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야기인 줄 알았던 〈투란도트〉…연출은 “전쟁을 멈추라”는 외침으로 읽었다 [취재후]
2026.07.10 16:12
■ 푸치니,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를 쓴 남자의 마지막
푸치니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으로 불리는 작곡가다. <라보엠>, <토스카> , <나비부인> 등 오늘날 세계 오페라 극장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품들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흥행 보증수표'다. <투란도트>는 그가 생의 마지막에 쓴 작품이다.
전설 속 중국의 공주 투란도트는 구혼자들에게 세 개의 수수께끼를 내고, 틀리면 목을 베어 죽인다. 그 게임에 왕자 칼라프가 뛰어들어 수수께끼를 모두 맞힌다. 그런데도 결혼을 거부하는 공주에게 칼라프는 거꾸로 내기를 건다. 동이 트기 전에 내 이름을 알아내면, 기꺼이 죽어주겠다. 투란도트는 온 백성을 동원해 이름을 캐게 하고, 병사들은 그 이름을 아는 유일한 사람을-왕자를 몰래 사랑해 온 여종 류- 붙잡아 고문한다. 류는 끝내 입을 열지 않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다.
푸치니는 이 작품을 끝내지 못했다. 푸치니는 1924년 후두암 치료를 받았는데, 류의 죽음 장면까지 쓰고 세상을 떠났다. 공주가 사랑에 눈뜨고 모두가 환희를 노래하는 결말은 그의 제자 프랑코 알파노가 채워 넣은 것이다. 사람이 죽고 또 죽는 이야기, 작곡가 자신도 끝을 맺지 못한 이야기- 그런데 우리는 이 오페라를 '사랑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다.
■ "전쟁기를 살고 있는 우리"…반전의 메시지로 읽은 <투란도트>
정선영 연출은 '왕자와 공주'라는 전설은 푸치니가 쳐 놓은 일종의 '미끼'라고 말했다. 연출가가 이 작품에서 발견한 것은 음악 속에 있는 눈물, 평화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가 이 사랑 이야기에서 전쟁을 읽어낸 건, 공주가 사람을 죽이는 이유 때문이다. 공주가 잔인해진 것은, 오래전에 자신의 조상이 낯선 남자들에게 죽임을 당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당하기 전에 먼저 죽이겠다"는 것이다. 연출가는 여기서 복수가 복수를 부르는 사슬을 봤다. 누군가 나를 해치면 나도 갚고, 그러면 상대도 다시 갚는 그 끝없는 되갚음이야말로 전쟁이 굴러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겉은 사랑 이야기지만, 그 안에 전쟁의 축소판이 들어 있다고 봤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를 죽여 얻게 되는 이익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일이 벌어지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와, 이 모든 고통을 모른 척 외면하고 있단다. 그래서 연출가는 이 공연을 통해 전쟁을 반대하는 메시지 그리고 이 고통을 외면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결말에 대한 제각각의 '해석'
<투란도트>의 결말은 100년째 관객을 사뭇 갸웃하게 만들어 왔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온 공주가 왕자의 입맞춤에 하룻밤 사이 사랑을 받아들인다니! (원작에서 칼라프는 저항하는 공주를 힘으로 제압한다. 성폭력으로 보일 수도 있는 대목이다.)
투란도트 역의 소프라노 에바 프원카는 이 장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웅장한 음악 속에서 그 입맞춤이 잔인하게 표현되면 관객들은 이 장면을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불편해하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녀가 서 온 무대들에서는 이 곤혹스러운 결말을 피하기 위해, 투란도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칼라프를 죽이거나 체포해 버리는 등 온갖 다른 엔딩이 시도됐다고 한다.
정선영 연출은 이 장면을 정반대로 해석했다. 그가 주목한 순간은 정복이 아니라 '공격하지 않는 것'이었다. 죽일 수도 있었던 상대가 도리어 자신을 내어주자, 평생 날을 세워 온 공주가 처음으로 무장을 푼다는 것. 연출가는 이 장면을 '짐으로써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이 연출가가 이 오페라에서 읽어낸 평화의 메시지다.
■ 공주는 왜 그렇게 차가운 사람이 되었나?
무대에 서는 성악가들도 이 공주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류 역을 주로 불러 온 소프라노 서선영. (이번에는 에바 프원카와 함께 투란토트 역을 맡았다.) 정작 투란도트를 오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번에 처음 이 배역을 맡아 공부하면서 '인간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극 중 투란도트의 선조는 낯선 남자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어린 공주에게 냉혹함은 두려움이 만든 자기방어이자 평생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런 공주가 자신을 내려놓은 사랑 앞에서 '계속 날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고 변하는 과정이야말로 이 작품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기자간담회가 끝나고 난 뒤, 에바 프원카에게 따로 물어봤다. 연출가는 이 오페라에 반전, 화해, 평화의 메시지를 담았는데, 당신은 진정으로 이 메시지에 동의하느냐고. 그녀는 담백하게 답했다. "예술에 있어서는 어떤 해석이든 가능하다고 봐요. 각 나라마다, 각 무대마다 연출자의 해석은 다 다릅니다. 저는 그 모든 해석에 동의하고, 받아들여요. 저는 배우니까요! 반전 메시지도 당연히 길어올릴 수 있죠"
■ 다시, 아무도 잠들지 말라
칼라프 역은 테너 백석종이 맡는다.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세계 무대에 서왔고, 이 배역을 자신의 '시그니처'로 불러왔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고국의 전막 오페라 무대에 선다. 세계의 어떤 무대보다 '부모님과 사랑하는 관객들 앞에서 노래할 수 있는' 이 무대가 특별하단다. 같은 배역을 나눠 맡은 테너 김영우의 사연은 좀 다르다. 그는 이번에 70번째로 <투란도트> 무대에 서는데, 그중 50번을 독일에서 작은 감초 역으로 섰단다. 무대 한쪽 구석에서 칼라프를 연기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다는 김영우. 그래서 자신의 칼라프에는 남들과 다른 무언가가 담길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3막에서 부를 노래가 '네순 도르마'다. 승리의 확신으로 기억돼 온 그 노래. '지금은 전쟁기'라는 말을 기억하고 들으면 조금 다르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극장에 들어선 관객이, 연출자의 의도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답은 22일 막이 오르면 각자의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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