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반도체 벨트 쟁점 들여다보니
2026.07.10 21:01
투자 시점도 이사회도 아직 ‘빈칸’
전력·용수 없이 발표부터 서둘렀나
전력·용수 없이 발표부터 서둘렀나
정부가 총 800조원 규모 호남 반도체 투자를 공식화했지만, 따져봐야 할 쟁점도 산적해 있다. 기존 용인·평택·청주 투자와 호남 팹(Fab·전공정 생산공장) 건설이 겹치면 감가상각비와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고, 2040년까지 현재의 반도체 호황이 이어질 것이란 보장도 없다.
반도체 사업 핵심 요소인 전력과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방안도 아직 보완할 점이 많다. 수도권에 집중된 연구개발 인력, 소재·부품·장비 협력사를 호남권에 정착시키는 일도 난제다. 전문가들은 800조원짜리 메가 프로젝트가 정치적 수사로 표류하지 않으려면 정부의 인프라 공급 계획, 단계별 집행 조건과 비용·책임 분담 구조 등을 빈틈없이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생에너지 등 보완 방안 필요
대규모 팹 건설을 위해서는 넓고 평탄한 부지에 안정적인 전력·용수 공급이 필수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첨단 반도체 전공정 팹은 통상 1기당 10만㎡ 이상 부지가 필요하다. 지난해 말 착공한 삼성전자 평택 P5 팹1 면적은 약 13만㎡다. 변전소와 폐수 처리시설 등 기반시설을 포함하면 실제 필요 면적은 더 커진다.
부지만 놓고 보면 호남 지역은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후보지로 거론되는 광주 첨단3지구는 339만㎡, 빛그린국가산업단지는 407만㎡, 군 공항 이전 부지는 826만㎡ 규모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289만㎡,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 415만㎡와 비교해도 물리적 공간은 충분하다.
전력과 용수 수급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정부는 팹 4기와 부대시설을 가동하는 데 약 6.3GW(기가와트)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를 단순 환산하면 팹 1기당 평균 전력 수요가 약 1.6GW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대형 팹 한 기가 하루 평균 24GWh(기가와트시) 안팎 전력을 소비할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1GW급 대형 원전 한 기의 하루 발전량과 맞먹는다. GW는 특정 시점에 필요한 전력 규모를, GWh는 일정 시간 동안 실제 소비한 전력량을 뜻한다.
전체 수급만 보면 전력 여력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2024년 기준 전라남도 전력 자립도는 213%다. 광주·전남은 한빛원전 6기에서 연간 42TWh(테라와트시)의 전력을 생산하고 태양광 7000GWh, 풍력 640GWh 규모 신재생에너지도 생산한다. 다만, 한국전력공사 4월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광주·전남의 경우 전체 1만7039㎿ 가운데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이 약 44%(7573㎿)였다. 재생에너지는 기상 조건과 시간대, 계절에 따른 편차가 크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낮과 달리 밤에는 태양광 발전량이 거의 없다”며 “반도체 팹에는 상시 전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빛원전도 변수다. 전남 영광에 위치한 한빛원전 1~6호기 가운데 1호기는 지난해 말 설계수명에 이르러 가동을 중단했고, 2호기도 오는 9월 가동을 멈춘다. 3~6호기도 2034년부터 차례로 설계수명이 완료된다.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메울 보완 전원을 어떻게 확보할지도 관건이다. 에너지저장장치(ESS), 열병합발전, 원전 등 추가 공급원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전력을 반도체 생산 단지로 연결할 송전망 구축도 난제다. 전력거래소는 호남권 송전선로 13곳 가운데 12곳이 2030년까지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송전망은 입지 갈등을 키우는 대표 요소다.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도 2019년 발표 이후 송전선로 건설 등을 둘러싸고 갈등이 이어지다 6년 만에 첫 삽을 떴다.
이병훈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투자 계획 현실화에 필요한 전력 확보 계획은 다소 모호해 보인다”며 “일단 장소가 정해진 만큼 정부가 빈틈없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수 수급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정부는 광주와 서남권에 계획된 팹 4기를 모두 가동하면 하루 약 65만t의 물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한다. 웨이퍼 세정용 초순수뿐 아니라 냉각·화학물질 처리에도 산업용수가 쓰인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해 산업시설 증가와 댐 여유량 감소로 장래 연간 7억4000만t의 생활·공업용수가 부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와 초대형 AI 데이터센터가 함께 들어서면 물 수요는 예상보다 더 커질 수 있다.
호남의 주 수계인 영산강은 유하거리가 짧고 유역 면적이 작아 수자원 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댐 여유 물량과 수계 조정으로 하루 100만t 이상의 산업용수를 추가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수자원공사는 동복댐과 주암·장흥댐, 보성강댐, 나주댐 등을 활용하면 하루 40만~50만t을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록호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호남 반도체 벨트는 메모리 리더십을 다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며 “정부의 예산 집행 속도와 지자체 인허가 조율 과정이 실행 가능성을 결정할 핵심 변수”라고 말했다.
