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별세, 내가 죽어 마주하는 새로운 세상
2026.07.11 03:0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기독교 신앙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별세(別世)’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별세를 육신의 죽음으로만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별세는 삶의 마지막이 아니라, 옛사람인 ‘나’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영적 사건입니다. 고(故) 이중표 목사님은 이를 ‘별세신학’으로 풀어내며,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자기 자신에게서 떠나는 사람이라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고백합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우리의 육체가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자아입니다. 욕심과 교만, 편견과 두려움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비로소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역사하시고, 그 순간 우리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몇 해 전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특별수업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학급의 절반 이상이 러시아계 학생들이었습니다. 저는 한국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드미트리(러시아계 학생 이름)가 너희 집에서 함께 지내며 함부로 네 장난감도 쓰고, 냉장고도 열고 침대도 함께 쓴다면 어떻겠니? 매번 엄마 부르고 경찰 부를래?”
이 질문을 이해한 한 학생은 “소피아와 바벨이 저보다 영어와 수학을 잘해서 걱정된다”고 했고, 다른 학생은 “러시아 친구들 때문에 자막 영상을 봐야 해서 싫다”며 부모님께 캐나다 이민을 조르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조용히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너 영어 잘 못 하잖아. 그럼 너도 캐나다 가면 드미트리처럼 되는 거야.”
순간 교실은 깊은 침묵에 잠겼습니다. 그 한마디는 경쟁과 차별이 얼마나 쉽게 우리 마음에 자리 잡는지를 드러냄과 동시에, 우리의 시선을 바꾸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낯선 이를 쉽게 ‘외국인’이라 부르지만, 내가 다른 나라에 가는 순간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드미트리가 됩니다.
십자가는 바로 그 시선을 바꾸는 자리입니다. 내가 죽으면 경쟁자가 이웃으로 보이고, 두려움의 대상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형제자매로 보입니다. 문화와 언어의 차이는 갈등의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사랑의 사명이 됩니다. 별세는 세상을 등지는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 가정이 먼저 경험해야 할 별세는 자존심과 이기심이 죽는 일입니다. 부모가 세상의 가치관에 대해 먼저 죽고, 자녀가 경쟁보다 사랑을 배울 때 가정은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작은 교회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우리에게 참된 생명을 주셨고,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날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은혜를 경험함으로, 세상 한가운데서도 하늘나라 백성답게 살아가는 복된 삶이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장성진 목사
(온누리선교교회)
◇온누리선교교회는 ‘곧 다가올 주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別世)을 향한 비전’을 이루는 사명을 가진 주님의 교회입니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271만 이주민이 복음의 통로로 세워지고, 한국인 성도들과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롬 8:28) 다문화 신앙공동체를 이루어가기를 기도합니다. 지역 다문화선교교회로서 하나님의 선교에 더욱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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