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빅테크 총출동…화폐 권력 대이동 [홍익희의 비트코인 이야기]
2026.07.17 21:01
(35) ‘수익형 달러’ OUSD의 역습
국제 금융의 역사는 한마디로 ‘네트워크 선점과 기득권의 역사’다. 먼저 판을 깔고 사람들을 모은 자가 통행세를 받는다. 이 불변의 법칙이 지금 글로벌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판이 깨지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다. 2026년 하반기 출범을 예고하며 글로벌 금융과 빅테크의 포식자들이 총출동해 발표한 새로운 달러 스테이블코인, ‘OUSD(Open USD)’ 때문이다.
우리가 스테이블코인을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단순한 암호화폐 매매용 징검다리를 넘어 ‘글로벌 디지털 달러 패권’의 진짜 주인공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OUSD의 등장은 기존 스테이블코인 제국을 건설한 테더(USDT)와 서클(USDC)의 독점 체제에 던져진 거대한 폭탄이다.
그동안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테더라는 절대강자가 지배해왔다.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뒤에 미국 국채와 달러 현금을 쌓아두는 이 비즈니스는 발행사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노다지’였다. 전 세계 사용자들이 맡긴 돈으로 미국 국채를 사서 수억달러의 이자 수익을 올리면서도, 정작 코인을 쓰는 사용자나 기업들에는 이자 한 푼 주지 않고 부를 독점했기 때문이다.
돈은 사용자가 넣고, 이자는 발행사가 챙기는 이 달콤한 시장을 글로벌 금융과 빅테크가 그냥 둘 리 없었다. ‘오픈 스탠더드(Open Standard)’라는 이름 아래 뭉친 연합군의 면면을 보면 기가 질릴 정도다. 구글, 블랙록, 비자, 마스터카드, 스트라이프, BNY, 코인베이스, 쇼피파이, 도어대시 등 140여개 기업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OUSD를 들고 나왔다. 여기에 삼성전자, 신한금융그룹, 현대카드, KB국민카드,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두나무 등 한국 기업도 이름을 올렸다.
OUSD 출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기존 2위 권력자였던 서클(USDC)의 주가는 하루 만에 15% 이상 폭락했다. 거인들이 뭉쳐 만든 이 코인이 대체 무엇이 다르기에 시장이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발행사 중심에서 ‘유통망 중심’으로
OUSD의 첫 번째 무기는 수수료 제로다. 기존 스테이블코인은 대규모 발행과 상환 과정에서 기업에 적잖은 비용을 물렸다. 수백억, 수천억원 단위로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는 이 비용이 적지 않다. OUSD는 이 문턱을 없애겠다고 한다.
두 번째 무기는 더 강하다. 바로 수익 공유다. OUSD는 담보자산에서 발생하는 미국 국채 이자 수익을 운영사 혼자 독점하지 않고 생태계 확산에 기여한 파트너 기업들과 나누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이는 스테이블코인 수익 구조를 발행사 중심에서 유통망 중심으로 바꾸는 발상이다. 테더와 서클이 ‘달러 토큰을 발행하는 회사’였다면, OUSD는 ‘달러 토큰을 쓰게 만드는 네트워크’를 장악하려 한다.
여기서 비트코인과 관계도 중요해진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세상의 금이라면, OUSD는 디지털 세상의 달러가 되려 한다. 비트코인은 가치 저장 수단이다. 반면 OUSD는 결제와 정산을 노린다. 블록체인이라는 고속도로를 처음 열어젖힌 것은 비트코인이었지만, 그 위로 달러라는 정통 권력이 장갑차를 몰고 들어오는 셈이다.
물론 OUSD의 길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자 규제다. 미국 규제 체계에서 결제형 스테이블코인이 보유자에게 직접 이자를 지급하면, 이는 예금이나 증권처럼 취급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규제 부담이 커진다. 그래서 OUSD는 개인에게 이자를 주는 방식보다, 기업과 기관이 쓰는 B2B 결제망을 먼저 노릴 가능성이 크다.
