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는 남자 좋아하면 안 돼? 여성 작가들이 답했다
2026.07.18 07:00
산호·정도겸·정해나·윤이나·실키·민지형 작가
수컷 잡아먹는 암컷 사마귀부터
‘정치적 레즈비어니즘’까지
‘비혼·비연애’ 시대 부당하게 비난받는
여성의 욕망 유쾌하게 그려
'한국에 남자가 너무 많아서' 생기는 문제에 대해 한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마디씩 할 수 있다. 그 남자들을 원하고 욕망하는 '나'에 대해서라면?
신간 『이제 진짜 남자 안 만날 거야』는 이 곤란한 질문에 대한 여섯 여성 창작자의 답변이다. 우리는 성차별과 가부장제에 반대한다. 이에 동의하는 남자, 함께 손잡고 나아갈 남자가 이 세상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사랑이 삶의 결핍을 해소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을 찾아 나서는 요즘 페미니스트 여성들의 이야기다. 산호·정도겸·정해나·윤이나·실키·민지형 작가가 참여했다.
일단 재미있다. 현실의 썸과 연애에서 일어날 법한 극사실주의적 묘사에 욕하면서 책장을 넘기다가도,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제각각 폭주하는 여성들을 보며 깔깔 웃게 한다. 달고 쓰고 짜고 신, '여자의 욕망 종합세트'다.
첫 작품인 산호 작가의 만화 '사마귀의 사랑'은 마음에 드는 수컷과 잘살고 싶지만, 짝짓기만 하면 수컷을 잡아먹고픈 충동에 빠지는 암컷 사마귀 이야기다. 로맨스에 대한 환상과 파괴적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여성의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유리병 속의 나나니』를 거쳐,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 만화·웹툰·웹소설 부문 대상을 받은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로 이름을 알린 작가다.
정도겸 작가의 소설 '욕망은 끈적끈적'은 여성 독자를 타겟으로 다양한 성적 판타지를 마구 표현하면서 인기를 끌던 19금 웹툰 스토리 작가가 자신이 창작한 웹툰 속 남성 인물들을 페미니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혼란에 빠지는 이야기다. 뇌인지과학을 전공한 작가는 제2회 포스텍SF어워드 수상작 '인면화'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장편 '오뉴월에도 빛이 내리고'를 펴냈다.
실망스러운 연인을 차 버린 여성이 레즈비언 데이팅 앱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도 있다. "실패하는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다"는 정해나 작가의 만화 '나 이제 여자 만날 거야'다. '한남'과의 연애에 환멸을 느끼지만 관계가 주는 온기를 갈망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섬세하고 경쾌하게 그렸다. 퀴어 청소년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린 『요나단의 목소리』로 부천만화대상 신인상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오늘의우리만화상을 받은 작가다.
윤이나 작가의 소설 '트렌드 러브 리포트'는 동호회에서 새로운 사랑을 탐색하는 30대 여성의 이야기다. 즐거운 연애만큼이나 나의 일과 삶을 중시하는 젊은 여성들의 내면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드라마 '알 수도 있는 사람', 장편소설 『신이 떠나도』, 에세이 『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 등 장르를 넘나들며 시대의 흐름을 읽어 온 작가의 통찰과 유머가 돋보인다. 관계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가벼운 욕망에 지친 여성들에게 건네는 위로도 담겼다.
실키 작가의 만화 '그 남자 왜 만나'는 연애가 곧 시련임을 알면서도 남자와 연애하고 섹스를 원하는 페미니스트 여성의 딜레마를 그렸다. 정체성의 충돌로 번민하는 주인공, 주인공과 주변인들이 주고받는 촌철살인을 흑백 이미지로 강렬하게 표현했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는 일상과 시니컬한 유머를 담은 카툰 에세이로 주목받았고, 『나-안 괜찮아』, 『하하하이고』, 『그럼에도 여기에서』, 『단어; 집』 등을 그리고 썼다.
올해 넷플릭스 영화화되는 소설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의 민지형 작가는 '남자에 미쳐서 커리어를 망치지 않는 법'으로 참여했다. 예쁘고 연기도 잘하는데 남성들과 끊임없이 스캔들을 일으키는 배우, 그 배우를 챙기느라 힘들어하면서도 동종업계의 멋진 남성에게 속절없이 끌리는 마음에 괴로워하는 매니저의 이야기다. 보수적인 성 규범이 여성들에게 강요하는 모순을 유쾌하고도 신랄하게 그렸다.
기획자인 민지형 작가는 기혼 페미니스트다. 우리 사회가 여성의 욕망을 얼마나 억누르는지, 욕망하는 여성은 왜 그토록 조롱당하고 비난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게다가 여성들끼리 "불꽃 페미"와 "남미새"를 나누고 후자를 비난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자들이 10년 넘게 서로 헐뜯으며 괴로워하고 있어요. 하지만 욕망을 갖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10~30대 젊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4B(비연애, 비섹스, 비혼, 비출산) 담론이 확산하면서 남성을 욕망하는 마음을 '여성인권과 양립 불가능' 취급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여성 창작자가 '뒷담화' 대상이 되기도 한다. '페미니스트'로서 이성애적 욕망을 인정하는 일은 모순일까? 그렇지 않다고 작가들은 말했다. 여성들끼리도 터놓고 말하기 부끄러워하는 감정과 생각을 모아 책을 낸 이유다. 남자를 만나 즐겁게 사는 삶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삶도, 결혼제도와 이성애의 바깥에서 잘 사는 삶과 마찬가지로 페미니즘의 목표라고 믿는다.
"결혼이라는 제도적 안정, 임신과 출산을 원하는 욕망도 여성의 욕망이잖아요. 그게 너무 쉽게 '페미니즘의 반대편'으로 여겨지곤 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윤이나 작가)
"페미니스트인 나와 남자와 사귀고 싶은 나,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파멸해도 괜찮다는 욕망,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욕망 등 다양한 여성들의 욕망이 더 많이 조명되면 좋겠습니다." (산호 작가)
책장을 덮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 작가가 2021년 『얼어붙은 여자』 한국어판에서 전한 메시지를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평등하게 출발하지 않고, 서로 사랑한다고 해도 사회가 전통적으로 남성에게 부여한 특권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특권들을 문제 삼고 후대에 넘겨주지 않는 일이야말로 우리, 소녀들, 여성들의 임무다." 그 임무를 위해 잘나가는 여성 창작자들이 뭉쳤다는 점만으로도 읽어 볼 가치가 있다.
남성 독자들을 위한 한마디도 청했다.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솔직히 '남성 독자'란 존재를 상상해 본 적이 없어요." 실키 작가의 말에 다들 박수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소설을 즐겁게 읽었으며 여성 주인공에게 깊이 이입했다'는 후기를 전한 일본 남성 독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게 문학의 기능이잖아요. 남성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여성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고, 연애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민지형 작가에 이어 산호 작가가 덧붙였다. "남성이 주인공인 이야기만 보는 사람들은 여성의 입장에서 쓴 여성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르죠. 삶의 많은 재미를 포기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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