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싹한 연애’부터 ‘스캔들’까지…영화, 드라마가 되다
2026.07.15 15:21
‘조각도시’·‘스캔들’도 영화 IP 재해석
검증된 영화, 콘텐츠 시장 IP 원천 부상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오는 18일 저녁 tvN 새 토일드라마 ‘오싹한 연애’가 첫 방송 된다. 2011년 개봉해 약 300만 관객을 동원한 동명의 영화를 ‘트랜스 미디어(매체별 특성에 맞춰 세계관과 이야기를 확장하는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새롭게 만든 작품이다.
‘오싹한 연애’는 원작의 핵심 설정인 ‘귀신을 보는 여자’와 남자 주인공의 로맨스 서사는 그대로 이어가되, 인물과 배경에는 새로운 변화를 더 했다. 영화 속 귀신을 보는 주인공 ‘강여리’(손예진 분)는 15년의 세월을 거쳐 호텔 대표 ‘천여리’(박은빈 분)로 재탄생했고, 길거리 마술사이자 여리의 로맨스 상대였던 ‘조구’(이민기 분)는 열혈 검사 ‘마강욱’(양세종 분)으로 변신했다.
여기에 원작에 없는 ‘강민환’(옹성우 분)이라는 캐릭터가 새롭게 등장시켜 쌍방 로맨스에 긴장감까지 가미했다. 이처럼 드라마는 오컬트와 로맨스가 결합한 원작의 매력은 유지하면서도, 독창적인 설정과 캐릭터를 더해 또 다른 이야기를 펼쳐낸다.
작품을 연출한 이민수 PD는 지난 14일 열린 ‘오싹한 연애’ 제작발표회에서 “귀신 보는 여자와 귀신을 무서워하는 남자, 귀신보다 더 무서운 남자가 벌이는 오컬트 삼각 로맨스”라고 작품을 소개하며 “무서운 상황에서도 연애 감정이 싹틀 수 있는 것처럼, 원작의 설정을 드라마로 가져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원작에 비해 풍성해진 캐릭터를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오싹한 연애’처럼 최근 방송가에는 극장 개봉 영화가 드라마나 시리즈로 재탄생하는 사례가 두드러지는 추세다. 웹툰·웹소설 지식재산(IP)이 드라마 제작 시장을 휩쓸었던 시기를 넘어, 대중적 흥행이 검증된 영화들이 새로운 IP 곳간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디즈니+가 지난해 공개한 지창욱·도경수 주연의 ‘조각도시’도 영화가 드라마로 ‘트랜스 미디어’된 대표적 사례다. 지창욱, 심은경, 안재홍, 오정세가 출연한 영화 ‘조작된 도시’(2017)가 원작으로,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에 15세 관람가였던 영화가 12부작의 청소년 관람불가 하드보일드 액션 스릴러로 재탄생했다.
‘조각도시’는 우연히 주운 휴대폰을 돌려주려다 살인 사건 누명을 쓰고 그 진실을 밝혀나간다는 원작의 큰 줄기는 유지하되, 새로운 설정을 더 해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서사를 구현했다. 지창욱이 연기하는 주인공은 평범한 백수 ‘권유’에서 꽃집을 운영하며 카페 창업을 준비하는 ‘박태중’으로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 됐고, 안요한(도경수 분)·백도경(이광수 분)이라는 빌런도 새롭게 합류했다. 원작 ‘조작된 도시’가 지녔던 코미디적 요소는 완전히 배제한 채, 생존 게임 같은 잔혹한 액션과 한층 어둡고 무거워진 전개로 극을 채워나간다.
원작 영화와 시리즈의 흥행 성적도 흥미롭다. 영화 ‘조작된 도시’는 손익분기점(300만명)을 넘기지 못한 250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시리즈 ‘조각도시’는 공개 직후 한국 디즈니+ 1위로 직행한 데 이어 디즈니+ TV쇼 부문 월드와이드 2위를 달성하는 등 글로벌 흥행 기록을 썼다. 원작의 세계관을 성공적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다.
