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에서 꼭 필요한 ‘좋은 끝맺음’
2026.07.15 09:58
넥슨의 온라인 게임 ‘크레이지 아케이드’(크아)가 2026년 8월 서비스 종료를 공지했다. 2001년 출시돼 무려 25년 동안 굴러온 게임이다. 나도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때까지 이 게임을 즐긴 기억이 있다. 내가 더는 이 게임을 하지 않는 것처럼 많은 유저가 차츰 그 세계를 떠났고, 결국 넥슨이 서비스를 끝내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워낙 갑작스럽게 서비스 종료 공지가 나왔기 때문인지, 종료 공지에 앞서 평소보다 길게 서비스를 점검한다는 공지가 나오자 “대규모 업데이트라도 하나!”라며 기대감에 부푼 글을 올린 유저도 있었다. 그런 마음이 무색하게도 점검 끝에 올라온 것은 서비스 종료 안내 공지였다. 유저의 글은 짧은 희비극으로 끝났지만, 서비스 종료 직전까지도 자신이 사랑하는 게임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지 못한 그 마음이 어쩐지 애틋하게 느껴진다.
서비스 종료, 줄여서 ‘섭종’이라고도 부른다. 섭종은 온라인 게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모든 온라인 게임은 언젠가 섭종을 맞이할 운명이다. 게임 유저 모두 그것을 알지만, 동시에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크아만 해도 25년을 운영한 게임이다. 이 게임과 함께한 젊은 시절의 기억, 이 게임에 쏟은 셀 수 없이 많은 시간, 이 게임에 쓴 현금, 이 게임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 섭종은 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지운다. 콘솔 게임은 실물로 보유할 수 있어 영원히 내 것으로 남지만, 서버가 있어야만 운영되는 온라인 게임은 언제까지고 내 것으로 남아주리라는 보장이 결코 없다.
이렇다보니 온라인 게임에서 섭종은 매우 신중하면서도 사려 깊게 진행돼야 한다. 오래 게임을 사랑해준 유저들에 대한 존중을 보이지 않으면 그 회사는 오래도록 원망의 대상이 될 것이다. 유저들이 그 게임에 쏟은 정성과 시간에 대해 분명하게 위로와 감사를 표하고, 이제 추억으로만 남게 될 그 게임에 대한 기억이 끝까지 좋은 느낌으로 남도록 이벤트나 영상 같은 것을 준비하는 것이 기본이다.
예를 들어 2026년 7월 서비스 종료를 공지한 중국의 모바일 게임 ‘신월동행’은 “팀장님께 드리는 마지막 인사”라는 제목의 3분짜리 영상으로 유저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팀장’은 유저가 플레이하는 주인공이 게임 속에서 불리는 호칭이다. 즉 게임 속 캐릭터들이 서사의 연속선상에서 유저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충실하게 감사를 표하니 유저들도 섭종에 대한 분노 섞인 댓글을 남기는 대신 게임하며 즐거웠던 기억을 나누는 댓글을 남긴다. 댓글창에는 “내가 하던 게임은 회사에서 유기됐는데, 신월동행은 이런 애정과 정성이 가득한 영상으로 인사를 건네준다”며 부럽다는 말도 보인다.
일본의 온라인 게임 ‘파이널 판타지 14’는 이 방면에서 전설적인 행보를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그 명성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 작품도 상당한 기대를 품고 출시됐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 개발한 데 견줘 엉망진창인 게임 퀄리티로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결국 출시된 지 2년 만에 섭종을 공지해야 했다.
게임은 최악이었지만, 섭종 방식만큼은 최고였다. 개발사는 게임 속 세계에 거대한 재앙이 닥쳐 세계가 멸망하는 스토리를 통해 섭종을 세계 멸망으로 표현해냈다. 이미 수많은 유저가 떠난 폐허 같은 ‘망겜’에 끝까지 남았던 유저들은 섭종을 앞둔 날 게임 속에 모여 멸망이 찾아오는 세계를 함께 지켰다. 멸망 직전 영상이 하나 재생됐다. 그 영상에서 게임 속 캐릭터들은 멸망을 피해 어디론가 텔레포트된다. 그들이 다다른 곳은 새로운 세계다. 영상은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말과 함께 작품의 리뉴얼 소식을 알리며 끝났다.
약 9개월 뒤 리뉴얼된 작품이 출시됐고, 게임의 평가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섭종 영상에서 텔레포트된 이들이 도착한 세계가 새 게임의 무대였다. 달리 말하면 마지막까지 게임을 지켰던 이들이 새 게임을 연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섭종된 게임이 설치된 유저가 새 게임을 시작하면 다른 유저들과 다른 방식으로 게임 세계에 등장하는 연출이 더해졌고, 이들의 캐릭터 목덜미에는 ‘대재앙을 함께 이겨낸 이들의 표식’이 새겨졌다. 때 이른 섭종을 장대한 서사로 역전시키고 유저들에게 최대한의 존중을 표함으로써 흑역사를 반전의 기회로 만들어냈다.
