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장에 울려 퍼진 다섯 글자..."3초 후 종료"
2026.07.10 09:31
처음 본 풍경은 예상과 달랐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흥정 소리가 오가는 재래시장 같은 장면을 떠올렸지만, 경매장 안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그때 장내 안내 음성이 울렸다.
"3초 후 응찰 종료하겠습니다."
잠깐 눈을 떼면 한 마리의 가격이 정해져 있었다. 누가 손을 들고 큰 소리로 값을 부르는 경매가 아니었다. 전광판에 경매번호와 최저가, 특이사항이 올라가고, 단말기와 스마트폰을 통해 응찰이 이뤄졌다. 낡은 우시장 풍경과 전자경매 시스템이 한 공간에 겹쳐 있었다.
| ▲ 서산시 음암면 소경매장 ⓒ 최미향 |
새벽 2~3시부터 시작되는 경매장의 하루
경매장의 하루는 오전 9시에 시작되지 않았다. 농가에서 송아지를 싣고 오는 사람들은 새벽 2~3시에 움직이기도 한다. 여러 농가를 돌며 송아지를 싣고, 경매장에 도착하면 다시 내리고 묶는다. 오전 7시 무렵부터 현장 정리가 이어지고, 8시가 지나면 보조원들이 소 상태를 살피기 시작한다.
한 마리의 송아지가 전광판에 오르기까지도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경매 보조원들은 외모와 건강 상태, 다리 이상, 피부병 여부 등을 확인하고 특이사항을 기록했다. 한 송아지 귀에는 '버즘'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버즘이 뭐냐"고 묻자 관계자는 "곰팡이성 피부질환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송아지 한 마리도 그냥 번호로만 올라가지 않았다. 몸 상태와 하자 여부가 가격에 반영됐다.
"사람이 적어 보여도 거래는 이뤄집니다"
| ▲ 전자경매가 진행되는 서산시 음암면 우시장. 송아지 앞 표찰에는 성별, 월령, 혈통, 응찰하한가 등 경매 정보가 적혀 있다. |
| ⓒ 최미향 |
"오늘 사람이 별로 없는 것 아니냐"고 묻자 서산태안축협 관계자 장경훈씨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를 생선시장처럼 생각하면 안 돼요. 한 사람이 20마리도, 100마리도 사갈 수 있는 시장이에요. 사람이 많이 안 보여도 거래는 이뤄집니다."
| ▲ 우시장에서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 최미향 |
이곳은 서산·태안 지역 농가에서 나온 송아지가 전국의 축산 농가와 상인을 만나는 전자경매장이다. 소를 사려는 사람들은 현장에 오기 전부터 스마트폰과 전산시스템으로 출하 정보를 확인한다. 어느 농가에서 나온 소인지, 혈통은 어떤지, 친자 확인은 됐는지, 브루셀라 등 방역 관련 정보는 어떤지. 장씨는 "육안으로만 소를 보는 게 아니다. 혈통과 친자 확인 여부, DNA 정보와 이력까지 확인하고 경매에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전국 가축시장 운영현황 및 개장일'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전국 곳곳의 가축시장이 지역별로 표시돼 있었다. 장씨는 "지자체마다 가축시장이 있어야 그 지역 농가가 참여할 수 있다"며 "질병 때문에 이동 제한이 걸리면 해당 지역 시장은 문을 닫아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산·태안은 암소를 주로 사육하는 지역입니다. 암소는 송아지를 생산하니까 이곳에는 송아지 경매시장이 필요한 거죠. 반대로 비육우, 이른바 고기소 사육 비중이 큰 지역은 큰 소 시장의 성격이 강합니다."
| ▲ 전광판 아래 송아지들이 번호표를 단 채 줄지어 서 있다. 9일 서산시 음암면 우시장에서는 송아지 117두가 경매에 올랐고, 올해 상반기에는 2,100두가 거래됐다. |
| ⓒ 최미향 |
전광판에 오른 117두, 상반기엔 2100두가 오갔다
이날 제202차 송아지 경매 집계표에는 모두 117두가 올랐다. 암송아지 40두, 수송아지 76두, 프리마틴 1두였다. 프리마틴은 암수 쌍둥이로 태어난 암송아지 가운데 번식 능력이 없거나 약한 개체를 말한다. 번식용 암소로 키우기 어려워 일반 암송아지와는 가격이 다르게 형성된다.