올 3분기 넷플릭스에서 공개 예정인 오리지널 시리즈 ‘스캔들’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 2003년 개봉한 배용준·전도연·이미숙 주연의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원작이다.
시리즈는 유혹과 파멸을 그린 정극 멜로라는 원작의 연장선에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조씨 부인’(손예진 분)과 조선 최고의 연애꾼 ‘조원’(지창욱 분)이 벌이는 위험한 사랑 내기, 그리고 그 내기에 얽혀드는 여인 ‘희연’(나나 분)의 이야기를 다룬다. 욕망 자체가 금기시됐던 시대를 배경으로, 발칙한 사랑과 유혹의 내기로 엄격한 유교 질서에 도전하는 이들의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미 관객에게 검증된 영화와 캐릭터를 다시 해석해 표현해야 하는 배우들에게도 이 같은 ‘트랜스미디어’ 드라마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쟁쟁한 선배 배우들이 거쳐 간 캐릭터를 이어받는 것 역시 부담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오싹한 연애’의 박은빈은 “영화는 2시간이지만 드라마는 12부작이기 때문에 최소 6배 이상의 새로운 설정을 녹여냈다”면서 “원작에서 ‘여리’와 달리 드라마에서는 천여리의 손만 맞닿아도 귀신을 볼 수 있다는 설정이 더해졌다. 여러 설정을 통해 시청자분들도 원작보다 훨씬 풍족하게 작품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스캔들’의 손예진은 올 초 넷플릭스 행사에 참석해 “요즘 사극에서 화려하고 비주얼적으로 강렬한 것을 많이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 작품은 조선시대의 고증을 바탕으로 여백이 살아있는 미감을 표현하려 노력했다”면서 “한옥의 공간감까지 섬세하게 담은 작품을 보며 글로벌 팬들이 ‘한국의 조선시대에 이런 아름다움이 있었구나’라며 더 새롭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최근 콘텐츠 제작 흐름을 보면, 웹툰·웹소설 IP를 둘러싼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 흥행성이 검증된 영화들이 새로운 IP의 원천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 축약됐던 캐릭터의 서사나 서브플롯이 시리즈로 확장되면 보다 밀도 있게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CJ ENM 측은 “영화를 드라마화하는 과정에서 세계관이 넓어지고 감정선이 깊어지는데, 바로 이 지점이 최근 시청자들의 콘텐츠 소비 방식과 맞닿아 있다”면서 “2차·3차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며 세계관을 능동적으로 확장하는 요즘 시청자들에게, 원작의 핵심은 유지한 채 새로운 서사의 층위를 더해주는 영화 원작 드라마는 매력적인 놀이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국내 콘텐츠 제작 구조가 점차 할리우드식 스튜디오 체제로 전환하면서, CJ ENM 등 대형 스튜디오가 보유한 영화 IP를 드라마·시리즈로 다양하게 활용하는 전략이 한층 수월해진 것도 영화와 드라마 간 IP 이동이 자유로워진 배경으로 거론된다. ‘오싹한 연애’ 역시 CJ ENM이 배급한 영화다.
다만 영화가 IP의 새로운 원천으로 부상하는 것이 K-콘텐츠 산업 전반에 새로운 활력이 될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웹툰·웹소설 기반 콘텐츠가 늘면서 업계 전반의 ‘오리지널리티(독창성)’가 현저히 줄어든 것처럼, 리메이크 혹은 트랜스 미디어 작품의 증가가 오히려 업계의 생동감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한 제작업계 관계자는 “이미 흥행이 검증된 영화 IP를 각색하는 것은 리스크를 줄이는 안전한 선택이지만, 그만큼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려는 시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검증된 IP에만 의존하는 흐름이 굳어지면 장기적으론 창작 생태계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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