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가르친다면 CXMT는 얼마나 강해질까
2026.07.10 08:02
■ 반도체 호황은 축복이기만 할까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반도체 호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1983년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이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한 이후 1999년부터 2025년까지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영업이익이 293조 원이었다. 그런데 올 한 해에만 350조 원을 바라본다. 반도체, 인공지능(AI) 수요가 폭발하는 시장에 진입한 것이다. 우리 반도체 기업이 지배적인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선 기본 생산을 끌어 올려야 한다.” (동아일보 7월 6일 인터뷰 기사)
긍정의 서사다. 지금의 이례적 반도체 호황이 축복이다, 인공지능 수요가 폭발해서 메모리 값이 뛰고, 한국 기업들이 그 수혜를 보는 파도의 정점에 서 있다는 자부심이 담긴 발언이었다.
정말 그뿐일까. 이 축복을 중국의 입장에서 뒤집어 보면 어떨까.
"중국의 D램 회사 CXMT(창신메모리)는 지난 10년간 54억 달러, 우리 돈으로 7조 원 넘는 적자를 냈다. 만성 적자 기업이었다. 그런데 올해 1분기 한 분기에만 48억 달러를 벌었다. 10년 치 적자를 거의 한 분기 만에 메운 셈이다. 그리고 이 회사의 메모리를, 다른 누구도 아닌 애플이 사려고 한다."
이렇게 보면 같은 호황이 달리 보인다. 이 이야기를 해보자.
■애플은 벌써 CXMT를 테스트 중?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애플이 이미 CXMT의 메모리를 중국 판매용 제품에 넣는 테스트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국방부가 CXMT를 중국군 연계 기업 명단에 올려놓은 상황에서도, 애플은 백악관과 상무부를 상대로 이 회사 제품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직접 로비를 벌이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D램 가격이 너무 올라서다. AI 서버가 메모리를 빨아들이면서 올해 초 D램 가격은 껑충 뛰었다. 애플도 결국 전 제품군 가격을 올렸다.
그러니 최소한 중국에서 파는 제품만이라도 상대적으로 싼 중국산 메모리로 원가를 낮추겠다는 계산이다. 애플의 지난해 기업보고서(10-K)를 보면, 애플 매출의 15.5% 가 중국에서 나온다. 산술적으로는 딱 이만큼 한국 메모리 업체들과 마이크론의 LPDDR 매출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진짜 문제가 아니다. 매출 몇 퍼센트 줄어드는 건 회복 가능한 손실이다. 진짜 무서운 건 다른 데 있다.
■망했어야 할 회사 CXMT
한국 메모리 반도체가 어떻게 세계 1위로 올라섰고, 3강(삼성, 하이닉스, 마이크론)을 빼면 경쟁자가 다 사라진 시장을 만들었을까. 치킨게임이다.
돈을 벌면 그 돈으로 더 큰 공장을 짓고, 그 공장에서 더 싸게 더 많이 만들어서 경쟁자를 시장에서 밀어낸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엘피다 같은 회사들이 버티지 못하고 파산했다.
학습곡선 때문이다. 라이트의 법칙 때문이라고도 한다. 반도체는 더 빠른 반도체가 더 작다. 즉, 더 빠른 반도체를 만들면, 웨이퍼 한 장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찍어낼 수 있다. 기술에서 앞서면 더 빠르고, 더 많은 반도체를, 더 싸게 팔 수 있다.
이 공학적 현상은 잔인한 산업 구조로 이어진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반도체는 끊임없이 더 미세한 공정을 요구한다. 이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투자와 생산 경험이 필요하고, 결국 기술과 자본을 동시에 갖춘 기업만 살아남게 된다.
무어의 법칙이 지배하면 자연히 강한 놈만 살아남는다. 이게 메모리 시장에 한 때 일본 기업만 해도 '7공주, 8공주'라고 부를 정도로 많았고 대만 업체도 수없이 많았는데, 2010년대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셋만 살아남은 이유다.
CXMT는 원래 이 게임의 희생양이 될 회사였다. 그 죽음의 '치킨게임'이 끝난 뒤에 탄생했다. 당시엔 자체 기술 기반도 거의 없었다. 중국의 메모리 회사는 세워졌다가 망하기를 반복했다. 그냥 중국 정부의 필요에 의해 생존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10년 동안 적자를 냈다. 지난해 1분기도 적자였다.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진작 문을 닫았어야 했다. 중국 정부가 계속 돈을 넣어줬을 뿐이다. 회사 지분의 36%를 국유 주주들이 들고 있고, 2023년부터 2025년까지만 최소 60억 위안, 우리 돈 1조 1000억 원가량의 정부 보조금을 받았다. 여기에 중국 정부는 스마트폰 같은 완제품에 자국산 메모리를 쓰면 메모리 값의 15%를 보조해주는 정책까지 운영한다. 팔리지 않아도 되고, 밑져도 되는 회사였던 셈이다.
