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앎은 체험 통해 영성 인성 지성으로 내재화된다
2026.07.15 03:08
교육은 인류가 쌓은 지식을 다음세대에 전달하는 기능이 있다. 인류가 쌓은 지식의 체계를 탐구하면 다양한 관점으로 지식이 축적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자.
첫째 이성과 계시의 조화라는 관점이 있다. 서양의 지식 체계는 이성 기반의 헬라 사상과 계시 기반의 히브리 사상, 두 축으로 발전했다. 이성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능력으로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체계적인 지식을 구축한다는 사상이다. 반면 계시는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무한한 능력의 하나님을 구함으로써 피조물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식을 얻는다는 사상이다. 이성만 강조하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어렵고, 계시만 강조하면 뜬구름을 잡는 것같이 허황된 지식을 추구할 수 있다. 기독교적 지식은 이성과 계시의 조화를 통해 추구할 수 있다. 초기 기독교 교부로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중세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모두 유럽을 뒤덮고 있던 고대 그리스의 이성과 특별계시인 성경을 조화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둘째 보수와 진보의 조화라는 관점이 있다. 인생은 풍성한 지식을 경험하고 체계화하기에 너무 짧다. 그래서 인류는 유구한 역사 동안 많은 사람으로부터 인정받는 지식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보수의 가치다. 또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행하신다.(사 43:19)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신으로 인류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했다. 진보의 가치다. 보수의 가치만 강조되면 변화가 어렵고, 진보의 가치만 강조되면 뿌리가 얕아 중심을 잡기 어렵다. 인류의 지식은 연속성을 제공하는 보수와 변화를 지향하는 진보의 조화로 발전했다.
셋째 지식의 체계를 나무와 숲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인류가 구축한 지식은 방대해서 개인이 짧은 시간에 획득하기는 쉽지 않다. 또 비기독교적인 지식도 넘쳐나 영적 분별력이 필요하며 신뢰 있는 기독교 교육기관을 통해 지식을 쌓아 나가는 것이 좋다. 점토로 큰 모양을 만들기 전에 철사로 뼈대를 만드는 것과 같이 전체 그림을 제공하는 교육은 지식의 체계를 쌓는 데 도움이 된다. 초기에 지식을 흡수하며 지식의 양이 쌓여 임계치에 이르면, 퍼즐 조각들은 자기 자리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식에 대한 자신만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교사가 제안한 그림이 아닌 것이다. 즉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넷째 영성과 인성, 지성의 시각이다. 대학에서는 전문지식을 얻는데 이는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 대한 탐구이며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이해의 기본이다. 전문지식은 신학과 인문학에 따라 체계화된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기본이다. 인문학은 무신론을 포함한 개개인의 신학에 기반을 둬 체계화된다. 신학 인문학 전문지식이란 세 축이 지식의 체계를 이루게 되면 세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는 말씀은 단순히 신학을 넘어 인문학과 전문지식을 아우르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의미한다. 우리는 최고의 지식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열심(사 9:7)을 본받아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남기는 충성스러운 종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마 25:14~30)
다섯째 믿음과 지식의 관계라는 관점이 있다.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우주는 과학 법칙에 따라 지배받는다. 신은 그 법칙을 깨기 위해 개입하지 않는다. 신은 없다”며 무신론적 입장에서 과학지식을 해석했다. 반면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한 존 에클스는 “오직 신성한 창조주만이 인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다. 자연주의는 생명을 설명할 수 없다”며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과학지식을 해석했다. 많은 크리스천 생물학자들이 DNA가 이렇게 정교하게 이뤄졌다면 반드시 신은 존재한다고 고백한다. 결국 전문지식에 대한 해석은 신학, 즉 믿음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다.
여섯째 지식의 기원과 역사의식의 관점이 있다. 지식의 형성은 당시 환경에 영향을 받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후 형성된 원인과 환경이 변하면서 과정적인 지식은 잊혀지고 결과적인 지식만 남는다. 이 과정에서 지식이 왜곡될 수도 있다. 대부분 신학 이론은 이단이 탄생하면서 만들어지고 탄탄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탄생의 역사적 배경은 희미해지고 신학 이론의 의미와 생명력도 약해지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제도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신자들에 의해 발전됐지만, 현재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이러한 역사의식은 옅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지식의 앎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는 지식을 배울 때 가끔 우리 마음속 깊이 들어오는 깨달음을 체험한다.(마 13:51) 하지만 이 지식이 확실한 앎이 되기 위해서는 삶을 통한 체험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지배하는 경험이며 고난 속에서 깨달음의 깊이는 더해진다. 죽음 속에서만 알 수 있는 부활의 지식이 있고,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그리스도가 있다.(눅 24:26~27)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후 십자가에서 기꺼이 ‘죽으신’ 것과 같이 육체적인 죽음 앞에서도 부활을 알기에 특정 행동을 끌어낼 수 있는 신념의 지식이 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는 것과 같은 친밀함으로 그 지식을 아는 것이다.(창 4:1) 신학과 인문학과 전문지식은 이러한 체험의 과정을 통해 영성과 인성과 지성으로 내재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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