽을 찾는 이들에게 축제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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