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비 할머니의 미어터진 장례식…“돈 안 써도 잘 떠날 수 있어요“ [잘생, 잘사]
2026.07.16 04:31
홍성남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신부 인터뷰
편집자주
잘사는 것 만큼이나 잘 죽는 것이 과제인 시대입니다. 행복하게 살다가 품위 있게 늙고 평온한 죽음을 맞으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최문선 논설위원과 함께 해법을 찾아봅니다.가톨릭 신부이면서도 "하느님보다 사람에게 관심이 더 많다"는 사람. "'하느님, 제가 무엇을 할까요?' 물었더니 '사람들 행복하게 해주라'는 응답이 돌아왔다"며, "그 후로 하느님 걱정 대신 사람 걱정을 하며 살아왔다"는 사람. 홍성남 마태오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신부다.
1953년생인 홍 신부는 자주 길을 잃었다. 불안했던 소년 시절엔 자칭 '진상 가톨릭 광신도'였고, 성인이 되고는 큰돈을 벌겠다며 무당 수련을 했다. 꿈에서 예수를 문득 다시 만난 뒤 신학교에 들어갔고, 1987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길은 거기도 없었다. 본당 사목은 힘에 겨웠다. 술에 빠지고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마음이 무너졌다.
홍 신부를 구한 건 예수회 신부로부터 받은 심리치료. 심리상담 석사학위를 따고 마음 치유라는 새로운 사목을 시작했다. 10여 년간 신자,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만났고, 요즘은 신부들을 돕는다. 고난은 신이 내린 시험이며 오직 신을 믿고 의지해야 벗어날 수 있다는 게 종교의 논리 아니던가. 홍 신부는 그러나 모든 해답은 내 안에, 사람과의 관계 안에 있다고 믿는다.
"부모가 자녀에게 바라는 게 오직 행복인 것처럼, 신도 우리가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겁니다. 조건 없이 모두를 사랑하시니까요." 서울 명동성당가톨릭회관에서 만난 홍 신부의 말이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그 삶 이후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홍 신부에게 물었다.
"'너는 죄인'이란 종교 가르침은 가스라이팅"
Q. 상담으로 종교가 사람들을 돕는다는 게 생소합니다. '신령한 품성'을 뜻하는 영성이 심리상담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신부로 살면서 들여다본 우리 사회는 참 어둡고 영악하더군요. 사람이 바뀌는 게 근본 해법이고, 그러려면 선한 본성을 키워주는 종교가 필요합니다. 영성은 결국 인성이고, 상담을 통해 인성이 더 높은 단계에 이르도록 돕는 게 제 일입니다. 종교는 '너희는 죄인으로 태어나 같은 죄를 계속 저지른다'고 죄책감과 열등감을 심어주고는 합니다. 어떤 면에선 폭력이고, 가스라이팅이에요. 저도 오랫동안 저를 미워하며 방황했습니다. 심리학에서 찾아낸 답은 내가 나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넌 안 돼, 행복할 자격 없어' 하고 야단치는 내면의 목소리를 영성심리상담에선 뱀, 악령이라 불러요. 우울증, 불안증의 원인이지요. 어떤 종교인들은 그 목소리가 신의 목소리라고 주장하며 신자를 심리적 노예로 만들려고 해요. 그런 시도를 차단하는 것도 영성심리상담의 일입니다."
