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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나’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면?

2026.07.18 00:41

[아무튼, 주말]
[김동식의 기이한 이야기]
내 것이 될 수는 없는 행운
건넬 것인가, 없앨 것인가

일러스트=한상엽

대가 없는 호의는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남자는 믿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들어 봐. 최근에 진짜 이상한 일이 있었거든?” 후드티를 뒤집어쓴 사내가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 전화번호랑 끝자리 하나만 다른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어. 난 7314, 거긴 7313. 묘하다 싶어서 전화를 받았는데, 다짜고짜 내 이름을 부르는 거야. 김현식이지? 나야, 나 김현식.” 이야기를 듣던 양복 차림의 남자가 대꾸했다. “그거 네 이름이잖아. 그러니까 김현식이라는 사람이 너, 그러니까 동명이인 김현식한테 전화를 걸었다는 거야?”

“동명이인이 아니야.” “엥?” “뭐냐면, 자기가 평행우주의 김현식이라는 거지.” 양복 남자는 영화에서 본 것을 떠올렸다.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차원의 지구가 존재하고, 그곳에는 또 다른 내가 무수히 존재한다는 이론.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 영화다. “장난 전화였구만.”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지. 근데 나랑 목소리가 제법 비슷하더라고. 그래서 얘기를 좀 더 들어보기로 했지. 그자가 하는 말이, 자기가 방금 길을 걷다가 ‘말하는 고양이’를 만났다는 거야.”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는 헛소리 같아 양복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됐다, 그만하자.” “일단 들어 봐. 그 고양이가 무슨 제안을 했느냐면, 앞으로 일주일 동안 평행우주의 김현식에게 전화를 걸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거야. 그 전화 통화로 자기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 시험을 하자는 거였지. 통화 상대는 딱 하루 뒤 미래의 평행우주에 살고 있는 김현식으로 할 것. 바로 나.” 양복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 말인즉슨, 어제의 네가 오늘의 너에게 전화를 걸었단 거야?” “그렇지. 그 목적이 뭘 것 같아?” “목적?” “로또 당첨 번호를 알려 달래. 여기는 당첨자가 발표되는 토요일이지만, 거기는 금요일이니까.”

양복이 감탄하듯 웃었다. 한 편의 멋진 콩트가 아닌가. “아까도 또 전화 왔어. 어찌나 읍소를 하던지.” “이야, 그러면 네 덕에 평행우주의 너는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거네? 대박이네.” “글쎄?” 후드티가 장난기 어린 얼굴로 웃자, 양복의 눈이 동그래졌다. “글쎄라니? 왜? 안 알려줄 거야?” “내가 왜 알려줘야 하는데?” “그야….” “평행우주의 나는 내가 아니잖아. 내가 로또 당첨이 되는 것도 아닌데.” “엥? 그래서 안 알려주려고?” “글쎄. 사실 재밌는 생각이 하나 떠오르긴 했어.”

후드티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갔다. “2등 당첨 번호를 알려줘 볼까? 1등인 줄 알고 번호를 맞춰보다가 2등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표정이 어떻겠어? 진짜 웃길 것 같지 않아?” 양복은 후드티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굳이 왜? 화나게 하고 싶은 거야?” “1등을 기대했다가 2등이 되면 화가 나겠지. 게다가 일생일대의 기회였는데.” “화가 날까? 2등도 큰돈인데?” “그런가? 에이 그러면 그냥 안 알려줘야겠다.”

후드티는 키득대며 술잔을 기울였다. 양복의 고개가 갸웃했다. “진짜 안 알려주려고? 왜?” “내가 뭣 하러 남 좋은 일을 시켜줘?” “해줄 수도 있지. 돈 드는 일도 아닌데.” “나한테 아무 이득도 없는데?” “이득이 있든 없든, 안 알려줄 이유도 없잖아? 게다가 평행우주의 너라며. 그 정도 선물은 해줄 수 있지.” 후드티는 무슨 순진한 소리를 하느냐는 듯 코웃음을 터트렸다. “선물은 무슨. 걔가 잘돼 봤자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당첨금을 나눠줄 수 있기를 해, 선물 하나를 보내줄 수 있기를 해. 오히려 내 기분만 더 나빠질걸? 평행우주의 나는 로또로 인생 역전인데,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이냐고.” “그게 기분이 나쁘다고?” “당연히 나쁘지. 안 나빠?”

양복은 곰곰이 생각해봤다. 평행우주의 내가 로또에 당첨되면 내 기분이 나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이유는 없다. “나는 오히려 조금 뿌듯할 것 같아.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준 셈이잖아.” “아니, 그게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느냐니까?” “이득이 없더라도 그깟 거 좀 해주면 좋지 그냥.”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후드티는 비틀린 헛웃음을 터트렸다. “너는 원래 그렇게 이득 안 되는 일도 잘하면서 사나 보다? 모르긴 해도 내가 너보다는 시간을 알차게 쓴다는 건 알겠다.” “아니 전화로 로또 당첨 번호 알려주는 게 뭐 그렇게 시간 걸리는 일이라고?” “티끌만큼이라도 내 시간이 쓰이면 그건 시간 낭비지.” 대화는 계속해서 평행선을 그렸다.

양복은 질린 얼굴로 후드티를 바라보다가, 그냥 술이나 마시기로 했다. 다른 대화로 주제를 바꾸기 전 마지막으로 던지듯 툭 말했을 뿐이다. “네 이야기가 진짜인지 누군가의 장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그냥 말해줘라. 그깟 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생각해 볼게.” 물론 후드티는 조금도 생각해 볼 생각이 없는 얼굴이었다. 실제로 다음 날인 토요일 밤, 평행우주의 김현식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에 그는 생각나는 대로 아무 번호나 불러줘 버렸다. “제대로 받아 적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다시 불러줄까?” 연기까지 해가며 상대를 농락한 후드티는 통화를 끝내자마자 웃음을 터트렸다.

시원하게 기지개를 켠 후드티는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섰고,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안녕 김현식.” 말하는 고양이가 서 있었다. “평행우주로 네 인생을 바꿀 기회를 줄까 하는데 말이야….” 김현식은 넋이 나간 얼굴로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내일의 나는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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