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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수사로 사라진 증거와 진실… 보완수사가 구원이었다”

2026.07.16 00:51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호소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피해자 없는 검찰개혁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기자회견에서 범죄 피해자들이 등을 돌린 채 피해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장경식 기자

“어머니의 손톱 채취를 요청했더니, 형사가 ‘퇴근했다’며 저한테 직접 손톱을 잘라 보관하라고 하더라고요.”

2023년 발생한 ‘인천 강화 유기치상’ 사건 피해자의 딸 한지유(가명)씨. 지유씨의 어머니는 2023년 5월 인천 강화군 집에서 뇌출혈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의붓아버지 A씨는 쓰러진 아내를 사진 찍어 따로 살던 지유씨 동생에게 보내고는 테니스를 치러 간다며 나가 버렸다. 지유씨 자매는 119에 신고했고, 어머니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 상태에 빠졌다. 지유씨는 폭행 등이 의심돼 A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지유씨는 “경찰은 폭행 정황이 없어 보인다고 했고, 저는 그 말을 믿었다”며 “하지만 직접 어머니 집에 가보니 부서진 가구가 널브러져 있었고, 어머니 몸엔 피멍과 상처가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경찰은 블랙박스와 CCTV 영상, 혈흔이 묻은 옷가지 등도 사건 발생 한 달 뒤에야 수거했다고 지유씨는 말했다. 지유씨는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건의 실체가 묻혔다고 의심한다. 결국 A씨는 검찰이 기소했지만 1심에서 유기 혐의만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이 선고됐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지유씨는 “검사에게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만 남겨서는 진실이 사라지도록 기다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울먹였다.


15일 범죄 피해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검사 보완수사권 폐지에 반대하고 나섰다. 범죄 피해자들과 변호사들은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몸소 겪은 범죄 피해 사례를 털어놓으며 “검찰의 보완수사는 피해자에게 구원과도 같았다”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사회적 이목을 끌었던 사건 피해자 8명의 사례가 소개됐다.

2022년 발생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가명)씨는 “경찰이 피해 증거인 신체 사진을 찍어두지 않아, 멍투성이가 된 나체를 친언니에게 부탁해 직접 촬영해야 했다”고 했다. 진주씨는 “경찰은 장애 진단 소견이 나오고서야 가해자에게 중상해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는데, 나중에 검찰의 보완수사를 거쳐 재판이 열릴 때 보니 혐의가 강간살인미수로 바뀌어 있었다”며 “그제야 사건이 제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보완수사를 통해 진주씨 청바지에서 가해자의 DNA를 찾아내 강간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결국 가해자는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진주씨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가해자를 위한 것”이라며 “피해자들을 모이게 만든 국가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정연수(가명)씨는 2018년 세종시에서 또래 학생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연수씨는 고민하다가 사건 발생 6년이 지난 2024년 가해자들을 고소했다. 경찰은 “시간이 오래 지나 증거 효력이 없고 가해자와 피해자 진술이 다르다”며 사건 불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재수사를 요청했고, 수사는 다시 진행돼 가해자 4명을 재판에 넘겼다. 항소심까지 진행된 현재 범행을 주도한 여학생에겐 징역 8년이, 공범 3명에겐 징역 4~5년 또는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연수씨는 “경찰이 처음에 불송치 결정을 한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재조사 때도 경찰은 30분 남짓 조사한 게 전부였다”고 했다.

2023년 8월 발생한 ‘분당 서현역 칼부림’ 사건으로 딸을 잃은 유가족도 수사 과정에서 느꼈던 답답함을 토로했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고(故) 김혜빈씨는 인도로 돌진한 차량에 치여 숨졌다. 혜빈씨의 어머니는 “딸이 뇌사 상태에 있던 26일 동안 담당 경찰관을 한 번도 못 만났다”며 “경찰이 사고 영상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해 혜빈 아빠가 현장 일대를 다니면서 직접 CCTV를 찾아서 경찰에 제출했다”고 했다. 혜빈씨 아버지도 이날 “검찰 개편은 검찰의 권한을 빼앗는 게 아니라 피해자 권리 회복을 염두에 두고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매니지먼트 대표에게 성행위를 강요당한 김윤지(가명)씨, 연인에게 폭행·스토킹을 당한 최윤희(가명)씨도 이날 토론회에 나와 “피해자 중심의 수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지희 변호사는 “6개월 넘게 압수수색이 이뤄지지 않아 항의했더니, 경찰에게 ‘제가 피해자분 시다바리(심부름꾼)냐’라는 말도 들었다”며 “검사 보완수사권 뿐 아니라 경찰이 종결한 사건을 모두 송치하는 전건 송치 제도, 피해자가 재판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피해자 참가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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