암송아지 낙찰가는 최저 230만 원, 최고 425만 원, 평균 354만5853원이었다. 수송아지는 최저 351만 원, 최고 607만 원, 평균 502만8684원으로 집계됐다.
하루 거래만으로도 적지 않은 규모였지만, 누적 자료를 보면 시장의 역할은 더 또렷해진다. 장씨가 가리킨 서류에는 올해 1월 1일부터 7월 1일까지 약 6개월 동안 이곳에서 거래된 송아지가 2100두로 적혀 있었다. 암송아지 733두, 수송아지 1367두다. 그는 "1년이면 한 4200두 정도"라며 "이 송아지들이 전국으로 나간다"고 말했다. 전체 거래금액은 약 85억 원 규모였다.
사러 온 사람, 팔러 온 사람
| ▲ 프리마틴 송아지를 데려온 농가주가 경매장 안에서 소들을 살펴보고 있다. 프리마틴은 암수 쌍둥이로 태어난 암송아지 가운데 번식 능력이 없거나 약한 개체를 말한다. |
| ⓒ 최미향 |
경매장 한쪽에서 붉은 모자를 쓴 농가주가 소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는 이날 프리마틴 송아지를 데리고 온 농가주였다. 키우던 소를 경매장에 내놓는 일은 숫자로만 설명되지 않았다. 송아지의 상태를 묻자 그는 소가 들을까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데려온 이 송아지는 쌍둥이로 태어난 암송아지예요. 암수 쌍둥이로 태어났을 때 암송아지는 프리마틴 가능성이 있어서 번식 능력이 불확실할 수 있어요. 수의사가 자궁 검사를 해보면 새끼를 가질 수 있는지 알 수 있고, 그 판정이 나오면 값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경매장에서는 한 마리의 송아지도 그냥 '암'과 '수'로만 나뉘지 않았다. 혈통, 월령, 건강 상태, 번식 가능성까지 모두 가격에 반영됐다. 농가주는 송아지 곁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팔기 위해 데리고 왔지만, 그동안 먹이고 키운 시간이 함께 서 있는 듯했다.
현장에는 소를 사러 온 농가들도 있었다. 서산 갈산동에서 왔다는 한 농가는 "10마리 정도 키운다"며 암송아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인지면에서 왔다는 또 다른 농가는 "17마리를 키운다"며 수송아지를 사서 비육할 계획이라고 했다.
경매장을 천천히 도는 사람들의 눈은 예사롭지 않았다. 이미 전산으로 정보를 보고 왔지만, 마지막 판단은 결국 눈앞의 송아지를 보며 내려졌다. 걸음걸이와 골격, 털 상태, 눈빛을 확인하는 과정은 한 마리의 송아지가 앞으로 얼마나 잘 클 수 있을지 가늠하는 일이었다.
| ▲ 서산시 음암면 우시장에 나온 송아지의 귀표. 소는 태어나면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처럼 개체번호가 부여돼 농가 이동과 도축 과정까지 이력이 관리된다. |
| ⓒ 최미향 |
소도 '주민등록번호'가 있다
소마다 개체번호가 있고, 태어나면 신고가 이뤄진다. 어느 농가에서 어느 농가로 이동했는지, 나중에 도축돼 어느 단계까지 갔는지도 이력으로 남는다. 장경훈씨는 "소도 사람 주민등록번호처럼 번호가 있다"며 "식당 라벨까지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니 경매는 단순한 매매가 아니다. 등록, 이력, 방역, 이동 관리가 모두 따라붙는다. 전자경매장은 이 모든 정보를 가격으로 연결하는 현장이었다.
