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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수소가 되는 곳… 초원서 목격한 ‘에너지 전환 실험장’

2026.07.15 00:07

[달리는 中 수소, 멈춰선 韓 수소] ① 중국의 ‘수소 굴기’한국은 2020년 세계 최초로 '수소경제육성법'을 제정하며 수소경제 시대에 가장 먼저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더딘 재생에너지 보급과 정책 혼선 속에서 국내 수소 산업은 공전을 거듭했다. 한국이 멈춰있는 사이 중국은 중앙정부의 장기 전략 아래 생산·저장·운송·활용 전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며 청정 수소 산업 개화기를 준비 중이다. 국민일보는 중국 네이멍구와 베이징 등 '수소 굴기'의 최전선을 찾았다. 중국 수소 산업의 현주소와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고, 에너지 패권 경쟁과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전략과 정책을 짚어본다.

중국 국영 종합에너지그룹 A사가 네이멍구 어얼둬쓰 서쪽 지역에 조성 중인 중국의 첫 국가 공인 그린수소·그린암모니아 생산 시범기지 앞에 지난 10일 통행 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어얼둬쓰=박상은 기자

중국 네이멍구의 어얼둬쓰 초원을 차량으로 1시간 넘게 달리자 광활한 지평선 너머로 90m 길이의 풍력발전기 날개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낮게 깔린 구름을 배경으로 초대형 풍력발전기 70기가 끝없이 이어진 모습은 거대한 바람개비 숲을 연상케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는 약 60㎞ 떨어진 그린 수소·그린 암모니아 생산기지로 보내져 탄소 배출이 없는 청정 에너지원으로 탈바꿈한다. 중국이 그리는 미래 수소경제의 청사진이 어얼둬쓰 초원에서 현실이 되고 있었다.

어얼둬쓰는 중국 최대 석탄 생산기지이자 석탄화학 산업의 중심지다. 동시에 강한 바람과 넓은 평지를 가진 대표 풍력 자원 지역이기도 하다. 중국 남부에 본사를 둔 국영 종합에너지그룹 A사는 어얼둬쓰 서쪽 지역에서 중국의 첫 ‘국가 공인’ 그린수소·그린암모니아 생산 시범기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난해 12월 중국 국가에너지국(NEA)이 발표한 제1차 에너지 분야 수소 시범사업에 선정됐다.

지난 10일 찾은 시범단지는 그린수소 공정 건설을 마치고 그린암모니아 설비 공사에 한창이었다. 2024년 말 프로젝트가 시작된 뒤 시범단지 현장이 한국 언론에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시범단지로 향하는 도로에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대형 화물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갔고, 폐광산들이 커다란 언덕을 이뤄 도로를 둘러싸고 있었다.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가 공존하는 ‘에너지 전환 실험장’인 것이다.

A사는 올해 건설을 완료하고 내년 3월부터 연간 그린수소 2만t, 그린암모니아 15만t을 생산할 예정이다. 중국에선 이미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그린암모니아 생산이 이뤄지고 있으나, 국영 기업이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건 정부 정책과 연계한 산업 표준을 마련하고 이를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업계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부터 수전해 수소 생산, 암모니아 생산까지 하나의 산업 체인으로 연결한 산업 모델을 국가 차원에서 인정하고 본격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시범단지의 핵심 설비인 수소 생산동에선 원통형 연료탱크와 흡사한 수전해 설비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기차 배터리처럼 얇은 셀 수백 장이 겹겹이 쌓인 구조로, 셀 사이로 전기가 흐르며 물이 수소와 산소로 분리된다. 시범단지에는 4개동에 걸쳐 총 48개의 수전해 설비가 구축돼 있다.

시범단지 수소 생산동 뒤편에 있는 약 15m 지름의 원형 수소탱크. A사 제공

생산동 뒤편에는 약 15m 지름의 원형 수소탱크 12개가 시선을 사로 잡았다. 암모니아 생산시설이 완공되면 수소를 공기 중 질소와 결합시켜 그린암모니아를 생산하게 된다. 시범단지 관계자는 “공장의 원재료는 황허강에서 취수한 물과 바람, 공기 세 가지뿐”이라며 “폐열·폐수 등도 재활용하기 때문에 공장에서 나오는 폐기물은 극소량”이라고 설명했다.

공장 중앙통제실에서는 풍력발전량과 송전 상태, 설비 가동률, 수소 생산량 등을 대형 전광판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의도 면적의 41배에 달하는 초원 부지에 풍력발전기 70기를 설치하고 시범단지까지 송전망을 연결하는 데에는 불과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어얼둬쓰 초원에 설치된 초대형 풍력발전기. 70기 발전기로 생산한 재생에너지는 약 60㎞ 떨어진 시범기지로 보내져 탄소 배출 없는 청정 에너지원으로 재탄생한다. A사 제공

한국에선 재생에너지 확대의 걸림돌로 ‘간헐성’ 문제가 반복적으로 거론되지만, 재생에너지 설비 비중이 60%(전체 설비 용량 기준)인 중국은 전력망 계통 안정성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해소한 듯 보였다. 시범단지 관계자는 “국가 전력망과 연계돼있어 재생에너지가 남으면 전력을 팔고, 부족하면 보충 받는 시스템”이라며 “별도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없고, 비상용 연료전지만 갖췄지만 네이멍구 풍력 자원이 풍부해 전력 부족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소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원이자 재생에너지의 잉여 전력을 장기 저장할 수 있는 매개체다.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에너지 밀도가 높으며 다양한 산업·수송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암모니아는 수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액화와 저장·운송이 용이해, 해외로 운송한 뒤 다시 수소를 추출하거나 무탄소 선박연료, 철강·화학·발전용 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차세대 에너지 운반체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은 2021년부터 5년 단위 국가 계획을 마련해 수소 생태계를 단계적으로 육성해왔다. 올해부터 시작되는 5개년 계획에는 철강·화학 산업의 탈탄소와 발전 분야까지 그린수소 실증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중국 생산 수소는 대부분 석탄·천연가스 개질에서 나오는 ‘그레이 수소’이지만, 기존 생산기반을 바탕으로 수요처를 확보한 뒤 그린수소 비중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국내 수소업계는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과 내수 시장, 보조금, 제조 역량을 앞세운 중국의 ‘수소 굴기’ 위협이 현실로 다가왔다고 진단한다. 수소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이미 재생에너지와 수소·암모니아를 하나의 밸류체인으로 연결하는 국가 표준을 만들고 있다”며 “수소 분야에서 중국이 가격과 물량으로 밀고 들어올 경우 한국이 기술 우위만으로 버티기 어렵다”고 말했다.

수소 전문가인 이승훈 연세대 겸임교수는 “한국은 일찍이 수소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실증 단지가 너무 적고 보조금 등 정책 지원이 없어 정체된 상황”이라며 “수소 생태계는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어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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