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Aview 로고

VIEW

농지
농지
일제강점기 부천군 구장(區長)들의 명과 암

2026.07.10 15:11

지역유지로서 일제에 협력하며 교육활동을 한 이성환과 이강덕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주권을 일제에 빼앗기며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그 여파는 사회 지도층 뿐만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삶 깊숙히 영향을 미쳤다. 개인의 자유는 철저히 무시되었고, 경제력 또한 일제에 속박되었다. 다량의 농지는 조선총독부 엄호 아래 저렴한 가격으로 일본인들에게 넘어갔으며, 우리 농민들은 자작농에서 소작농으로 전락하였다. 각 지역에 큰 농장을 소유한 일본인 지주들이 생겨났으며,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쌀은 일본 본토로 보내졌다. 많은 사람들은 먹을 것이 항상 부족했으며 경제적 빈곤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시대에 저항하며 자주독립을 찾고자한 사람들은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식민노예로 전락한 우리 선조들은 교육 또한 제대로 받을 수도 없었다. 일본인 자녀들을 위한 소학교는 많이 보급한 반면 조선인들의 자녀를 위한 공립보통학교는 적게 만들었다. 그리고 수용할 수 있는 학생수도 많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학을 하거나 학원을 만들어 지역에서 교육에 힘쓴 사람들이 있었다. 부천에서는 심상학원을 만든 이성환과 보명학원을 만든 이강덕이 대표적이다. 일제강점기 개인의 재산을 내놓고 조선인 자녀들을 위해 교육에 힘썼다고 하면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살펴보면 무조건 칭찬이 나오지는 않는다. 이성환과 이강덕은 지역 유지로서 교육활동에 힘썼지만 일제의 식민지배의 최말단인 구장으로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부천군에서 구장으로써 활동하며 교육에 힘썼던 이성환과 이강덕 삶의 명암에 대해 알아보고자한다.

이성환(李聖煥)
이성환은 소사역(현 부천역) 앞에서 오류양조장을 운영한 사업가였다. 부천에서 '주조업계의 패왕;으로 불린 이성환은 1930년 초부터 구장을 하면서 오류리(현재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에서 교육사업을 추진하여 자택에서 아동 20여 명을 모아 야학을 시작하였다. 1939년에는 심상학원이라는 재단을 세워 5만원을 기부하여 심상소학교로 승격시켰다. 이외에도 여러 번의 운영비와 증축에도 기부하였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1937년 4월 21일에 오류학원에서 송덕비 제막식이 진행되었다.

1936년 8월 5일 동아일보에서는 이성환씨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이성환씨는 소사면 오류동의 오류학원 원장이니 교육계의 한 귀감인 동시에 본군 실업계에 굴지하는 사업가다. 오류학원은 소사보교에서 1리나 원격한 곳에 있어서 현재 177명의 남녀아동을 훈육우량한 교육기관이다. 씨는 일직이 사계에 뜻을 두어 자택 한칸에 아동을 모으고 교원을 초빙하야 주야학을 하게 하든바 소화6년에 이르러 33평의 교사를 신축하고 3인의 교원을 초청하였는데 설비도 완전하고 비품도 구비하다. 아동은 축년 증가를 보게되니 씨는 30여평의 교사증축을 계획중이다. 창림당시에도 천원여의 거금을 전담하였고, 증축에도 수천원들 것으로 예상하며 매월 정액 금10원을 유지비로 지급한다. 일은 정성에 있고 물질에 있지 않다고는 할 것이나 물질이 있고 정성이 또한 있다면 얼마나 그 힘이 클 것이냐. 우리 사회를 전적으로 보아서 이러한 일꾼이 하루빨리 배출하기를 축하는 바이다. 씨는 당면 보교에도 거금을 더졌으며 기타 위생, 교통제반사업에 희사를 빼놓은 곳이 하나도 없다. 유력무위한 자들은 씨의 역량대로 대활동함을 명연시지하련만

이성환은 부천의 마당발로 활동한 단체의 수도 많았으며 차지한 위치도 상당하였다. 1940년 이후에는 덕송성환(德松聖煥)으로 창씨개명하였으며, 이성환이 참여한 단체와 광고한 내용을 보면 그 당시 소사면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성환의 첫 번째 공직은 면협의원이었다. 1931년을 시작으로 1935년과 1939년 내리 3선을 하였다. 1939년 일제의 침략전쟁이 한창일때 <소사신명신사 신역조영봉고제>에 20원을 기부하였다.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통해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던 그 중심에 소사신사가 있었는데 이성환은 20원을 낸 것이다. 이후 국민정신총동원 부천연맹 이사, 지원병후원회 이사 등으로 참여하였으며, 1940년 8월 인천경찰서에 국방헌금 5백 원을 헌납하였다.