동시다발 설비투자 부담 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현실화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직면할 부담은 천문학적인 고정비 부담이다.
두 회사는 이미 평택·용인·청주에서 대규모 생산시설을 건설하거나 추가 투자를 준비 중이다. 호남 투자와 별개로 두 회사의 국내 설비투자 계획만 천문학적 규모다.
삼성전자는 평택 캠퍼스에서 P1~P4 생산라인을 운영하면서 차세대 생산기지 P5도 건설 중이다. 경기 용인 국가산단에 팹 6기를 짓는 데 약 360조원, 기흥 미래연구단지에도 약 2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용인 클러스터에 총 600조원, 청주 생산기지 확대에 100조원을 단계적으로 투입한다.
평택 P5, 용인·청주 팹 가동과 고정비 회수가 시작되지도 않은 단계에서 호남에 전공정 팹을 추가하면 감가상각비, 인건비, 전력비, 장비 유지·보수비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 반도체는 생산량에 따라 원가를 탄력적으로 줄이기 어려운 대표적인 고정비 산업이다. 호황기 땐 높은 가동률을 기반으로 막대한 영업 레버리지 효과(매출 증감보다 영업이익이 큰 폭 증가)를 누리지만, 업황이 꺾여 가동률이 떨어지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쌓인다.
특히, 팹은 노광·식각·증착 등 고가 장비를 반입한 이후부터 비용 부담이 본격화한다. 고가 설비가 생산 가능 상태에 도달하면 생산량이나 제품 판매 여부와 관계없이 감가상각비가 매년 손익계산서에 반영되는 식이다. 가령, 팹 1기에 60조원이 투입되고 이를 10년간 정액 상각한다고 단순 가정하면 연간 감가상각비만 6조원에 달한다.
물론, 이 정도 감가상각비는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현금 창출력에 비춰 큰 부담으로 볼 수는 없다.
문제는 이례적으로 풍부해진 현재 현금흐름을 기준으로 10~15년 뒤까지 이어질 설비투자와 고정비 구조를 설계했을 경우 자칫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공장 가동 초기에는 공정 안정화와 수율 개선에 시간이 걸려 매출 기여도가 낮지만, 인력과 유지비를 줄이기 힘들다. 평택·용인·청주와 호남 신규 팹이 잇따라 가동될 시점에 메모리 가격과 수요가 꺾이면 낮은 가동률과 가격 하락, 감가상각비 증가가 맞물려 자칫 ‘고정비 부메랑’이 현실화할 수 있다.
익명을 원한 반도체 업종 애널리스트는 “팹 투자는 착공보다 장비 반입 이후 가동률 관리가 더 중요하다”며 “용인과 호남 증설 시점이 겹친 상태에서 메모리 업황까지 둔화하면 감가상각비와 고정비가 한꺼번에 늘어 실적 변동성이 과거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여전히 미정
800조원 규모 호남 반도체 투자를 구속력 있는 확정된 설비투자로 보기 힘들다는 점도 쟁점으로 지목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각 사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투자 시기를 2040년까지로 제시하면서 시장 상황과 경영 환경에 따라 규모와 일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SK하이닉스도 구체적인 투자계획은 이사회 승인을 거쳐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반도체 호황을 토대로 10여년 뒤 수요까지 예측해야 한다는 점에서 800조원은 확정 투자액보다 장기 투자 방향과 최대 규모를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이런 분석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반도체 산업은 특유의 수요 변동성 탓에 설비투자를 결정짓는 프로세스가 매우 까다롭다.
산업계 전언을 종합하면, 통상 반도체 설비투자는 관련 사업부가 예상 수요와 제품 가격, 공정 전환 계획을 바탕으로 웨이퍼 생산능력과 장비 규모를 산출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후 제조·인프라 조직이 부지와 클린룸, 전력·용수, 장비 납기와 건설비를 구체화한다. 재무 조직은 예상 가동률과 감가상각비, 현금흐름, 투자 회수 가능성을 들여다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불황기에 수요가 감소하거나 가격이 떨어지는 상황까지 반영해 착공과 장비 반입, 양산 시기를 조정한다. 그 뒤 최고경영진과 경영위원회 또는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 실제 투자 집행 단계로 넘어간다. 설비투자 규모를 확정 짓기까지 여러 단계 내부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산업계는 지적한다.
이번 호남 투자 계획은 이 같은 세부 심의가 마무리된 뒤 나온 확정안이라기보다, 정부가 총투자 규모를 먼저 제시하고 기업이 장기 계획 형태로 호응한 성격이 짙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구체적인 부지와 생산 제품, 팹별 착공 시점과 연차별 투자액 확정을 위한 이사회조차 열리지 않았다.
