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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광장/김준술]누가 '혐오'를 가르치는가

2026.07.16 05:00

문제작 '소년의 시간'이 던지는 질문
10대는 어떻게 혐오를 학습하나
소셜 미디어 '연령 제한' 나서는 유럽
한국은 신중 모드, 사회적 합의 시급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지난 달 15일 런던 다우닝가 총리 관저에서 온라인 아동 보호를 위한 정부 조치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그는 16세 이하 청소년의 다양한 소셜미디어 앱 사용을 금지할 것이라고 밝혔다./사진=뉴시스

'영국 북부의 평범한 동네에 중무장 경찰이 나타난다. 경찰은 배관공 가정의 문을 부수고 급습한다. 목표는 테러범도 마약범도 아니다. 체포 대상은 앳된 얼굴의 13세 소년, 제이미 밀러다. 동급생 여자아이를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영문도 모른 채 부모는 울부짖지만 소용 없다. 뒤늦게 드러나는 제이미의 범행 동기. 그것은 바로 혐오였다.'

제이미는 가상 인물이다. 동시에 얼마든지 현존하는 아이일 수 있다. 그는 '소년의 시간'(Adolescence, 2025)이라는 넷플릭스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작품은 어른들이 간과했던 10대의 감춰진 현실을 적나라하게 짚어낸다. 공개 직후 영국과 유럽에서 '문제작 대접'을 받았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모든 중학교에서 시청하라"고 조치했을 정도다. 시종일관 어둡고 불편한 전개 속에서 카메라 시선은 하나의 질문으로 일관한다. '소년은 왜, 언제부터 혐오와 폭력에 물들기 시작했을까.'

단서는 바로 '소셜 미디어'에 있다. 13세 제이미가 인스타그램으로 친구들과 구축한 세상. 그곳엔 '또래 집단'만의 언어와 문화가 존재한다. 필수적 소통 수단인 '좋아요' 하트는 5~6가지 색깔마다 뜻이 다를 정도다. 어른들은 모르는 암호이자, 서로의 소속감을 확인하는 놀이 문화다. 그리고 온라인에 널린 혐오 콘텐츠가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마저 놀이처럼 소비됐다. 교사는 물론 부모조차 모르는 사이 제이미는 혐오를 쌓아왔고, 끝내 폭력을 선택했다.

'소년의 시간'이 던진 질문은 한국 사회에도 투영된다. 배재고 야구부 사건이 계기다. 우리 아이들의 '혐오 문화'도 예사롭지 않다. 뒤늦게 실태 조명에 나선 언론 보도는 생경한 팩트로 가득하다. 아이들은 "또래만 공유하는 소셜 미디어 뉴스 계정이 따로 있다"고 증언한다. 희화화된 밈과 왜곡된 카드 뉴스가 넘쳐난다. "무시했다간 집단에서 뒤처지고, 바로 따돌림"이라고 한다. 대다수가 동조하면서 죄의식은 사라지고 혐오는 더욱 증폭된다. 하지만 수익과 성장을 중시하는 소셜 미디어의 플랫폼 구조 앞에서 '사회적 책임'은 쪼그라든다.

최근 동행미디어 시대는 배재고 사건을 계기로 연속 보도를 했다. 혐오와 조롱이 부추기는 '갈등 사회'를 진단하고 해법을 숙의하자는 시도였다. 특히 소셜 미디어의 책임 강화를 해법의 하나로 제시했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가 '불안 세대'라는 책에서 꼬집은 내용도 이와 맞닿아 있다. 그는 "현실 세계에선 부모가 과잉 보호를 일삼는다"고 봤다. 하지만 "온라인에선 '과소 보호'로 방치되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과소 보호라는 불균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마침 불균형 교정을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소년의 시간' 배경이던 영국이 그렇다. 지난달 '16세 미만'의 소셜 미디어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아이들이 중독되도록 설계됐다는 이유에서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정부도 동참할 방침이다. 원래 유럽은 디지털 미디어 정책을 '공공성' 차원에서 접근한다. 미국이 빅테크 기업을 키우기 위해 '진흥과 자율'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다르다. 유럽은 '미국 빅 테크와 맞짱을 떠서라도 지킬 건 지킨다'는 태세다. 칼럼을 쓰는 사이 따끈한 소식도 들려왔다. 유럽연합(EU)은 13일 아동의 소셜 미디어 접근을 제한하는 법안을 여름 이후 발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EU는 직접 나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아이들에겐 '현실 세계'의 시간이 필요하다."

같은 고민에 빠진 한국의 선택지는 무엇일까. 우리도 국회에 여러 법안이 올라와 있다. 14세 미만의 가입을 금지하거나, 16세 미만의 이용 시간을 줄이자는 제안이다. 반면 일각에선 청소년의 정보 접근권과 알 권리를 얘기한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연령을 제한하려면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내친김에 '사회적 대토론회'라도 열어 해법을 좁혀 보는 것은 어떤가. 공론화 착수 자체가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다.

배재고 사건이 남긴 질문을 일회성 담론으로 사장시켜선 안된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시간씩 소셜 미디어를 끼고 산다. 하지만 학교에서 올바른 사용법을 배우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1년에 6시간 정도가 고작이라고 한다. 부모도, 학교도 모르는 사이 혐오와 조롱의 알고리즘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소년의 시간'이 피고석에 세운 것은 사실 제이미가 아니었다. 혐오를 방관하고 소비하도록 방치한 어른들과 기업, 사회 전체였다. 드라마 엔딩은 처절하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아빠는 제이미 침대에 얼굴을 묻고 오열한다. '미안해, 아들. 내가 더 잘할 걸…' 그런 후회만큼은 드라마 속 아빠 하나로 끝나야 한다.

김준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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