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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보상’이냐 ‘관치 개입’이냐··· 호남 반도체 산단의 진짜 과제

2026.07.15 06:53

호남이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로 결정됐다. 왜 호남일까? 이재명 대통령은 “기존 용인·평택을 중심으로 한 사이트는, 특히 전력·용수 등이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 다음 날인 6월30일, 이재명 대통령이 광주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 비전 국민보고회’에 참석해 정부와 기업의 MOU체결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3대 메가프로젝트(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발표한 이재명 대통령의 다음 행선지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였다. 발표 다음 날인 6월30일 이 대통령은 광주를 찾아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 비전 국민보고회’를 열었다. 지금껏 반도체 생산 거점은 경기 평택과 용인 등 수도권에 몰려 있었다. 이재명 정부는 이를 전국으로, 특히 서남권인 호남으로 분산해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약 400조원을 투입해 호남에 반도체 ‘팹(Fab)’ 2기씩을 짓기로 했다. 팹이란 제조를 뜻하는 ‘Fabrication’을 줄인 말로, 반도체 제조 시설을 의미한다.

야권은 두 기업의 결정을 두고 ‘관치 개입’이라고 반발했다. 6월29일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서로 경쟁하는 2개의 대기업이 동시에 같은 입지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기업의 자율적 판단보다 정부의 관치 개입에 따른 억지 결정임을 가리킨다”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한동훈 무소속 의원도 “반도체 산업을 정치적 대결의 도구로 써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비판의 요지는 이렇다. ‘전국 모든 지역이 반도체 산단 유치를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 인프라와 자원이 부족한 호남으로 입지가 결정된 건 집권 세력의 정략에 따른 관치다.’

왜 호남일까? 이재명 대통령은 6월29일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존 용인·평택을 중심으로 한 사이트는, 특히 전력·용수 등이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기존 수도권 인프라 한계를 극복할 대안이 호남이라고 제시했다. “호남 지역이 장기간 개발에서 소외되면서 오히려 기회의 요인이 된 측면이 있다. 용수도 풍부하고, 특히 신재생 에너지가 풍부한 곳이 바로 서남해안 일대로 전력과 용수, 안정되고 값싼 용지가 풍부한 이 지역을 새로운 사이트로 개발해야 한다.”

세정·냉각 등 반도체 제조 과정 전반에는 막대한 전력과 용수가 사용된다. 6월29일 SK그룹과 삼성전자 총수도 이재명 대통령 앞에서 공통적으로 인프라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대규모 반도체 공장은 부지와 전력, 용수, 인력을 모두 갖춰야 한다. 개발 여건을 충족하는 서남권에 새로운 생산기지를 구축하겠다(최태원 SK그룹 회장).” “전력과 용수, 인력 등 많은 인센티브 지원이 기대되는 광주를 후보지로 계획하고 있다(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호남에 반도체 산단 구축이 시작되면, 안정적으로 전력과 용수를 공급하는 역할은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가 맡는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호남 반도체 산단을 운영하는 데 6.3GW(기가와트) 전력과 하루 65만t 용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6.3GW는 1GW급 원자력발전소 약 6기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걸 호남에서 조달할 수 있을까?

“호남은 전력상 입지가 가장 좋은 곳이다.” 김승완 한국에너지공대 에너지정책연구소장의 말이다. 평야가 많고 바다의 수심이 얕은 호남 지역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산업이 발달했다. 한국전력통계에 따르면 전남광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량은 2025년 기준 약 7.5GW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이 지역의 전체 발전 설비량은 16.9GW다. 그러니까 정부가 내놓은 해답은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로,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호남에 직접 반도체 산단을 짓겠다는 구상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6월30일 서남권 산업단지 후보지를 항공시찰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제는 24시간 돌아가는 반도체 팹에서 사용하기에는 재생에너지가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김승완 소장은 “태양광과 풍력은 인버터라는 장치를 거쳐 (전력) 계통에 연결된다. 이런 전원이 한 곳에 몰리면 계통이 외부 충격에 출렁일 수 있다. 다행히 이건 답이 분명한 공학적 문제다. 동기조상기, 보상장치, 그리드포밍 인버터와 에너지 저장장치(ESS) 같은 기술로 보완할 수 있다. 여기에 원전이나 적정 규모의 가스발전을 함께 두면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니까 풀 수 있는 문제다”라고 말했다.