Q. 신앙생활이 아닌 상담에서 답을 찾는다는 게 종교를 배반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사람 마음은 시궁창 같은 흙탕물이에요. 잠시 물이 맑아지는 순간이 있을 뿐이고, 흙탕물을 아끼고 돌보면 가끔 연꽃이 피기도 하는 겁니다. 어떤 종교인은 흙탕물을 청정수로 바꾸라고 하지만, 불가능합니다. '나는 깨달았다, 너희도 할 수 있다'고 하는 건 영적 사기예요. '하느님 뜻을 따라 살라'고 할 때의 하느님 뜻이란 '너 자신을 믿고 살아가라'는 겁니다. 대개의 종교는 선택권이 신에게 있다고 말해요. '말 잘 들으면 천당 가고, 아니면 지옥 간다'고요. 부모가 자녀에게 그렇게 협박하면 학대 아닌가요? 하느님이 그럴 분인가요? 지구라는 작은 점에 모여 사는 더 작은 존재인 인간에게 신이 바라는 건 행복하고 화목하게 사는 겁니다. 그게 원래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 가톨릭회관 건물은 1980년대까지 성모병원이었다. 지하에 영안실이 있었다. 홍 신부는 "그 생각을 하면 으스스할 때가 있다"고 했다. 최근 지독한 몸살을 앓으며 "이러다 죽겠구나, 지금 죽기는 아쉽다"고 걱정했다고. 종교인이라면, 생과 사에 초연해야 하는 것 아닌가.
Q. 신부님을 비롯한 종교인도 죽음이 두려운가요. 신앙심 깊은 사람은 누군가 죽으면 '하느님 곁으로 갔다'며 기뻐하기도 하는데요.
"그건 영적 우월감을 과시하는 행동일 뿐이고, 그런 식으로 사별의 슬픔을 참고 억누르면 안 됩니다. 병이 되거나 완전히 무너져버릴 수 있어요. 상실의 아픔은 충분히, 오래 느껴야 합니다. 애도엔 최소 6개월은 필요합니다. 아이 잃은 부모와 연락이 끊겼다가 몇 년 만에 다시 만나는 경우가 있어요. '이제 좀 괜찮으시냐'고 물으면 ‘제가 괜찮아 보여요? 괜찮지 않아요' 하십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했다는 종교인을 저는 별로 믿지 않아요. 사람은 그렇게 강인하지 않습니다."
"독재자 무덤에 소금 뿌리는 이유를 아나요?"
Q. 장례미사를 수백 건 집전하셨다고요. 가까이에서 본 죽음이란 어떤 것이던가요.
"다양한 모습의 죽음을 만나다 보면 '정말로 잘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달동네 본당 신부로 있을 때 만난 할머니 장례식을 종종 떠올립니다. 전신이 마비된 가난한 분이었는데, 생전에 집에 가서 기도해 드릴 때마다 머리맡 유선전화가 계속 울리더라고요. '거동도 어려운 분에게 무슨 전화가 이렇게 많이 오나' 싶었는데, 장례식에서 의문이 풀렸습니다. 성당이 터질 만큼 조문객이 많았어요. 고인은 누워서 전화상담을 하셨더군요. 고인에게 깊은 위로를 받은 분들이 전부 찾아온 겁니다. 마음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 거죠.
종교가 말하는 부활이란 그저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닙니다. 죽은 뒤에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은 게 진정한 부활이에요. 사람에 대한 진짜 평가는 죽은 뒤에 이뤄집니다. 좋은 삶인지 아닌지는 남은 사람들이 판단하는 거예요. 죽은 뒤에도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하고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면, 가장 좋은 삶을 산 사람입니다. 그 아래는 '죽어서 안타깝다'는 반응이 뒤따르는 삶, 그 아래는 '그 사람 아직도 안 죽었대?' 하는 얘기를 듣는 삶입니다 최악의 삶은 뭘까요. '그 사람 절대 다시 살아나선 안 된다'고 사람들이 입 모아 말하는 삶이에요. 독재자 무덤에 소금을 뿌리고, 무덤을 만들지도 못하게 하는 이유죠."
Q. 죽음을 자주 생각하시나요? 일로 죽음을 다루는 분들은 '죽음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산 사람들 마음 챙기기도 바빠서 솔직히 그럴 여유가 없네요. 가톨릭에선 죽음 묵상을 통해 존재를 성찰하라고 하지만, 죽음을 자주 떠올려서 좋을 건 없어요. 마음이 조급해지고 안 해도 될 일을 벌이게 돼요. 평범한 일상을 지키는 것보다 소중한 건 없습니다. 유서를 써보거나 하지 말고 '행복 리스트'를 만드세요. 좋은 죽음은 여한 없는 죽음입니다. 한이 많으면 쉽게 떠나지 못하고, 그 한이란 '가져보지 못한 행복'에서 나와요. '내가 이거 사줄게' '그거 하게 해줄게' 하면서 스스로에게 한을 풀어주는 사람이 돼주세요. 그러다 보면 나와의 관계 회복이 가능하고, 좋은 죽음에도 가까워질 겁니다."
