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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돌’을 좋아하면서 ‘페미니스트’일 수 있을까[에프워드]

2026.07.15 07:00

에프워드 ⑬
일러스트 | 이아름 기자


페미니즘(Feminism)이 새로운 에프워드(F-word: 성적인 욕설을 우회적으로 의미)가 된 시대, 여성(F)의 관점으로 금기에 반기를 드는 칼럼 [에프워드]입니다.


10년 전 봄~초여름은 뜨거웠다. 그해 남자 아이돌(남돌) 팀을 구성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크게 흥행하며 온 사회가 도전자들의 얼굴과 이름으로 뒤덮였다. ‘당신의 소년에게 투표하세요’란 주문은 그 어떤 대통령 선거나 총선거에 뒤지지 않는 열기를 불어넣었다. 2017년은 여자가 남자에 미치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현상으로 내 안에 각인됐다.

나 역시 그 광풍의 중심에서 ‘내 픽’ 남돌과 함께 울고 웃었다. 그 프로그램만 놓고 보면, 결말은 폭풍 오열이었다. 내가 응원했던 이들은 최종 탈락했다. 그러나 프로그램 종영은 또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의미했다. 그들은 다른 팀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나는 열렬한 팬이 돼 ‘덕후’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투표, 음원·뮤직비디오 스트리밍, 팬미팅, 국내 올콘(모든 콘서트에 감), 해외 콘서트 원정, 음악 방송, 소셜미디어 활동, 주변에 홍보, 앨범 구입 등…. 그처럼 열정적인 애정 공세와 충성 소비는 그룹이 해체되며 자연스럽게 ‘완덕(덕질 완료)’하기 전까지 꽤 오래 이어졌다.

팬덤 문화에 깊숙이 관여했던 그 몇 년의 시간 동안 분명 행복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 찝찝함의 정체는 모순이었다. 남돌 덕질의 주 소통 공간이던 트위터(현 엑스)는 페미니즘 논의가 활발히 오가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 공간에서 ‘페미니스트X남돌 팬’이란 교집합은 어딘가 이상했다. 남성 숭배와 여성혐오를 재생산하는 대중문화에 기여하고 그것을 옹호한다는 사실을 둘러싼 내면의 갈등은 늘 존재했다. 이번 [에프워드]는 10년 묵은 그 모순을 돌아본다.



아이돌그룹 팬들이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의 출근길을 지키며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남돌을 좋아하면서 페미니스트일 수 있을까’란 고민은 꽤나 보편적이었다. 내면의 모순을 직면한 여성이 한둘이 아니었단 소리다. 그 일차적인 원인은 사실 남돌에게 있는데, 1세대부터 지금까지 30여년 동안 남돌들이 빚어낸 ‘사회적 물의’ 리스트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특수강간, 불법촬영, 성매매, 성매매알선, 음주운전, 불법도박, 특수협박, 폭행, 탈세, 마약 등 범죄 분야에서부터 크고 작은 인성 논란과 여성혐오까지 각종 사건이 망라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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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좋아했던 걸 부끄럽게 만드는’ 사태가 남돌 계보에서 반복되면, 팬들은 어디 가서 남돌 덕질 경험을 자랑스럽게 얘기하지 못하게 된다. 그것이 꼭 내가 좋아하는 남돌이 저지른 행위가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다. 결과적으로 죄는 남돌이 지었는데 정작 팬이 죄인이 되고, 관련 없는 다른 남돌 팬들까지 몸을 사리는(?) 모습이 남돌판에선 무척 흔했다. 때로는 ‘(피해자와 같은) 여자로서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을 좋아한다니, 남자에 미쳤다’는 비난이 팬들을 향하곤 했다. 반대로 남돌이 저지른 사건의 피해 여성을 공격하거나 모욕하는 일부 팬들의 행태와 팬덤 내 여성혐오적 언어를 보고 있자면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이러한 아수라장 속에선 ‘덕질이란 뭘까’라는 번뇌에 빠질 수밖에 없다.

보다 핵심적인 모순의 원인은 이성애 문법 그 자체에 관한 회의였다. 남돌 덕질은 ‘갑자기 홱 돌아버리면서’ 시작됐다. 그야말로 ‘덕통사고(교통사고에 빗댄 표현)’이자 자연재해 그 자체였다. 그럴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배경은 동물적 본능이었을 것이다. 연예 산업이란 성적 어필을 하기 마련이고, 남돌과 여성 팬덤 사이에서는 숭배, 돌봄, 헌신 등 흔한 이성애 권력 관계와 유사한 구조가 형성됐다. 여성 팬이 자신을 ‘○○맘’이라 지칭하고 남돌을 ‘내 새끼’라 일컫는 언어 관행은 모성애의 껍데기를 쓴 이성애 그 자체였다.