개인에게 이자를 주는 대신, 결제망을 깔고 유통을 돕는 기업 파트너에게 수수료 감면이나 거버넌스 보상 형태로 이익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이는 규제를 우회하는 전략이다. 초기 OUSD는 개인이 거래소에서 사고파는 코인이라기보다, 글로벌 기업들이 쓰는 ‘기관용 디지털 달러 장부’에 가까울 것이다.
은행권이 OUSD를 두려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은행예금보다 빠르고, 싸고, 안전하며, 수익 배분까지 가능하다면 기업들은 굳이 은행 계좌에 현금을 묶어둘 이유가 줄어든다. 돈이 은행예금에서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로 빠져나가면, 전통 은행은 유동성 압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OUSD 연합 안에는 은행과 카드사가 함께 들어와 있다. 이들이 자기 무덤을 파려고 들어온 것은 아닐 것이다. 속내는 분명하다. 적대할 수 없다면 포섭하자는 것이다. 은행은 OUSD의 준비자산을 보관하는 수탁기관이 되고, 카드사는 결제망의 입구가 되며, 핀테크는 사용자 접점을 맡을 수 있다. 예금 이자 장사만 고집하다 도태되느니, 디지털 달러 수로의 관리자가 되겠다는 생존 전략이다.
OUSD의 더 깊은 의미는 지정학에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이란 등은 서방의 금융, 경제 제재를 피하기 위해 테더 같은 스테이블코인을 우회 결제수단으로 활용해왔다. 미국 입장에서 테더는 불편한 존재다. 달러 기반이지만 완전히 통제하기 어렵고, 발행 구조와 준비금 투명성 논란도 남아 있다.
OUSD는 이 문제에 대한 미국식 해법일 수 있다. 구글, 블랙록, 비자, 마스터카드 같은 미국 중심 기업들이 거버넌스를 쥔 스테이블코인이라면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훨씬 통제하기 쉽다. 스마트계약 기능을 이용하면 제재 대상 지갑을 차단하거나 동결할 수도 있다. 결국 OUSD는 민간 컨소시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달러 패권을 디지털 세계로 연장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숨어 있다.
기존 스테이블코인들과 비교하면 차이는 분명하다. USDC는 규제를 잘 지키는 모범생이다. USDT는 신흥국 달러 수요를 장악한 야전형 강자다. OUSD는 빅테크와 금융 기업의 결제망을 결합한 ‘공동 디지털 달러 인프라’다.
한국에 닥칠 세 가지 장면과 우리의 과제
한국에도 충격은 적지 않다. 먼저 수출 기업의 레일 전환이다.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은 해외법인과 협력 업체 사이에서 은행 송금보다 빠르고 싼 OUSD 결제망을 시험할 수 있다. 둘째, 카드사와 핀테크의 전략 재편이다. 단순히 글로벌 결제망을 빌려 쓸 것인지, 아니면 달러 정산 자산을 직접 운용하며 수익 배분 생태계에 참여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셋째, 금융당국의 통화 주권과 규제의 충돌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기업 결제망 깊숙이 들어오면 외환관리, 자본 이동, 통화 주권 문제가 동시에 불거진다.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은 그동안 “원화 스테이블코인보다는 예금토큰이나 은행 중심의 CBDC 접근이 우선”이라는 보수적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글로벌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국경을 넘어 우리 기업 결제망 깊숙이 침투하면, 국내 외환 모니터링 체계와 자본 이동 관리에 비상등이 켜진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기업 결제망을 파고들기 시작했다면, 우리는 더 이상 구경꾼일 수 없다.
테더가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성장한 달러의 야전 부대였다면, OUSD는 제도권과 빅테크가 힘을 모은 달러의 컨소시엄 본사를 꿈꾼다. 이 거인들이 실제로 글로벌 무역, 카드 결제, 기업 정산의 물류를 바꾸기 시작한다면 화폐 권력의 지도는 달라질 수 있다. OUSD를 단순한 코인 신상품으로 보면 절반만 보는 것이다. 이것은 미래 디지털 달러의 통행 플랫폼을 누가 장악할 것인가를 둘러싼 21세기 글로벌 합종연횡의 시작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열차가 어디로 가는지 읽고 우리 디지털 통화 설계도의 큰 그림을 서둘러 그리는 일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8호·창간 47주년 특대호(2026.07.15~07.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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