“영산강 수질 개선 필요”



김승완 소장은 화약고는 다른 지점에 있다고 말했다. “호남 계획과 용인(반도체 산단) 계획이 병립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전력 발전량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는 한 호남과 용인이 에너지 소비를 두고 서로 충돌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6월30일 이재명 대통령은 이재용 회장과 최태원 회장으로부터 기존에 진행하던 경기 용인과 새로 구축하는 전남광주 반도체 클러스터를 동시에 추진한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말했다. 기후부에 따르면, 용인 지역 반도체 팹에는 추가로 15GW 전력이 필요하다. 15GW는 정부가 발표한 올여름 최대전력수요(98.8GW)의 약 15%에 해당하는 양이다. 전남광주와 달리 용인은 자체적으로 전력을 공급하지 못한다. 송전망을 건설해 전남광주, 전북, 충북 등에서 전력을 끌어와야 하는데, 송전탑 건설 예정지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정부는 현재까지 구체적인 일정이나 계획은 밝히지 않고, ‘적기에 차질 없이 공급하겠다’라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은 상태다. 주민 반발을 낮출 뚜렷한 방안도 마련되지 않았다. 전영환 전 홍익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기업에서 쓰는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RE100 이후 반도체 산업 전략은 탄소중립 전력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용인과 호남에 동시 추진하는 게 가능할지, 정부가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6월30일 김성환 기후부 장관(오른쪽)이 용수 공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민형배 전남광주특별시장과 함께 전남 화순군 동복댐을 찾았다. ©연합뉴스


하루 65만t 용수는 계획대로 공급할 수 있을까? 호남 인근 영산강과 섬진강은 수도권의 한강이나 영남의 낙동강에 비해 수량 자체가 적다. 반도체 공정에는 수소와 산소 외에는 아무것도 포함하지 않은 물을 뜻하는 ‘초순수’가 사용되기에 수량 못지않게 수질도 중요한데, 영산강은 다른 주요 강보다 수질이 나쁘다고 알려져 있다. 6월30일 기후부는 호남 반도체 산단에 필요한 용수 확보가 어려울 거라는 의구심을 불식하기 위해 세부 용수 공급 방안을 발표했다. 6월27일 김성환 장관은 “일부 댐의 수계 조정과 여유 용량 활용 등을 통해 하루 100만t 이상의 산업용수를 추가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검토된다”라고 밝혔다.

국가는 하천 사용을 허가하는 일종의 장부를 관리한다. 김성환 장관의 말은 댐의 계약량과 실제 사용량의 차이를 반영해 ‘수리권(물을 사용하는 권리)’을 재조정하겠다는 의미다. 백경오 한경국립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지금껏 정부는 물 공급량을 계약량으로 계산했다. 윤석열 정부 때도 그렇게 계산해 물이 부족하니 신규 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현 정부는 입장을 180도 바꿔, 중요한 건 계약량이 아니라 실제 사용량이니 남는 부분을 반도체 공장에 주겠다고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미영 인하대 교수는 “전체 수량을 다시 정확히 파악해서 재배분해야 하는데, 용수는 어디든 부족하다. 한강을 사용하려고 해도 재배분을 거쳐야 하는데, 수도권은 용인을 포함한 산단이 이미 배정돼 있다. 어디든 마찬가지다. 먹고살기 위해 꼭 (산단 구축을) 해야 한다면 재배분과 재이용을 극대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백경오 교수는 “영산강 물을 수질 개선해 쓰지 않는 이상 용수는 부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제한 급수까지 검토했던) 2023년 전남광주 지역 가뭄 때도 영산강 물은 많았다. 남은 준비 기간, 충분히 영산강 수질을 개선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 수질 개선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 게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6월30일 광주를 찾은 이재명 대통령은 호남 반도체 산단이 “차별의 고통과 설움을 견뎌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만들고 지켜온 호남에 대한 역사적, 국민적 보상”이라고 규정했다. “일체의 차질 없이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라고도 약속했다. 호남 반도체 산단 구축은 현재까지 계획에 그친다. 상황에 따라 좌초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생각하는 실현 방법은 이렇다. “기업은 성장과 이윤이 중요하다, 그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가 인프라와 세제로 이쪽 지역이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을 만들어줘야 한다.”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6월29일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 뒤, 환경운동연합 등 전국 100여 개 지역 및 기후환경단체로 구성된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반대 전국행동’은 용인 반도체 산단 계획 재검토부터 요구하고 나섰다. “이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을 충당하기 위해 호남의 전력을 끌어올 계획으로 송전선로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호남의 전력을 쥐어짜 수도권에 바치는 상황에서, 당장 전남광주 제2 클러스터에 공급할 전력 수급 계획은 전무하다(6월29일 성명서).” 이번 투자가 전력과 용수라는 난제를 뛰어넘은 역사적 산업정책으로 귀결될지, 이전에 추진하던 용인 반도체 산단과 양립 불가능한 또 하나의 청사진으로 남을지는 앞으로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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