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갈등' 경기도 전국 2위…국가유산 간판 바꿔도 무의미 [유산의 역설: 보존인가, 생존인가②]
2026.07.15 05:03
보존·개발 충돌 빈번… 현상변경 처리건수 5년 연속 전국 2위
‘문화·자연유산 보존 조례’ 개정 무색… ‘거리 기준’은 그대로
오산 독산성 일대 공동주택 차질… 개발 지연·재산권 침해 논란
영국 리버풀처럼 ‘사람과 유산 공존’… 미래지향적 결단 절실
도내 곳곳 ‘재산권 제한’ 원성… 솔로몬의 해법 ‘SOS’
오래된 집을 새로 짓고, 허물어진 담장을 고치고 싶어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규제의 벽’이 있다. 국가유산 주변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이야기다.
내 땅에 내 집을 가졌음에도 마음대로 손댈 수 없다는 게 보존과 생존 사이 가장 큰 마찰 지점이다. 국가유산 주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이나 개발을 하려면 유산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 받아야 하며, 경우에 따라 국가유산청으로부터 ‘현상변경 허가(국가유산 주변의 현재 상태를 바꾸는 개발 허가)’까지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제약도 뒤따른다.
이 허가를 받기 위한 절차 역시 지난하다. 신청서는 시·군·구를 거쳐 국가유산청으로 넘어가고, 전문가 현지조사와 국가유산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야 비로소 여부가 결정된다. 법정 처리 기간은 30일로 규정돼 있지만 심의 및 보완 요구가 이어질 경우 실제 주민들이 대기해야 하는 기간은 수개월 이상으로 길어지기 일쑤다.
내 땅에 내 집을 가졌음에도 마음대로 손댈 수 없다는 게 보존과 생존 사이 가장 큰 마찰 지점이다. 국가유산 주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이나 개발을 하려면 유산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 받아야 하며, 경우에 따라 국가유산청으로부터 ‘현상변경 허가(국가유산 주변의 현재 상태를 바꾸는 개발 허가)’까지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제약도 뒤따른다.
이 허가를 받기 위한 절차 역시 지난하다. 신청서는 시·군·구를 거쳐 국가유산청으로 넘어가고, 전문가 현지조사와 국가유산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야 비로소 여부가 결정된다. 법정 처리 기간은 30일로 규정돼 있지만 심의 및 보완 요구가 이어질 경우 실제 주민들이 대기해야 하는 기간은 수개월 이상으로 길어지기 일쑤다.
■ 국가유산 전환 후에도 年 2천건…“개발 허가 필요”
14일 국가유산청 ‘국가유산관리현황’에 따르면 이 같은 현상변경 심의 처리 건수(전국 기준)는 2023년 2천912건에서 2024년 2천626건, 2025년 2천54건 등 최근 3년 동안에만 7천500여건으로 집계됐다. ‘문화재’였던 명칭은 ‘국가유산’으로 바뀌었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연 2천건이 넘는 개발 심의가 대못처럼 박혀 있는 셈이다.
특히 경기도는 전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 개발이 이뤄지는 동시에 주민 주거지와 밀착된 ‘도심형 국가유산’이 몰려 있어 보존과 개발의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KOSIS e-지방지표를 보면 지난해 기준 경기도가 보유한 국가유산(지정·등록유산)은 1천330건으로, ▲경남(2천393건) ▲경북(2천298건) ▲서울(2천146건) ▲전남(1천402건)에 이은 전국 5위 수준이다.
하지만 시·도별 국가유산 현상변경 처리건수를 뜯어보면 경기도의 갈등 상황이 크게 두드러진다. 본보 분석 결과, 9개 분과별 처리건수(허가 및 불허건수 합계)를 합산한 경기도의 연도별 순위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 연속 전국 2위였고, 이듬해(2025년) 3위였다.
구체적으로 2020년 358건, 2021년 396건, 2022년 407건, 2023년 368건, 2024년 324건, 2025년 197건이다. 즉 유산 수는 여타 지역보다 적을지 몰라도 유산 주변을 개발하겠다며 검토와 허가를 요청해 행정기관에서 처리되는 건수가 경북에 이어 전국에서 두세 번째로 많을 만큼 규제 갈등이 폭발적이라는 의미다.