Q. 종교가 말하는 내세를 믿는 게 잘 사는 데 도움이 될까요. 종교를 믿으면 죽음의 공포를 덜 수 있나요.
"누구도 나와 함께 죽어 줄 수 없어요. 죽음은 결국 혼자 가야 하는 길이고, 그 길에서 동반자가 돼 주는 게 종교입니다. 불안을 이기기 위해 드는 보험이랄까요. 종교의 내세 이야기는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맥락일 때가 많습니다. 공포를 유발해서 신자들을 잡아두려는 측면이 크죠. '오늘의 삶은 천당 입장권을 얻기 위한 것'이고, '입장권 받으려면 돈을 바쳐야 한다'고 말하는 종교인들이 있어요. 화가 납니다. 사람을 가리거나 죄를 따져 묻지 않고 누구든 찾아와서 편히 쉬도록 하는 게 진정한 종교의 역할입니다. 의심하지 않는 것을 종교적 도리로 여기고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의심하고 경계하세요."
"존엄사 반대하는 종교계, 간병비라도 내세요"
Q. 자살은 종교의 절대 죄악입니다. 가톨릭교회를 비롯해 자살률을 낮추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데도 소용이 없습니다.
"자살 방지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사람입니다. 일본에선 지진 대비를 위해 집 주변에 대나무를 많이 심는다고 해요. 서로 촘촘히 엮인 뿌리가 집을 지탱한다네요. 뿌리의 일을 사람이 사람에게 해야 합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 연결된 관계가 있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어요. 의지할 사람도, 마음 털어놓을 공동체도 없이 혼자 버티다 무너지는 사람들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사람에겐 사람이 필요해요. 사람은 사람에게 가장 좋은 보약인데, 그걸 몰라요."
Q. 존엄사 법제화 등을 통해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찾아줘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크지만, 종교계 반대가 걸림돌입니다.
"'끝까지 살아야 한다'고 종교가 주장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함께 져야 합니다. 늙고 아픈 사람이 끝까지 살 수 있도록 비용과 돌봄 부담을 져야죠. 돈을 내서 무료 병원이나 시설을 만들든지요. 왜 말로만 개입합니까. 존엄사는 아직은 가진 사람들 관심사예요. 없는 사람들의 중대재해 사망에는 왜 종교가 침묵하나요. 전쟁 때문에 죽어나가는 무고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고요. 존엄사나 낙태 반대가 생명을 지키려는 의도라면, 그런 비극에도 일관되게 목소리를 내야죠. 종교계 반대 때문에 불필요한 고통을 연장하는 분들이 종교인에게 책임을 물어도 할 말이 없어요."
Q. 고통 없는 존엄한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기를 누구나 원하지만, 가족에게 민폐가 될까 봐,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시선을 받을까 봐 눈치를 보게 됩니다.
"죽는 순간까지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는 게 맞습니다. 당사자가 행복하게, 편안하게 가는 게 중요하지요. 천상병 시인이 삶을 소풍에 빗댔죠.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떠나는 게 진정한 의미의 존엄사입니다. 병원 돈 벌게 해주느라, 가족 체면 세워주느라 주삿바늘 잔뜩 꽂은 채로 누워 있는 데서 무슨 존엄을 찾을 수 있나요. 좋은 삶, 좋은 죽음을 바란다면, 살아 있을 때 사람들 마음 다독여 주고 가진 것 서로 나누세요. 돈이 들지도 않아요. 아까 얘기한 달동네 할머니처럼, 전화 한 통이면 되는 거예요."
홍 신부가 꼽은 '행복의 요건'에 하느님 없는 이유
"신이 우리에게 바라는 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홍성남 신부에게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다섯 가지'를 꼽아달라고 청했다.