투자가 이뤄지더라도 시황에 따라 규모가 조정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향후 메모리 업황이 둔화하거나 반도체 기술과 제품 구조가 바뀌고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 구축이 지연되면 투자 규모는 축소되거나 시기가 뒤로 밀릴 수 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각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등기이사나 이사회 구성원이 아니다. 두 총수가 대통령 앞에서 투자 방향과 규모를 공개했더라도, 발언 자체가 구속력 있는 의사결정을 담보한다고 보기 힘든 이유다. 실제 투자를 실행하려면 사업부와 재무·전략 조직의 타당성 검토를 거쳐 법적 권한을 가진 이사회 승인이 뒤따라야 한다.
두 회장이 지난 6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후보지’ ‘제반 요건 충족’ ‘기대되는 지역’ 같은 조건을 단 표현을 쓰고 착공 시기를 밝히지 않은 것도 법무·IR 등 검토를 거쳐 향후 조정 여지를 남긴 발언으로 재계는 해석한다.
재계 관계자는 “ ‘후보지’ ‘기대’ ‘선결 조건’ 등 표현을 반복하고 착공 시기를 명시하지 않은 것은 정부 투자 요청에 호응하되, 이사회 승인과 시장 상황에 따라 향후 계획을 조정할 수 있도록 발언 수위를 정교하게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쟁점(4) 우수 인재 유치 어떻게
수도권 → 호남 이동 가능할까
기존 생산 거점에 집중된 국내 반도체 인력을 호남에 유치할 수 있을지도 쟁점이다. 통상 팹 1기당 3000명의 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번 팹 신설로 최소 1만2000명의 인력을 호남 지역에 유치해야 한다.
특히, 첨단 메모리와 HBM은 연구개발과 양산 현장을 분리하기 어려운 산업이다. 개발 단계에서 설계한 공정을 생산라인에 적용하고 수율을 끌어올리려면 연구개발 인력과 공정·장비 엔지니어가 현장에서 문제를 반복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신규 팹 초기 가동 단계에는 예상 못한 공정 편차와 장비 오류가 집중되는 만큼 숙련 인력 상주가 필수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 핵심 인력은 수도권 거점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삼성전자는 평택·화성·기흥을 중심으로, SK하이닉스는 이천·청주를 중심으로 연구개발(R&D)과 생산 인력을 축적해왔다. 양 사가 수도권 부근에 최근 가동했거나 준공 예정인 공장도 적지 않다.
반도체 인력이 지방 근무를 기피할 가능성도 있다. ‘취업 남방한계선은 평택, R&D 남방한계선은 판교’라는 말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공식이다. 호남에 공장만 세운다고 필수 인력이 저절로 따라올 것으로 낙관하기 힘든 이유다.
전문가들은 우수 인력 유치를 위해서는 급여에 더해 충분한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병훈 교수는 “지금 당장 반도체 인력을 호남으로 이끌기는 어렵다”며 “인프라에 고급 인력 정주 여건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부장·인프라 부담 변수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정상 가동되려면 소재·부품·장비 기업도 인근에 생산시설과 서비스 거점을 구축해야 한다. 반도체 장비는 고장이나 공정 이상이 발생하면 즉각 대응해야 하고 소재도 품질 관리와 공급 안정성이 중요해 고객사와 물리적 거리가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상당수 중소 협력사는 수도권과 충청권에 거점을 두고 있다. 2024년 기준 광주·전남·전북 등 서남권에 소재한 반도체 기업은 전체의 2.6%에 불과하다. 수도권(69.4%), 충청권(18%), 대구·경북권(6.1%), 동남권(3.4%)에 비해 현저히 낮다.
상당수 중소 협력사는 호남에 추가 공장과 인력을 배치할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정부는 아직 호남 지역에 소부장 기업을 유치할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병훈 교수는 “중소협력사에는 호남 이전 비용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며 “상생협력 차원에서 대기업이 소부장 기업별로 제한하는 이윤율을 올리고, 정부도 지방 거점을 운영하는 협력사에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황에 따라 공공비용 부담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반도체 벨트 조성을 위한 세제 감면과 보조금 확대는 물론, 전력·용수·도로·철도·산업단지 조성비 등 공공 부문 부담이 상당하다. 용인 클러스터의 경우 송전선로와 산단 내 변전소 건설 총사업비 2조4000억원 가운데 공공이 약 7000억원, 민간이 약 1조7000억원을 분담했다. 정부는 기업 지원을 위해 앞으로 건설될 반도체 클러스터에 기반시설 설치비를 최소 50% 이상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다만, 반도체 시황 악화나 기업 내부 투자심의 결과에 따라 팹 건설이 지연·축소될 경우, 공공 부문이 먼저 구축한 송전망과 용수시설 등이 활용되지 못한 채 매몰비용으로 남을 수 있다.
손양훈 교수는 “어떤 투자든 비용 효율성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며 “같은 돈을 들였을 때 더 빠르고 안정적인 반도체 생산 역량을 갖춘 지역을 택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번 정권 안에 끝낼 수 있는 사업이 아닌 만큼 정치 일정에 맞춰 속도를 내기보다 장기 산업 로드맵과 비용 분담 원칙을 먼저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이채원 기자 lee.chaew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7호(2026.07.08~07.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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