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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다가 빚은 격자 땅에 하늘을 세운 가우디

2026.07.11 00:18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바르셀로나
5월 2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전경. 이번에 마지막으로 완성된 예수의 탑이 보인다. 172.5m로 세계 최고로 높은 성당 주탑이다. [AP=연합뉴스]
최근 가우디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다녀온 기자의 말이 귀가를 맴돈다. “여기가 신의 세계라면, 나는 그 신을 믿고 싶다.” 건축물이 한 사람의 세계관을 바꿔놓을 수 있다니, 아마 이 말은 건축가가 들을 수 있는 최상의 예찬일 것이다.

필자도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평소에 기독교 미술의 완성체로 중세 고딕 성당을 손꼽곤 했는데 그것의 업그레이드 가능성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성당 내부를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빛에 크게 감동했다. 해 뜨는 동쪽 창의 유리는 파란색 톤으로 처리하고, 해 지는 서쪽 창의 유리는 오렌지색으로 맞춰 시시각각 성당 내부의 색감이 미묘하게 바꿨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돌로 된 성당 내부를 보석처럼 영롱하게 만들었다. 마치 고딕 성당이 추구하려던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의 결합을 현대적으로 구현해냈다고 평할 만큼 전위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미감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현대 건축의 정신성에 있어 새로운 기준을 세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가우디 서거 100주기이자 착공 144년 만에 구조적인 완성을 이루었다. 매번 완공이 지체돼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일단 18개의 탑 중 가장 높고 웅장한 예수의 탑까지 세워지면서 성당의 외형이 제모습을 찾게 된 것이다. 지난달 10일에는 레오 14세 교황이 직접 성당을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했다. 그리고 그날 밤하늘에는 드론을 이용해 만든 가우디의 얼굴이 바르셀로나의 하늘을 수 놓았다.

2030년대 중반 돼야 최종 완공 전망
1859년 바르셀로나를 격자 배치를 활용, 개선·확장하는 내용의 세르다 계획. [사진 위키피디아]
가우디의 생애엔 흥미로운 점 한 가지가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아낌없이 지원하는 든든한 후원자가 일찍부터 존재한다는 점이다. 먼저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당시 스페인의 유력 기업을 이끌었던 에우세비 구엘(1846~1918)이다. 가우디보다 6살 연상인 그는 후에 공적을 인정받아 백작의 작위를 얻은 입지전적 인물로,가우디와는 고용주 관계를 넘어 평생의 절친한 친구이자 사상적 동반자가 된다.

가우디가 성당의 설계를 맡게 되는 과정도 놀랍다. 1883년부터 이 성당의 건립에 관여하는데 그의 나이는 31살에 불과했고, 건축사 자격을 얻은 지도 5년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초기 대표작인 카사 비센스(Casa Vicens)가 모습을 드러내기 이전이었고, 구엘 백작을 위한 건축물도 구상 단계에 머물던 시기였다. 그야말로 건축업에 막 발을 디딘 신출내기 건축가가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새로운 성당의 설계를 의뢰받은 셈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건립에 관해서는 호세프 마리아 보카베야 (1815~ 1892)라는 출판인이자 서점을 운영하던 사업가의 역할이 컸다. 그는 자신의 수호성인 성 요셉의 가르침을 따르는 평신도협회를 1866년 창립하는데, 이후 이탈리아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새로운 성당을 짓는 계획을 품게 된다. 이 성당이 ‘나자렛의 성 가정(예수, 마리아, 요셉)’을 가리키는 스페인어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봉헌되는 데에는 당시의 시대적 고민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족과 노동의 질서를 크게 변화시키면서, 가톨릭 내부에서는 가정과 노동의 윤리를 새롭게 강조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예수와 마리아, 요셉으로 이루어진 나사렛 성가정은 신앙과 가정생활의 이상적 모델로 제시되었다.

1881년 바르셀로나 신시가지에 약 1만2800㎡ 규모의 성당 부지가 조성되고, 이듬해인 1882년 3월 19일 성 요셉 축일에 맞춰 착공식이 열린다. 처음 성당의 설계를 맡은 이는 바르셀로나 교구 건축가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비야르였다. 그런데 그가 설계 과정에서 갈등을 일으키면서 1883년 31살의 가우디가 설계자로 선정된다.