▦사람: "사람이 제일 중요해요. 미국의 어떤 마을에 비만인 주민이 많았는데, 아픈 사람이 없었어요. 사이가 좋아서 자주 만났거든요. 동네 재개발로 돈이 흘러들어오자 싸움이 생기고 교류가 끊겼어요. 그때부터 아픈 사람이 나왔다네요."
▦건강: “건강을 잃으면 다 소용없죠. 자동차는 돈 들여서 애지중지 관리하면서, 왜 자기 몸엔 술, 담배 같은 나쁜 것을 쑤셔넣나요? 우리는 우리 몸의 관리인이지 주인이 아니에요. 오래, 잘 쓰다가 반납할 생각으로 건강을 돌보세요."
▦돈: "돈은 비유하자면 혈액이에요. 몸을 움직이고 뭔가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죠. 어떤 돈은 목숨을 살리기도 하고요. 돈은 그냥 돈이에요. 쓰임새가 중요하죠. "돈 얘기는 불경하다’고 하는 사람 마음 안에 돈 욕심이 있는 겁니다."
▦공부: "지식만 쌓는 공부가 아니라 편견, 무지를 깨는 공부가 필요해요. 삶이란, 사회란,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을 구해야 합니다. '나는 다 안다'는 교만은 위험해요. 스스로 신이라는 건가요? '나는 아직 잘 모른다'는 겸손을 유지하세요."
▦놀이: "어느 재개발 지역 본당 사목을 하면서 엄청 고통스러웠는데, 무사히 마친 건 매일 노는 시간을 정해 두고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푼 덕분입니다. 종일 고생한 뇌를 쉬게 하는 게 놀이입니다. 노는 것에 죄책감 갖지 마세요."
다섯 가지 중에 '하느님'도, '신앙'도 없었다. 홍 신부는 말했다. "제가 사람들 행복하게 해주면, 사람들은 '저 사람 누군데 이런 걸 해 주지?' 궁금해하겠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 뒤에 있는 하느님을 보겠죠. 제가 말하지 않아도요. 그게 진짜죠."
▦사람: "사람이 제일 중요해요. 미국의 어떤 마을에 비만인 주민이 많았는데, 아픈 사람이 없었어요. 사이가 좋아서 자주 만났거든요. 동네 재개발로 돈이 흘러들어오자 싸움이 생기고 교류가 끊겼어요. 그때부터 아픈 사람이 나왔다네요."
▦건강: “건강을 잃으면 다 소용없죠. 자동차는 돈 들여서 애지중지 관리하면서, 왜 자기 몸엔 술, 담배 같은 나쁜 것을 쑤셔넣나요? 우리는 우리 몸의 관리인이지 주인이 아니에요. 오래, 잘 쓰다가 반납할 생각으로 건강을 돌보세요."
▦돈: "돈은 비유하자면 혈액이에요. 몸을 움직이고 뭔가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죠. 어떤 돈은 목숨을 살리기도 하고요. 돈은 그냥 돈이에요. 쓰임새가 중요하죠. "돈 얘기는 불경하다’고 하는 사람 마음 안에 돈 욕심이 있는 겁니다."
▦공부: "지식만 쌓는 공부가 아니라 편견, 무지를 깨는 공부가 필요해요. 삶이란, 사회란,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을 구해야 합니다. '나는 다 안다'는 교만은 위험해요. 스스로 신이라는 건가요? '나는 아직 잘 모른다'는 겸손을 유지하세요."
▦놀이: "어느 재개발 지역 본당 사목을 하면서 엄청 고통스러웠는데, 무사히 마친 건 매일 노는 시간을 정해 두고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푼 덕분입니다. 종일 고생한 뇌를 쉬게 하는 게 놀이입니다. 노는 것에 죄책감 갖지 마세요."
다섯 가지 중에 '하느님'도, '신앙'도 없었다. 홍 신부는 말했다. "제가 사람들 행복하게 해주면, 사람들은 '저 사람 누군데 이런 걸 해 주지?' 궁금해하겠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 뒤에 있는 하느님을 보겠죠. 제가 말하지 않아도요. 그게 진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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