■초호황이 CXMT의 운명을 바꾼다
그런데 지금의 반도체 호황이 이 밑지는 장사를 흑자로 바꿔놨다. 그것도 그냥 흑자가 아니다. 박수현 KB증권 연구원은 자체 유튜브 페이지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매출이 500% 이상이 늘었어요. 이걸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거 가격이 올라서 그렇겠지'했는데, 아니었어요. 단가는 61% 정도 높아진 걸로 나왔고, 판매량은 282% 늘었습니다. 그러니까 CXMT는 이제 수율(질)과 양을 뽑아낼 수 있는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상하이 증시 상장(IPO)을 앞두고 있다. 당장 다음주면 본격화될 이번 상장을 통해 조달하려는 자금이 7조 원에 육박한다. 연초만 해도 조달 가능 자금이 3~4조원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CXMT의 약진이 알려지면서 점점 금액이 불고 있다.
번 돈, 그리고 상장으로 조달한 돈은 모두 새 공장을 짓는 데 쓰일 것이다. 정부 지원도 계속될 것이다. 이제 CXMT는 무시해도 좋은 상대에서 '내일을 걱정하게 만드는 기업'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 만약 애플이 가르친다면
여기서 짚어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애플은 그냥 부품을 사 가는 고객이 아니다. 오늘보다 내일 더 싼 부품을 받으려고, 생산 과정에 개입하는 회사다.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생산할 수 없는지, 원가 절감을 위해 공급망을 어떻게 바꿀지 협력업체 대신 고민하고 강제로 바꾸게 하는 회사다.
패트릭 맥기의 저서 《애플 인 차이나》가 촘촘하게 추적한 지점인데, 애플은 수십 년간 중국 협력업체에 미국·일본·대만의 엔지니어링 노하우를 그대로 이식해왔다. 매년 수천 명의 애플 엔지니어가 협력사 공장에 상주하며 생산 공정을 설계해주고, 품질 기준을 가르치고, 불량률 잡는 법을 훈련시킨다. 애플이 부품과 장비와 자금을 대고, 협력사는 그 밑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역량을 몸으로 익히는 구조다.
그렇게 성장한 대표 사례가 럭스셰어다. 창업자 왕라이춘은 당장의 이윤보다 애플과 함께 일한다는 사실 자체를 원했다. 그 결과 럭스셰어는 애플워치 조립을 거쳐 2021년 중국 기업 최초로 아이폰을 만드는 회사가 됐고, 애플과 협력한 7년 동안 매출이 1400% 넘게 뛰었다.
CXMT가 애플의 협력사가 된다면, 같은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있다.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요구하는 회사다. 이 기준을 맞추는 과정 자체가 CXMT에게는 수율을 끌어올리고, 공정을 고도화하고, 품질 관리 체계를 세계 수준으로 다시 짜는 강제 훈련이 된다. 물론 메모리 반도체 제조는 애플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이기에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만약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통과하면, CXMT는 스마트폰용 메모리를 넘어 자동차, PC, 서버용 메모리로 순식간에 사업 영역을 넓힐 체력을 갖추게 될지도 모른다.
■ '중국 특색 메모리 플라이휠'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범용 D램 얘기였다. 진짜 승부처는 AI 서버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 HBM이다. 여기서는 아직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의 격차가 크다. 그동안은 미국의 수출 규제로 첨단 노광장비인 EUV를 못 쓰기 때문에, 또 적층 기술과 장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따라오기 어렵다"고 안심해왔다.
그런데 중국은 EUV 없이 가는 우회 기술까지 개발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은 관련 장비 회사에 집중되고 있다. 그리고 CXMT는 지금 HBM2를 양산하는 단계에서, 한 세대를 통째로 건너뛰어 연말까지 HBM3 양산을 목표로 잡고 있다. 이게 현실화되면 원래 4세대였던 격차가 갑자기 2세대로 좁혀진다. 아직 수율이 낮고 실제 양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지만, 방향 자체는 분명하다.
만약 애플로 인해 더 많은 돈을 벌게 되고, 기술적으로 개선된다면 HBM 개발에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 아니면 아예 HBM이 아닌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정리하면 이렇다.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죽지 않고 버텨온 회사가, 반도체 호황을 만나 자기 힘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고, 그 돈은 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으로 몸집을 더 불리고 있다. 여기에 애플이라는, 협력사를 훈련시켜 키우는 것으로 유명한 고객이 붙으면, 기술 격차를 좁히는 속도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이 될 수 있다.
한국 메모리 산업이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이 지점이다.
CXMT가 이제 자생력을 갖추고 미래를 향해 중국 특색의 플라이휠을 굴리기 시작했다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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