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전
[역경의 열매] 정일웅 (1) 하나님은 내 삶의 한순간도 놓지 않으셨다
2026.07.15 03:05
가난·두려움 속 교회가 안식처 돼
군 복무 중 무장공비와 격전서 생존
인생 곳곳마다 은혜의 손길 이어져
내 인생을 돌아보면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놓으신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날이 있었고,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여긴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그분은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나를 붙들고 계셨다.
그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깨달은 것은 군 생활 때였다. 경기도 연천의 최전방 포병부대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북한에서 내려온 무장공비 두 명과 마주쳤다. 그렇게 북한에서 넘어온 무장 괴한 2명과의 생사를 넘나드는 격전은 내 평생 잊지 못하는 운명적 사건이 됐다. 격렬한 전투에서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훗날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는 일꾼으로 부르심을 확신하게 됐으며, 내 일생을 목사와 신학자로 살아가게 된 출발점이 됐다.
나는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만 해도 집안의 기대와 사랑을 한몸에 받던 아이였다. 집안 형편도 넉넉했다. 할아버지는 36년간 교편생활 중 15년을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계셨고 아버지는 은행 간부로 일하셨다. 그러나 여덟 살 무렵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사람들은 우리 집안을 두고 “망했다”고 수군거렸다. 나는 하루아침에 금수저에서 흙수저가 됐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때 이미 내 곁에 작은 교회를 두고 계셨다. 집 가까운 곳에 있던 덕호교회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었다. 가난과 두려움 속에서도 그곳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예배를 드리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고 그분이 내 삶을 붙들고 계신다는 희미한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은 늘 사람의 이름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로 이어져 왔다. 중학교에 갈 수 없던 나를 위해 장학금을 마련해 준 선생님, 해진 교복 대신 새 교복을 사 주신 담임교사, 신학의 길을 권면해 준 목사님, 그리고 독일 유학의 문을 열어 준 수많은 손길…. 모든 만남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하나님이 부족한 내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나는 진실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한 인생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총신대에서 교수로 30년을 섬기고 총장으로 봉사하며 한국교회에 수많은 제자 목회자를 길러낼 수 있었던 것도 내 능력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살려 두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편 저자의 고백처럼 여호와는 내 인생에 주인이 되셔서 나를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며 역사하셨다.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2)
이제야 고백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고 그 은혜에 빚진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 이야기는 황해도 사리원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시작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놀라운 예비하심이 숨어 있었다.
<약력> △1945년 출생 △총신대 △총신대 신대원 △독일 본대학 신학박사 △총신대 교수·총장 역임 △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 △국제독립교회연합회(WAIC)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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