친일광고는 1938년부터 1942년까지 빠지지 않고 매년 하였다. 근영(謹迎) 국위선양의 봄(1938년 1월 1일 조선신문)을 시작으로 근하 단성보국신년(1939년 1월 1일 조선신문), 신 출동 장사 무운장구(1940년 1월 1일 조선신문), 해국일본만세(1941년 1월 1일 조선신문), 격멸 미영 웅비 일본의 신춘(1942년 1월 6일 조선신문) 등을 하였다.

이강덕
이강덕은 1910년생으로 오정면 내리 출신으로 전주이씨효령대군정효공파 후손이다.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농사에 전력하고 근검절약하여 한 해에 수백가마니의 추수를 하였다고 하니 일찍 지역유지가 되었다. 또한 고향에서 부업과 농촌갱생을 위해 노력해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 1943년 6월 19일 매일신보의 보명학원 기사 35세 청년 이강덕이 무산아동 위해 보명학원을 개설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 국립중앙도서관(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

1943년 6월 19일 매일신보
무산아동 위해 보명학원 개설
[소사] 징병제 실시를 앞두고 배움을 부르짓는 오늘 부천군 오정면 내리는 순 농촌으로 대부분이 무식계급이라한다. 향학열은 날로 고조되나 입합난으로 역시 입학을 못하고 배움에 길을 잃고 어두운 도로에서 바황하는 아동이 적지 않은 현상이라한다. 이를 유감으로 생각한 동 부락유지 이강덕(李康德.35)씨는 어떻게하면 무산아동의 앞길을 열어줄까 생각한 나머지 소사읍 심곡리에 주소를 둔 다찌모도(瀧木永龍)씨와 협의한 후 학원을 설치하기로 약정하고 제반 설비를 하는 동시 강사를 초빙하야 부락집회소를 임시 교사로 사용한다는데 아동은 70명이나 되어 일반은 동 양씨의 특지에 감격함을 마지않는다고한다(사진은 이강덕씨)

특히 1943녀 일본인 농목영룡(瀧木永龍)과 함께 보명학원을 개설하여 70여명의 학생을 위해 교육을 시행하였다. 이외에도 1937년에는 국방헌금과 위문금으로 1원을 오정면사무소에 기부하였으며, 1939년에는 면협의원에 도전하였으나 낙선하였다.

구장들의 역할

그렇다면 구장들은 지역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서 인식이 좋지 않을까?

그 핵심은 지역에서 면장을 보좌하며 식민체제 유지에 협력하고, 일제의 강제정책을 주민들에게 시행시키며, 순사와 함께 조선일들을 감시하였다.

조세를 징수하고 호적을 관리하는 등 식민지 국가 사무를 처리하였으며, 총독부의 훈령을 주민들에게 전달하였다. 특히 1937년 일제의 침략전쟁 이후에는 쌀 공출, 근로보국대 징용, 일본군 위안부 징집 등 일제의 전쟁 물자와 인력 수탈의 최전선에서 활동하였다. 군량미 생산증산을 위해 개량 농사법을 보급하고 퇴비증산을 전파하는 등 주민들은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구장들의 강제동원과 저축독려로 우리 선조들의 삶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친일반민족행위자들만큼은 아니지만 지역에서 활동한 구장들은 일제의 적극조력자가 확실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구장들의 행위가 알려지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콩나물신문에도 실립니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

댓글 (0)

0 / 100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농지의 다른 소식

농지
농지
14시간 전
완주군, 농업행정 한곳으로…농업정책과·축산지원과 이전
농지
농지
1일 전
‘농지법 개정안’ 30건 천차만별…정부, ‘방향타’ 잡아야 [농지 전수조사 두달]
농지
농지
2일 전
송미령 "농림업 데이터 주권 확보"…농지·직불제 점검도 우주에서 [SNS 정책 레이더]
농지
농지
3일 전
'농지 거래 정보접근성 강화'…농지 직거래 플랫폼 오픈
농지
농지
2026.06.19
日 ‘상속토지 국가귀속’ 느는데…팔지도 빌려주지도 못한 논밭 수두룩, 왜?
농지
농지
2026.06.19
주민보다 소가 많은 오지마을, 이주 희망자 줄 서는 이유 [르포]
농지
농지
2026.06.19
[단독] 3억 주식 팔고도 증여세 '0원'… 한성숙 "모친 주택 증여세 납부" 약속 안 지켰나
농지
농지
2026.06.18
전주시, 농업 분야 불법행위 실태조사 추진
농지
농지
2026.06.18
까마귀 날자 해코지 주의보 떨어졌다
농지
농지
2026.06.18
전주시, 농지 전수조사 착수…하천·계곡 불법점용시설 실태도 파악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