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들의 복수는 왜 질리지 않을까 [취향의 발견]
2026.07.10 11:24
SBS 금토드라마 ‘김부장’이 공개 4회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하는 등 시청자들로부터 열광적 반응을 얻고 있다. 배경은 ‘아빠들의 복수’를 다룬 영화 ‘존윅’과 ‘테이큰’. [SBS·IMDb 제공]
그런 말이 있다.
“전직 특수 요원은 건드리지 마라. 그들의 자식, 혹은 자식 같은 강아지도 절대 건드리지 마라.”
힘을 숨긴 진짜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의 마지막 경고까지 무시하고 나대면 어떻게 될까. 그 끔찍한 결말은 정말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여기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김부장’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에, 평범한 직함. 진짜 이름인지, 그저 자리대로 이름을 만들어 붙인 것인지 모를 이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아빠다. 매일 아침 딸 민지를 위해 아침을 차리고, 딸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며, 딸을 위해 무릎을 꿇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천상 딸바보다.
싱글 대디인 김부장은 민지의 아빠로 살아달라는 아내의 마지막 유언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자신이 온 마음을 다해 키운 민지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딸의 부재를 알아챈 김부장은 고민 없이 아내와의 약속을 저버린다. 그의 눈앞엔 딸을 구한다는 목표 하나밖에 없다.
민지를 데려간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의 아빠가 17차례나 북파 임무를 수행한 전직 국가 비밀요원이라는 것을.
최근 대한민국의 주말 저녁을 책임지고 있는 SBS 금토드라마 ‘김부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현재 4회까지 방영된 드라마는 벌써부터 시청률 21.6%를 기록하며 심상치 않은 흥행 곡선을 그리고 있다. SBS 드라마가 시청률 20%를 넘긴 것은 2024년 ‘눈물의 여왕’ 이후 2년 만이다. 심지어 4회 만에 ‘마의 20%’를 넘겼기에, 남은 6회 동안 더 높은 고지에 도전할 시간도 충분하다. 일각에서는 ‘꿈의 30%’에 대한 기대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이번 취향의 발견에서는 딸을 찾는 아빠의 처절한 사투, ‘김부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나아가, 이 뻔하고도 익숙한 서사가 왜 이토록 매번 터지는지를.
“촉법소년? 나는 ‘무법 중년’ 해야겠다”
사실 ‘김부장’은 새롭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너무 잘 아는 맛에 가깝다. 정체를 숨긴 전직 특수 요원이란 설정은 영화 ‘테이큰’, ‘이퀄라이저’ 시리즈와 똑 닮았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봉인된 힘을 해제하는 김부장의 모습은 역시나 리암 니슨(테이큰), 키아누 리브스(존 윅)와 그대로 겹친다.
국내 작품에서 찾자면 원빈 주연의 ‘아저씨’(2010)가 이 분야의 원조 격이다. 명실공히 SBS 대표 시즌제 드라마인 ‘모범택시’ 역시 전직 특수부대 장교 출신 ‘김도기’가 평범한 직업으로 위장해 악인들을 응징한다는 동일한 문법 위에 서 있다.
이 중 어느 작품이라도 봤다면 ‘김부장’은 결코 낯설 수가 없다. 하물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큰 서사적 기교도 부리지 않고, 완전히 전형적이면서 익숙한 ‘아빠 유니버스’의 공식을 정직하게 따라간다. 딸이 납치되고, 아빠가 찾으러 간다. 그리고 그 아빠가 소지섭이다. 그게 전부다. 그런데 이 뻔하디뻔함이 ‘김부장’이 단 4회 만에 20%의 벽을 뚫어버린 비결 중 하나라면 어떨까.
가족을 구하는 ‘힘숨찐’ 가장의 이야기는 사실 만국 공통의 흥행 공식에 가깝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테이큰’이다. 2008년 개봉한 ‘테이큰’은 뤽 베송이 각본을 쓰고 제작한 프랑스 영화다.
‘니키타’(1990), ‘레옹’(1994), ‘제5원소’(1997) 등 세계적인 흥행작을 탄생시킨 뤽 베송의 이름이 붙어 있었음에도, 영화는 처음엔 대형 기대작으로 취급받지 못했다.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대비 낮은 제작비가 들기도 했거니와, 당시까지만 해도 드라마 배우의 이미지가 강했던 리암 니슨을 주연으로 한 액션물은 대중의 구미를 쉽게 당기지 못했다. 심지어 니슨 본인조차 “프랑스에서 몇 주 상영하다 비디오로 직행하겠거니 했다”고 훗날 인터뷰에서 털어놓을 정도였다.
아빠 신화의 시작 ‘테이큰’의 글로벌 흥행
하지만 상황은 금방 뒤바뀐다. 영화가 전 세계 2억2600만달러(약 2500억원)라는 경이로운 흥행을 기록해 버린 것이다. ‘테이큰’은 당초 노렸던 미국 시장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23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테이큰’은 3편짜리 시리즈로 이어지며, 부성애와 정의 구현이라는 문법이 시대를 초월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스스로 입증해 낸다.
전직 특수요원의 압도적인 능력치는 이렇듯 선배 아빠들이 오랜 시간 충분히 증명해 왔다. 서사에 몰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주인공에 대한 공감은 ‘부성애’라는 세 글자가 단번에 해결한다.
