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냄새가 부르는 기억
2026.07.18 00:41
[센트&스토리] (11)
1985년 일본에서 발행된 ‘책의 잡지(本の雑誌)’에 아오키 마리코라는 독자가 짧은 글을 투고했다. “나는 서점에 가면 꼭 화장실이 가고 싶어진다.” 놀랍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독자들의 편지가 쏟아졌다. 잡지사는 특집 기사까지 실었고, 투고자 이름을 따 ‘아오키 마리코 현상’으로 불리게 됐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정식 의학 용어도 아니고, 특정 질환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책 냄새가 장을 자극한다는 가설이 있다. 오래된 책 냄새는 꽤 복잡한 화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종이의 원료인 펄프 속 리그닌 성분은 시간이 지나며 분해되는데, 이 과정에서 바닐린이 생성된다. 오래된 도서관이나 고서점에서 은은한 바닐라 향이 느껴지는 이유다. 여기에 아몬드 향을 내는 벤즈알데하이드, 스모키한 향의 과이어콜 등 수십 종의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더해져 특유의 책 냄새가 완성된다. 향만 놓고 보면 꽤 매력적이다. 오래된 책이나 도서관, 종이 냄새를 재현한 향수도 꾸준히 출시되고 있다.
문제는 이 냄새가 정말 장 운동을 촉진하느냐다. 일본에서 관련 실험이 진행됐지만 의미 있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매일 책 냄새를 맡는 서점 직원에게서는 이런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정보 과부하에 따른 신경성 반응’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서점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공간. 수많은 책의 제목과 표지, 문장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뇌가 집중하고 긴장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가설은 조건화다. 어릴 적 화장실에서 책을 읽던 사람이라면, 책과 배변이 무의식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 책이 있는 공간 자체가 몸의 특정 반응을 불러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나는 이 가설이 더 흥미롭다. 향수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향수가 향 자체로 사람을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향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은 화학이 아니라 기억이다. 후각은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변연계와 직접 연결돼 있다. 몸보다 기억을 먼저 움직인다. 그래서 어떤 향을 맡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먼저 밀려온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 장롱 냄새, 첫사랑이 쓰던 섬유유연제 향, 비 오는 날 운동장의 흙냄새 같은 것들이다.
서점에서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는 원인은 책 냄새 자체가 아니라, 책 냄새가 불러일으키는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향수는 우리가 살아온 시간과 장소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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