| ▲ 새 식구를 맞을 준비를 마친 듯 바닥에 톱밥을 뽀송뽀송하게 깔아두고 있었다. ⓒ 최미향 |
하지만 전광판 뒤에는 숫자로 정리되지 않는 장면도 있었다. 경매가 끝나자 새 주인을 만난 송아지들이 하나둘 차량에 올랐다. 낯선 차에 타지 않으려 버티고 발버둥치는 송아지도 있었다. 사람들은 줄을 당기고 등을 밀며 조심스럽게 송아지를 실었다. 반대로 어떤 차량은 새 식구를 맞을 준비를 마친 듯 바닥에 톱밥을 뽀송뽀송하게 깔아두고 있었다. 그 위로 송아지가 올라서는 모습은 거래가 끝난 뒤에도 또 다른 돌봄이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줬다.
경매장 곳곳에서 들리는 울음은 오래 귀에 남았다. 한 참석자는 "송아지가 떠나고 나면 어미가 며칠 동안 계속 찾는다"고 했다. 다른 이는 "그냥 우는 게 아니라 엄마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에 젖은 바람 사이로 이어지는 송아지 울음은 개체번호와 낙찰가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한쪽에는 피곤해서 주저앉은 송아지도 있었다. 새벽부터 트럭에 실려 낯선 곳으로 온 탓이었다. 이동 중 다친 것으로 보이는 소도 눈에 띄었다. 바로 움직이면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어 현장에서는 그대로 둔 채 동물병원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수의사가 도착하는 대로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 경매가 낙찰된 송아지들에게 노란색 표찰이 달려 있다. 좋은 한우는 농가의 사육과 개량, 경매를 통한 유통 과정을 거쳐 다시 새로운 농가에서 길러진다. |
| ⓒ 최미향 |
좋은 한우는 어디에서 시작되나
이날 우시장에서 본 것은 단순한 송아지 거래가 아니었다. 혈통을 확인하고, 친자 여부를 살피고, 이력을 관리하고, 농가가 키워낸 송아지를 전국으로 연결하는 과정이었다. 좋은 한우는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하지 않는다. 농가의 사육, 축협의 개량사업, 등록과 이력 관리, 그리고 경매를 통한 유통이 긴 시간 맞물린 결과다.
최근 서산한우가 2026년도 보증씨수소로 선발됐다는 소식도 이 현장과 무관하지 않다. 서산태안축협에 따르면 한우개량사업소는 매년 씨수소를 선발한다. 전국에서 예비 선정된 130두 가운데 후대검정 성적을 거쳐 최종 16두가 보증씨수소로 뽑히는데, 올해 이재복 미송농장 대표가 사육한 한우가 최고 성적으로 선발됐다.
이 소는 오는 8월부터 KPN1779번으로 정액 생산에 들어간다. 조합 측은 "꾸준한 한우개량사업을 추진한 결과 비육종농가 최초로 씨수소가 탄생했다"며 "서산태안축협 조합원 모두의 영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재복 미송농장 대표는 "서산태안축협과 서산한우대학에서 배운 개량기술과 체계적인 기록관리, 맞춤형 사양관리를 꾸준히 실천한 결과가 서산시 최초 보증씨수소 선발이라는 결실로 이어져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경매가 끝난 뒤에도 울음소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전자경매라는 이름 뒤에는 숫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117두라는 당일 집계, 상반기 2100두라는 거래 규모, 약 85억 원의 금액 뒤편에는 어미와 떨어진 송아지, 새 주인을 기다리는 농가, 그리고 이재복 대표 같은 농가들이 쌓아온 서산한우 개량의 시간이 함께 서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도청에도 실립니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경매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