‘크아’의 짝꿍 같은 넥슨의 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도 크아보다 먼저 섭종의 아픔을 맞았다. 2004년 출시돼 2023년 섭종됐는데, 후속작 출시가 이유였다. 카트라이더의 섭종은 앞선 게임들과 달리 그 파장이 더욱 심각했다. 카트라이더는 스타크래프트, 리그오브레전드 등과 같이 프로리그가 운영되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섭종 소식에 카트라이더 리그도 그야말로 단숨에 폐지됐다. 프로게이머들, 팀들, 팀에 고용된 이들, 리그를 운영하는 이들 모두 한순간에 미래가 멈춰버리고 말았다.
후속작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유저들이 오랫동안 사랑하고 시간을 쏟은 것은 원작이었다. 개발사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섭종 과정은 충실하지 못했고, 유저에 대한 존중은 보이지 않았다. 언론 보도를 통해 먼저 알려진 섭종 소식에 유저들의 분노는 이미 고조됐다. 뒤늦게 공식 공지가 올라왔고, 몇 달 뒤 디렉터가 직접 소통하는 온라인 생방송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떠난 마음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많은 유저가 후속작으로 넘어가는 대신 게임을 접는 쪽을 택했다.
카트라이더를 사랑했던 유저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자료가 하나 있다. ‘카트라이더 서비스 종료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업로드된 8분51초짜리 영상이다. 카트라이더가 종료되기 5분 전, 게이머 8명이 모여 수도 없이 달렸던 트랙을 마지막으로 달린다. 한 판을 끝내고도 아직 시간이 남자 이들은 마지막 한 판을 하기로 한다. 서비스 종료 시간이 지나더라도 누구도 완주하지 않으면 게임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들은 알았다. 출발 직전 완주하지 말자고 서로 약속하지만, 그런 약속이 지켜진다면 온라인 게임이 아니다. 누군가의 배신으로 결국 그 판은 끝이 났다.
이제 정말 서비스 종료까지 몇십 초 남지 않은 상황. 영상을 업로드한 유저는 다급하게 혼자 할 수 있는 모드로 접속한다. ‘서버와의 접속이 끊어졌다’는 안내 메시지가 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린다. 그는 결승선 앞에서 속도를 죽이고 서성거린다. 결승선을 등지고 역주행도 해보지만 시스템은 역주행을 허락하지 않는다. 2분 정도 결승선을 바라보다가 그는 결국 완주를 택한다.
해당 유저는 영상 설명에 이렇게 적었다.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나의 첫 온라인 게임이자 유일하게 10년 넘게 함께해온 카트라이더여, 편히 쉬어라.” 게임을 만든 이들보다 그 게임을 사랑하는 유저들의 마음이라는 게 이렇다. 19년이라는 세월을 풍미한 카트라이더의 대미는 개발사가 아니라 유저들이 장식했다.
카트라이더 후속작은 출시 2년7개월 만에 섭종됐다. 카트라이더에 등 돌린 유저들은 끝내 후속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잘못 기획된 섭종의 흔한 결말이었다.
2016년 출시된 미국의 슈팅 게임 ‘오버워치’도 카트라이더처럼 후속작을 출시하며 2022년 10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특별한 마무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작품 속 이야기를 활용한 마지막 인사말은 인상적이었다. 공지된 시간이 되자 접속한 유저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출력됐다. “최고의 여정도 끝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길이 곧 펼쳐지겠죠.” 게임 속 ‘소전’이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게임의 제목이기도 한 오버워치는 어벤저스와 같은 일종의 자경단으로, 소전은 오버워치의 리더 격인 인물이다. 모종의 사건들이 누적되며 오버워치는 해체 기로에 놓였는데, 소전은 자신이 사랑했던 조직이 해체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오버워치에서 복무했던 건 일생의 영광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무언갈 사랑해도 이별을 고할 때가 오리란 걸 우린 알죠. 최고의 여정도 끝나기 마련이니까요. 그래도 새로운 길이 곧 펼쳐질 겁니다. 그 길이 우릴 어디로 데려갈진 아무도 모르겠지만.”
게임 속 세계에서 오버워치의 앞에는 정말로 새로운 길이 펼쳐졌다. 오버워치가 해체된 세계는 테러의 위협에 직면했고, 과거 영웅들은 세상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테러에 맞서며 다시 뭉쳤다. 오버워치 1편이 해체 직전까지를 다뤘다면 오버워치 2편은 조직이 재결성된 직후를 다룬다. 이렇게 1편과 2편은 서사적으로 연결됐고 섭종은 설득력을 얻었다. 조직에 대한 애정과 헌신을 드러내면서도 그 시절이 끝났음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국면을 준비하는 소전의 말은 서사의 단단한 연결고리가 됐다.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파이널 판타지 14의 엔딩 메시지와 “최고의 여정도 끝나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길이 곧 펼쳐질 것”이라는 소전의 의지는 일맥상통한다. 끝을 맺어야 다시 혹은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잘 기획된 섭종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교훈이다. 이 이야기는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기 위해 툭툭 털고 일어나라는 것. 끝난 자리에 맥없이 주저앉아 있기에 우리 삶은 여전히 가능성으로 가득하다는 것.
그 가능성이 우릴 어디로 데려갈진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끝을 잘 맺어야만 더 나은 곳으로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당연하지만 게임만의 얘기는 아니다.
강남규 ‘토론의 즐거움’ 멤버·‘지금은 없는 시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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