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4강 뒤엔 첫 독일인 감독
2026.07.15 00:01
그는 독일인이다. 잉글랜드와 독일은 두 세계대전을 거치며 쌓인 정치·사회적 긴장감이 축구장으로 고스란히 옮겨붙은 최대 라이벌이다. 1966년 잉글랜드가 유일하게 월드컵 트로피를 들었을 때의 상대가 독일이었지만, 이후 큰 무대마다 번번이 발목을 잡은 잔인한 천적도 독일이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4강과 웸블리 홈 안방에서 눈물을 흘렸던 유로 1996 4강전은 잉글랜드 팬들에게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런 독일인이 축구 종가의 지휘봉을 잡았다. 유로 2024 준우승 직후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투헬을 선임했을 때, 현지에선 파격을 넘어선 굴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스벤예란 에릭손, 파비오 카펠로에 이어 역대 세 번째 외국인 감독이었지만, ‘독일 출신’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여론의 무게는 차원이 달랐다.
취임 순간부터 날 선 화살이 쏟아졌다. 부임 기자회견부터 “국가대표 감독은 그 나라의 정서를 체화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회의론이 따라붙었다. 이번 월드컵 명단 발표 때는 폭탄이 터졌다. 필 포든, 콜 파머, 트렌트 알렉산더아널드 등 최근 몇 년간 공격을 이끈 간판스타들을 대거 칼질하자 팬들과 독설가적인 전직 국가대표 해설자들까지 들고일어났다.
그러나 투헬은 보수적이고 답답했던 팀을 완전히 바꿔놓으며 반전을 시작했다. 노르웨이와의 8강전에서 상대의 강한 전방 압박에 빌드업이 흔들리자, 투헬은 포백과 스리백을 무려 네다섯 차례나 오가는 실시간 전술 변화로 상대를 교란하며 연장 끝에 2-1 역전승을 일궜다. 퇴장으로 수적 열세에 놓인 멕시코와의 16강전에서는 순간적으로 5-4-1 수비 체제로 전환해 3-2 승리를 지켜냈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10명의 선수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완벽하게 숨 쉬며 수비했다”고 평가했다.
팀의 ‘원투펀치’인 해리 케인과 주드 벨링엄에게 고정 포지션을 지우고, 흐름에 따라 공격수와 미드필더 역할을 오가게 하며 파괴력을 극대화했다. 매 경기 변칙 역할을 수행한 두 선수는 나란히 6골을 터뜨리며 음바페, 메시(이상 8골)와 함께 득점왕 경쟁을 벌이고 있다. BBC는 “사우스게이트 전 감독은 선수에 맞춰 전술을 짰지만, 투헬은 시스템을 먼저 정교하게 구축하고 거기에 맞는 선수를 뽑았다. 선수 개개인에게 임무를 명확히 쪼개주는 디테일이 다르다”고 짚었다.
잉글랜드는 이제 60년 만에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다시 들어 올릴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오는 16일 미국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아르헨티나와 결승행을 다툰다.
투헬은 “감독의 역할인 성과를 내고, 팬들에게 ‘우리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등 자격을 먼저 갖춰야 한다”며 국가 제창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가사는 이미 완벽히 외웠다고 한다. 현지 언론은 “잉글랜드가 결승에 오른다면, 투헬이 처음으로 영국 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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