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더위 속 창덕궁 산책…왕실 약방에서 만난 여름의 맛 [정동길 옆 사진관]
2026.07.17 15:50
종묘와 창덕궁, 조선왕릉이 오는 19일까지 무료 개방되고 있다. 제헌절인 17일 창덕궁을 찾았다. 강한 햇볕과 찜통더위 탓에 관람객이 많지 않으리라고 예상했지만, 궁 안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창덕궁은 경복궁과 달리 수목이 울창해 곳곳에서 그늘을 만날 수 있다. 관람객들은 전각 사이를 거닐다가 나무 그늘에 잠시 머물며 땀을 식혔다. 궁궐 깊숙이 들어갔을 무렵, 약방 내부를 개방한다는 안내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 궁궐 건물 내부는 좀처럼 개방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생겼다.
위치를 물어 찾아간 약방은 뜻밖에도 궁궐 초입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미 궁 안쪽까지 들어온 터라 한참을 다시 걸어 나와야 했다. 조선 시대 왕실 의료기관이었던 약방은 2005년 복원된 뒤 전시와 전통문화 체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는 여름철에만 무더위 쉼터로 문을 열고 있다. 약방 안에 들어서자 은은한 한방차 향이 코끝을 스쳤다. 꿀과 함께 달여 만든 제호탕 향이었다. 이곳에서는 조선 왕실이 여름철 즐겨 마셨던 궁중 음료인 제호탕과 오미차를 무료로 맛볼 수 있었다. 에어컨 없이 선풍기 몇 대만 돌아가고 있었지만, 한옥 특유의 구조 덕분인지 실내는 바깥보다 한결 시원했다. 관람객들은 잠시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더위를 식혔다.
약방을 나온 뒤에는 창덕궁 깊숙한 곳에 자리한 낙선재로 향했다. 낙선재는 화려한 궁궐 전각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지닌 공간이다. 일반적인 궁궐 건축물과 달리 단청을 하지 않았고, 대신 창호와 담장, 굴뚝, 석물 등에 섬세한 문양을 더했다. 화려함보다는 절제된 아름다움과 단아한 품격이 두드러진다. 사진을 찍던 중 문화해설사 한 명이 10여 명의 관람객을 이끌고 낙선재에 들어섰다. 해설사는 “‘낙선(樂善)’은 ‘선을 즐긴다’는 뜻으로, 맹자의 구절에서 유래했다”며 “선한 삶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가장 높은 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람객들이 그늘에 앉아 설명을 듣는 동안, 나이가 지긋한 해설사는 양산으로 햇볕을 가리며 말을 이어갔다.
“낙선재에는 밥을 지을 수 있는 아궁이가 없습니다. 다만 겨울철 난방을 위한 ‘함실’이 있습니다. 장작으로는 오직 참나무만 사용했습니다. 같은 양으로도 열기가 오래가고 연기가 비교적 적기 때문입니다.” 해설을 듣고 나니 무심코 지나쳤던 건물의 구조와 장식이 새롭게 보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실감 났다.
창덕궁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는 반가운 소식도 들렸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에 시행되던 궁궐 무료 개방이 차례로 확대된다는 것이다. 덕수궁은 오는 8월부터 매주 수요일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며, 창덕궁과 창경궁, 종묘는 10월부터 매주 수요일 무료 개방 체제로 전환될 예정이다. 다만 경복궁은 최근 관람객 증가에 따른 현장 혼잡과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해 확대 시행 시기를 별도로 검토한다고 한다.
무더위 속에 찾은 창덕궁은 단순히 옛 건축물을 둘러보는 공간에 그치지 않았다. 왕실의 여름 음료를 맛보고, 낙선재에 담긴 의미와 생활의 지혜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궁궐의 나무 그늘과 오래된 전각은 중간중간 걸음을 늦추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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