가우디
앞서 말한 대로 당시 가우디는 대역사를 맡기에는 너무나 젊었고 경력도 짧았다. 하지만 성당이 그의 첫 번째 본격적인 건축프로젝트인 덕분에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40년 이상 이 성당의 건축에 혼신을 다할 수 있었다. 그의 이른 등판이 신의 한 수였고, 그 덕분에 신의 건축가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가우디가 성당의 설계자로 일찍 부름을 받게 된 데에는 그의 재능이 주효했겠지만, 카탈루냐 민족주의와 관계된 선택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스페인 남동부에 자리한 카탈루냐 지방은 중세 이래 고유한 언어와 제도를 발전시키면서 지속적으로 독립 국가 건설을 시도했다. 특히 이 지역은 19세기 산업화에 성공하면서 독립에 대한 열망은 더 커지면서 카탈루냐 민족주의 운동이 가속화되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가우디에게 건축을 의뢰한 바르셀로나 지배층들은 가우디가 카탈루냐의 경제적 자신감과 문화적 정체성을 건축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인물로 인정하면서 적극 후원했다고 볼 수 있다. 가우디 자신이 건축을 통해 카탈루냐의 역사적 정체성과 독자성을 증명하려 했던 강한 민족주의자였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의 지배층들이 카탈루냐 독립운동의 한 축으로 가우디를 지원하지 않았을까 상상하기도 한다. 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공식 표기에도 드러난다. 스페인어 표기인 ‘Familia’가 아닌 강세 표시가 들어간 카탈루냐어 ‘Familia’를 쓴다.

19세기 후반 바르셀로나가 누린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자신감도 상상 이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성당의 항공사진을 보면 바둑판처럼 도시가 반듯반듯하게 펼쳐져 있고, 그 바둑판의 한 블록에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위 에이샴플라(Eixample)라고 불리는 바르셀로나의 신도시 지역은 21세기의 기준으로 봐도 신기할 정도로 수평적인 도시 경관을 펼쳐 보여 준다.

이처럼 엄격한 계획 도시를 설계한 건 일데폰스 세르다(1815~1876)다. 그는 급격히 증가하는 도시인구를 해결하기 위해 신도시를 약 113.3m 크기의 정방형 블록으로 나누고, 각 블록의 네 모서리를 45도로 잘라 넓은 교차로가 만들어지도록 설계했다. 이러한 블록 수백 개가 반복되는 에이샴플라의 격자 속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한 블록 전체를 차지한다. 90×60m로 알려진 성당의 평면 크기는 블록 안에 부지를 최대한 활용한 결과이다.

세르다는 신도시의 건축물의 높이까지 16미터로 결정했다. 한 건물의 그림자가 다른 건물에 드리우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 이처럼 높이와 크기가 수학적으로 일정한 그리드 속에 유기적인 곡선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자리 잡고 있어 더 돋보이는 것 같다. 특히 카탈루냐의 명산 몬세라트의 기암괴석을 연상시키는 가우디의 첨탑들이 우뚝 솟아 있는 장면은 나즈막고 수평적인 주변 경관과 대비되어 더 극적으로 보인다. 이번에 완성된 예수 그리스도의 탑은 높이 172.5m로 성당의 18개의 탑 중 제일 높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어느 성당의 주탑보다도 높다. 이 탑 꼭대기에 전망대가 생길 예정이라는데 여기에 오르면 세르다의 신도시와 바르셀로나 앞에 펼쳐진 지중해 풍경까지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이다.

전망대 들어서면 지중해까지 펼쳐질 듯
지난달 10일 교황 레오 14세의 미사 집전을 앞두고 바라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천장. 예수의 탑 완공을 축복하고 가우디 서거 100주기를 기리는 행사였다. [AP=연합뉴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사진을 보면 언제나 배경에 높은 크레인이 자리잡고 있어 늘 공사 중이라는 생각을 갖곤 했다. 그런데 공사가 지체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돈이 없어서였다. 보카베야와 그가 이끌던 성당 건립위원회는 새 성당을 ‘속죄 성전’으로 추진했다. 이 말은 왕실이나 정부, 또는 기업의 지원 없이 신자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세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축 예산이 해마다 달랐고, 공사는 계속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예수의 탑이 세워졌다곤 하나 성당이 완성된 건 아니다. 가우디 설계도에 따르면 성당은 크게 세 개의 출입구를 갖게 돼 있다. 십자가의 머리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세 축의 끝이 그 출입구이다. 이를 파사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동쪽(예수 탄생)과 서쪽(예수 고난), 그리고 남쪽(예수 영광)이며 남쪽 파사드가 성당의 정면이 된다. 가우디는 남쪽 파사드에 계단과 광장까지 추가해 더 웅장하게 만들려 했지만 재정 탓에 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성당 남쪽 맞은편 에이샴플라 블록엔 이미 주택과 상가들이 많다. 현재 성당은 철거 문제를 놓고 거주자와 상인들과 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해 당사자가 3000명 가까이 된다니 쉽게 해결될지 모르겠다. 성당 측은 2030년대 중반에 최종 완공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빠른 시일 안에 부지가 확보되어 최종적으로 완공되길 기원하는 마음이다. 그때 비로소 성당의 완공을 선포할 수 있으리라.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미술사학자.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르네상스 회화를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분석한 논문으로 영국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명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등 저작을 통해 미술사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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