돌아보면, 페미니스트 되기와 팬덤 수행 간 모순을 직시한 경험은 개인적이라기보단 시대적이었다. 10대~30대 여성을 망라한 페미니즘 리부트와 4B 운동이 팬덤 문화를 낯설게 보게 한 것이다. 내 경우 페미니즘에 빠진 것이 먼저고 남돌 덕질이 산사태처럼 덮친 양상이었지만, 반대로 남돌 덕질을 하면서 모순을 체감하고 페미니즘적 성찰에 눈을 뜨게 된 사례도 있다.

논문 ‘BTS ARMY에서 페미니스트 팬으로: 3세대 K-Pop 아이돌 팬의 페미니즘 실천과 한계(2020)’는 팬과 페미니스트의 정체성이 공존하는 여성 팬을 연구했다. 연구에 참여한 여성 팬 중엔 “팬덤 내부에서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얻게 된” 경우가 있는데, 그것에는 “팬덤 외부의 비판에 자신이 공감한 것과, 같은 아미라는 집단에 소속된 내부자들이 (여성혐오 논란에서) BTS를 비판한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페미니스트 팬’으로서 정체화하고, 그 과정에서 정체성 모순에 대한 갈등을 겪었으며, 그로 인해 팬덤을 이탈하거나 이탈하려고 고려했다.

즉 ‘남돌을 좋아하면서 페미니스트일 수 있을까’란 문제의식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수많은 여성이 내밀하게 겪는 ‘페미니스트이면서 남자를 좋아할 수 있을까’, ‘남자와 연애나 결혼을 할 수 있을까’란 질문과도 사실 같다. 어떤 특정 남성 개인이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나 자신이 가부장제를 지탱하는 일원이 되는 것 아닌지에 대한 여성 스스로의 불안감과 반성이 이러한 내적 갈등으로 나타난다. 이런 갈등을 단지 ‘남자를 못 잃었다’고 치부하는 건 너무 얄팍할지 모른다.



이미지컷. unsplash


나의 행위가 내가 지지하지 않는 체제의 존속을 강화하는지 약화하는지 돌아보는 건 분명 의의가 있다. 어떤 대상을 좋아하는 행위가 나 스스로 세운 내면의 가치와 모순되지 않는가를 묻는 건 그 가치를 실천하려는 입장에선 굉장히 중요하다. 페미니즘에서 이러한 반성적 성찰은 역사가 깊다. 이를 ‘이성애와 페미니즘 사이의 긴장’이라고 칭하고 보면, 근래 이성애뿐 아니라 그것과 맞물려 작동하는 연애 규범, 대중문화, 팬덤까지 도마에 오른 것이 오히려 늦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성애를 향한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급진적인 비판으로는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을 꼽을 수 있다. 그 한 예로, 1979년 영국에선 ‘리즈 혁명적 페미니스트 그룹’이 한 편의 글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치적 레즈비어니즘: 이성애 반대론’이란 제목의 글에서 “진지한 페미니스트에겐 이성애 포기 말고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근본적 억압이 바로 섹슈얼리티를 통해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이성애 커플을 “남성 우월주의라는 정치 구조의 기본 단위”로 규정하면서 “커플 관계는 억압의 현실을 가리고, 이성애 커플 관계에 참여하는 모든 여성은 그 토대를 더 튼튼하게 함으로써 남성우월주의를 떠받치는 데 기여한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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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이 주장은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구조적 문제를 여성 개인에 대한 검열을 통해 해소하려 한다는 난점이 있다. 그럼에도 이 주장을 시대적 배경과 떼어놓고 평가할 수는 없다. 당시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 물결 하에 이성애 관계, 가정폭력, 섹슈얼리티 같은 문제가 가부장제를 비롯한 권력의 문제로 재해석되던 시기였다. 이성애 관계와 성적 실천 자체가 정치적 분석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의 의의는 적어도 이성애를 자명하고 자연적인 개인적 선호가 아니라,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제도로 의제화했다는 데 있다.

약 50년이 지나 영미권 언론에는 이성애를 둘러싼 회의적 시각을 다루는 글이 연이어 실렸다. 2019년 연구자 아사 세레신은 기고에서 ‘이성애비관주의(Heteropessimism)’란 용어를 썼다. 그는 이성애비관주의가 “이성애 관계의 수행적 단절로 이뤄지며, 대개 이성애 경험에 대한 후회나 창피함, 절망의 형태로 표현된다”며 온라인에서 이성애비관주의가 급증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성애비관주의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대신, 이성애비관주의가 “이성애 문화에 널리 퍼진 끔찍함과 일상적인 고통”으로부터 마음을 선제적으로 방어하는 기제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이성애자 여성 사이에서 일종의 “마취” 효과로서 이성애비관주의가 번진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이 용어를 체념의 뜻이 더해진 ‘이성애운명론(Heterofatalism)’으로 수정했다.