■ 이름만 바꾼 조례? 거리 제한은 아직 ‘문화재보호법’ 시절
주민들이 체감하는 규제의 실체는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을 설정하는 ‘거리 기준’에서 구체화된다. 앞서 2024년 5월 국가유산 체제로의 대전환에 발맞춰 경기도 역시 올해 3월4일 ‘경기도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조례’를 일부 개정해 시행 중이지만, 주민들의 숨통을 쥔 ‘거리 기준’은 문화재 시절과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개정 조례 제7조를 보면 국가지정유산의 경우 주거·상업·공업지역은 외곽 경계로부터 200m 이내, 녹지·관리·농림지역은 500m 이내까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묶인다. 도지정유산 및 유산자료 역시 주거·상업·공업지역은 200m 이내, 녹지·농림·자연환경보전지역은 300m 이내로 제한 범위가 촘촘하다.
결국 이름만 바꿨을 뿐, 주민들의 사유재산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 거리 기준은 수십년 전 문화재보호법 시절과 같은 것이다.
이 보존지역 내에서 시행하는 모든 건설공사는 경관 훼손 여부와 조망권 등을 사전에 검토 받아야 하며, 관계되는 유산이 도지정유산일 경우 경기도유산위원회의 심의 테이블에 올라가야 한다. 고도 제한 등 구체적 행위 기준을 초과하는 건축 행위 역시 제동이 걸리는 심의 대상에 포함되는 건 마찬가지다.
■ 10년 표류한 오산 독산성·인프라 전무한 안성 객사
이러한 보존지역 규제는 ‘유산 보호’라는 공익적 목적을 담고 있다. 다만 일부 현장에선 개발 지연과 재산권 침해 논란을 낳으며 주민 갈등을 유발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10년째 첫 삽도 뜨지 못하고 표류 중인 오산 독산성 일대다. 이 지역은 7천 가구 규모의 공동주택 공급 계획이 세워졌으나, 문화재위원회로부터 ‘경관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수차례 부결되며 강제로 시간이 멈췄다.
1973년 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평택 대동비 주변도 다르지 않다. 보존지역 규제에 묶인 원주민들은 수십년째 낙후된 집을 고치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반면, 불과 500m 떨어진 규제 밖 구역에는 대규모 최첨단 택지개발이 진행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특히 낙후지역에서 획일적 규제가 이어지면 최소한의 생활 인프라 확충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게 문제다. 국가보물 주변인 안성 객사 인근에 위치한 양복지구는 국가유산 심의에 발목이 잡히면서 20년 넘게 추가 개발 없이 허허벌판으로 방치돼 있다. 이로 인해 인근 주민들은 장을 보러 타 지역으로 원정을 떠나는 불편을 겪는다.
도 지정 문화재자료인 서이면사무소가 위치한 안양일번가 상권 역시 30년이 넘은 노후 쇠퇴 건물이 밀집해 있음에도, 각종 현상변경 규제에 가로막혀 전반적인 리노베이션이 난항을 겪는 등 도심 공동화와 재산권 침해 논란이 일었다.
■ “보존도 개발도 살릴 ‘유연한 관리’ 시급”
해외에선 국가유산 보존과 지역 발전의 균형을 찾기 위한 다양한 해법을 시도하고, 패러다임을 바꿔가고 있다.
유산의 원형을 보전하면서 현대적 상업 기능을 접목한 에스토니아 탈린의 ‘공존형 모델’, 과감한 규제 완화와 인센티브 확대로 개발의 접점을 찾은 스페인의 ‘절충형 모델’, 세계유산 지위 상실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도시의 미래와 재개발을 선택한 영국 리버풀의 ‘결단형 모델’ 등이 좋은 선례다.
새로운 국가유산 체계의 취지를 살리려면 우리나라도 해외 사례처럼 균형점을 찾는 ‘유연한 제도 개선’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주민의 삶과 국가유산의 가치가 상생할 수 있는 맞춤형 핀셋 관리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보전이 반드시 필요한 지역은 엄격히 관리하되, 이미 개발이 진행된 지역은 사회적 합의와 전문가 심의를 거쳐 유연하게 관리하는 방향으로 제도도 고민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범현 성결대학교 도시디자인정보공학과 교수는 “그동안의 문화유산 정책은 보수적인 보전에 치우쳐 주변 지역과 조화롭게 정비하는 개념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며 “국가유산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지역 주민들의 삶과 개발 수요를 함께 고려하는 ‘문화유산 주변지역 정비·개발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그는 “문화유산 지정으로 과도한 재산권 제한이나 자산가치 하락이 발생하는 경우 이에 대한 지원과 보상 방안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면서 “경관법상 중점경관관리구역 지정이나 국토계획법상 사전협상제도 등을 활용해 일률적으로 개발을 막기보다 사안별 건축심의와 공공기여를 통해 합리적인 개발을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기획취재팀=이연우·금유진·김소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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