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전
[‘복음과도시’ 속 예수] 나는 한때 SNS 중독자였다
2026.07.18 03:09
내 이름은 태너, 스물여섯 살이고 한때는 심각한 SNS 중독자였다. 이제는 거의 6년째 ‘금주’ 중이며 다시는 그 세계로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다. 나는 중학교 때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다. 그 무렵 주요 SNS와 게임 플랫폼들이 폭발적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유튜브 영상, 엑스박스 게임, 스냅챗 스트릭, 인스타그램 피드 등. 그 모든 게 내게는 삶의 어려움으로부터 도망치는 통로였다. 가족 간 갈등과 개인적 고통도 있었기에 현실을 디지털 세계로 회피하는 건 금세 내게 두 번째 천성이 되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점점 더 커지는 외로움과 수치심이 있었다. 디지털 세계에서 어떻게 빠져 나와야 할지 몰랐다.
그리스도를 알게 된 후 내 삶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내 죄와 죄책감과 수치심을 덮어주셨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즉각적인 고통을 달래기 위해 자꾸만 디지털 세계로 돌아가곤 했다. 내 영혼은 여전히 불안했고 스스로 만든 덮개는 하나님이 주신 덮개에 비하면 그저 무화과 나뭇잎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대학에 들어간 뒤 나는 잠시 멈춰야 했다. 문제를 일으키는 몇몇 개의 앱을 지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의지가 약해졌고 결국 다시 앱을 깔곤 했다. 그때마다 다시 수많은 유혹 앞에서 나 자신을 내던졌고 또다시 무너져 내렸다.
변화를 진정 간절히 원하게 돼서야 나는 나 같은 Z세대에게는 거의 상상하기 어려운 과감한 선택을 했다. 바로 모든 SNS 계정을 완전히 삭제한 것이다. 단순히 앱만 지운 게 아니라 내 프로필 자체를 없앴다. 그리고 다시는 아무것도 내려받지 못하도록, 내 룸메이트에게 설정에서 내가 모르도록 비밀번호를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자유를 느꼈다. 하나님께서 내 눈을 여셔서 완전히 새로운 현실을 보게 하셨다.
세상 소식에서 뒤처질까 봐 두려웠지만 내 앞에는 여전히 살아갈 풍성한 삶이 있었다. 놀랍게도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소외 공포)는 서서히 사라졌다. 그렇게 생긴 새로운 시간 속에서 나는 과제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리스도와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더 온전히 마음을 쏟을 수 있었다. 숨이 트일 만큼 상쾌한 경험이었다.
더 많은 연구가 나오면서 나는 뒤늦게야 내 마음과 정신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SNS는 단순히 사람을 연결하기 위해 설계된 중립적 매체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관계와 오락에 대한 욕망을 기반으로 구축된, 거대한 이윤 중심 산업이다. 이 산업은 이런 욕망을 추구하고 충족할 때 뇌에서 분비되는 쾌락 호르몬 도파민 위에 세워져 있다.
이건 아주 정교하게 작동하는 순환 구조다.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 쏟는 지속적인 관심 자체가 곧 다른 기업들이 사고파는 상품이 된다. 도파민은 돈을 벌기 위한 완벽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돈을 버는 게 잘못일까. 진짜 해악은 사용자에게 의도적으로 유발되는 결과인 중독이다.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세상을 전혀 다르게 본다. 빛은 더 밝고 나무는 더 정교하며 다람쥐는 더 우스꽝스럽다. 죄는 더 쓰디쓰게 느껴지고 그리스도는 더 달콤하기만 하다. 최신 유행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진짜 중요한 것들을 깊이 있고 진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소셜미디어 없는 삶이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마음의 여유로 이어지길 바란다. 나는 더 겸손하고 더 친절하고 더 사려 깊은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서 이런 일을 이루셨다면 분명히 당신의 삶에서도 그렇게 하실 수 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는 분명히 내 삶에서 무엇인가를 빼앗고 있었다. 그 중독은 나를 ‘무엇을 섬길 것인가’라는 예배의 전쟁 속에 가두었고, 언제나 그 싸움의 승자는 화면일 것처럼만 보였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는 하나님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소셜미디어가 당신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당신을 덜 유용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면 그것을 버리는 결정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영원히 버리는 선택 말이다. 같은 회복 중독자로서 말하건대 그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태너 쿤즈는 미국 오하이오주 시더빌대에서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이 글은 한국 복음과도시(gospelandcity.org)에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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