이 글은 큰 화제를 낳았다. 각종 밈이 탄생했음은 물론이고, 그 반향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2025년 보그 영국판은 ‘이제 남자친구가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인가?’란 칼럼을 게재했다. 이 칼럼은 “연애 중인 여성들조차 남성과 이성애에 대해 한탄한다. 부분적으로는 다른 여성들과 연대하기 위해서지만, 이제는 근본적으로 ‘남자친구 중심의 여자’가 되는 것이 멋없게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하다”라고 진단했다. 이 칼럼은 “우리가 이성애 규범을 공개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비판하는 한, ‘남자친구가 있는 것’은 공적 삶에서 다소 불안정하거나 심지어 논쟁적인 개념으로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러스트 | 이아름 기자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남성을 좋아하는 일이나 남성을 떠받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문화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것이 전혀 유난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페미니즘을 접한 여성이라면 한 번쯤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볼 수밖에 없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방식은 정말 사적인가. 그 마음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구조를 지탱하고 있는가. 여성들은 수십 년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지난달 <이성애의 비극> 저자 제인 워드 교수를 인터뷰한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남자를 사랑하면 반드시 따라오는 정신적 모순. 이성애 하는 여자 친구들과 항상 이야기 나누는 바입니다.” 반드시 따라오고야 마는 이 모순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남자와 여자가 싸우지 말고 사랑해서 ‘이성애를 다시 위대하게’ 하는 것이 해법일까?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unsplash


이 대목에선 페미니스트 사상가 벨 훅스의 견해를 참고해본다. 그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서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여성지향적 여성(woman-identified woman)’은 남성의 승인을 얻는 일을 삶의 우선순위로 삼지 않는다고 봤다. 누구를 욕망하는지, 누구를 사랑하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승인에 자신의 가치를 맡기는지, 관계와 충돌하면 페미니즘을 즉시 포기하는지 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벨 훅스는 ‘남성과 관계 맺는 여성은 여성지향적 헌신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비판하기 위해 이러한 논지를 전개했다.

이 논지에 비춰보면, 모순을 설명하기까지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가 조금은 설명된다. 애초에 ‘남돌 팬이냐 페미니스트냐’, ‘남자를 좋아하느냐 마느냐’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부터가 잘못됐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돌 팬이면서 페미니스트일 수 있을까’는 불완전한 질문이었다. 모순을 직시하면서 떠올린 문제의식 자체는 타당했지만 그 해법이 양자택일로 귀결될 필요는 없는 일이다.

더불어 특정한 요건으로 여성을 규정짓는 일은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 ‘페미니스트라면서 ○○일 수 있느냐’ 류의 접근방식이 여성을 ‘모범적인’ 틀 안에 가두는 것 아닌가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록산 게이의 말처럼 완벽하지 않은 ‘나쁜 페미니스트’가 반페미니스트보다 낫지 않은가.

다시 개인적 경험으로 돌아가면, 덕질에 한창이던 시절에도 나는 친구들과 반성폭력 시위, 불법촬영 규탄 시위 등에 나갔다. 뜨거운 광장과 뜨거운 콘서트장에서 모두 나는 나로 존재했다. 수많은 남돌 팬들도 그 광장에 힘께 있었다. 두 가지 정체성이 내면에서 충돌한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둘은 별개로 존재했다. ‘A이면서 not A인’ 상태가 아니라 ‘A이면서 동시에 B인’ 상태였던 것이다. 어쩌면 모순이라고 느낀 덕에 두 정체성 모두에 더욱 충실해졌을 수도 있다.

이처럼 인간이란 모순을 안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 이 문제에서 모든 여성에게 적용될 만한 답은 있을 수 없다. 모순 앞에 흔들리면서도 내가 믿는 가치를 잊지 않으며 중심을 잡는 것, 모순을 안고서도 조금씩 전진하는 것, 그것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대안 아닐까.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이런 자료를 봤어요

-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 2022. “그게 되나 적당히 좋아하는 게: 영화 〈성덕〉 대담”. https://fwdfeminist.com/2022/10/19/movietalk-1/
- Asa Seresin. 2019. “On Heteropessimism”. The New Inquiry(Oct. 19). https://thenewinquiry.com/on-heteropessimism/
- bell hooks. 2000.
- Chante Joseph. 2025. “Is Having A Boyfriend Embarrassing Now?” Vogue UK(Oct. 25). https://www.vogue.co.uk/article/is-having-a-boyfriend-embarrassing-now?
- Lal Coveney 외. 1979. “POLITICAL LESBIANISM: THE CASE AGAINST HETEROSEX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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