덕분에 드라마 ‘김부장’은 주인공이 왜 이토록 강한지, 이 아빠가 왜 이토록 처절하게 딸을 찾는지를 설명하는 데 긴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시청자 역시 초반부 전사(前史)를 건너뛰고, 1화부터 애타는 아빠의 눈빛에 곧장 이입하게 된다. 뻔한 문법의 편리함이란 이런 거다.
물론 ‘아빠 유니버스’를 공유하는 이러한 작품들 속 부성애를 단순한 사랑으로만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이들이 보여주는 무자비한 폭주에는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반드시 되찾겠다’는 결의가 뒤섞여 있다. 때론 과해 보이기까지 하는 응징들은 사실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다. 겉으로는 시원하지만 속으로는 절박한 그 액션이, 폭력의 수위에 대한 판단마저 희석해 버리는 이유다.
‘김부장’에서 주인공은 “나는 촉법소년이라 법으로 못 건드린다”며 입을 놀리는 남자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럼 나는 무법 중년 해야겠다.”
법 바깥에서 밀어붙이겠다는 선언이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그래도 그러면 안돼!’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김부장은 싸구려 양복 속 진짜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정체를 숨길 노력 따위는 하지 않는다. 덕분에 그의 행적을 쫓던 북한도, 결코 북에 김부장을 넘겨줄 수 없는 우리나라도 일제히 그를 노리고 뒤쫓기 시작한다. 극 중 김부장은 그의 일거수일투족 하나하나에 국가 비상이 걸리는 위험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김부장은 그런 ‘평가’가 서운하지 않게, 딸을 찾는 여정을 방해하는 이들을 모두 압도적인 힘으로 제압해 버린다.
우리는 또 안다. 김부장이 다 알아서 할 것이라는 것을. 김부장은 지지 않을 것이고, 어떻게든 헤쳐나갈 것이며, 결국에는 딸을 구출해 눈물 나는 재회를 할 것이라는 것까지 말이다. 시련은 있겠지만 반전은 없을 이 이야기는 다시 또 한 번 뻔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하지 않다. 우리는 지금 처음부터 결말이 보장된 기차에 몸을 실은 것이다.
덕분에 피도 눈물도 없는 김부장의 묵직한 액션은 더욱 빛을 발한다. 지지 않는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기냐 지냐’의 문제보다는 ‘얼마나 압도적으로 이기느냐’에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생존 불안이 사라진 ‘안전한 쾌감’은 서사의 개연성 그 자체인 주인공의 피지컬과 탄탄한 액션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르적 매력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불안 없는 긴장감, 결과를 알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과정. ‘아빠 유니버스’가 반복 소비되는 핵심 이유는 여기에 있다.
김부장을 연기한 소지섭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김부장’은 그의 13년 만의 SBS 복귀작. 따지자면 액션 복수물과 소지섭은 꽤나 익숙한 조합이다. 지난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시리즈 ‘광장’에서도 그는 죽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싸우는 주인공 ‘남기준’ 역으로 진득한 느와르 액션을 선보였다.
비슷한 캐릭터의 반복으로 보일 수 있는 ‘김부장’을 선택한 것에 대해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지섭은 방영에 앞서 이번 연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때리는 게 아니라 주먹 한 방에 감정을 담으려 했다”, “홀로 딸을 키우는 아빠를 연기하는 내 모습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김부장’에서는 언제나 믿고 보는 액션만큼이나 딸밖에 모르는 중년 아빠의 절절한 감정 연기가 특히 돋보인다.
배우의 눈빛과 몸짓이 만들어낸 감정과 액션의 중첩은 ‘아저씨’에서 원빈이 연기한 차태식을 떠올리게 한다. 차태식이 그러했듯, 김부장의 응징도 차마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들의 폭발처럼 읽힌다. 딸을 찾아나선 아빠에겐 울 시간도, 화를 낼 시간도 사치니까 말이다.
‘독립영화 수입’ 소지섭의 선한 영향력
여기에 일각에서는 이번 ‘김부장’의 흥행 뒤엔 영화 팬들의 지원사격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소지섭은 수입사 ‘찬란’과 함께 10년 전부터 꾸준히 독립·예술 영화를 수입해 온 ‘독립영화 수입계의 시조새’라 할 만하다. 그가 수입한 대표작으로는 ‘유전’(2018), ‘미드소마’(2019), ‘서브스턴스’(2024), ‘존 오브 인터레스트’(2024) 등이 있다.
소지섭이 독립영화 수입을 이어가고 있는 건 상업적 이익보다는 좋은 작품을 관객에게 전하겠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영화 수입은 제가 받은 걸 돌려드린다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관객들을 위한 소지섭의 꾸준한 행보에 영화 팬들이 ‘보은’하기 위해 본방 사수 캠페인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이들의 움직임이 대세를 좌우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처럼 배우의 선한 영향력이 시청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배우의 이미지와 흥행의 연결고리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SBS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멋진 신세계’에 이어 연타석 흥행에 성공한 SBS의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S 홍성창 대표는 “콘텐츠만 재미있으면 시청자는 여전히 TV 앞으로 모인다는 공식이 증명됐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이번 ‘김부장’의 흥행에 대해 “‘김부장’은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평범한 사람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를 정공법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라며 “이 힘이 전 세대, 더 나아가 전 세계 시청자들의 보편적인 공감대를 관통하며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 같다”고 말했다.
손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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