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 한탄하며 부른 노래의 문화적 가치
2026.07.10 08:26
| ▲ 내평마을 광장. 한쪽에 전망대 모양의 경로당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다. |
| ⓒ 이돈삼 |
지난 7일,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내평리(內坪里). 겉으로 보이는 마을이 조용하고 평화롭다. 내평리는 내촌, 평림, 사촌 등 3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마을 안쪽에 있다고 '안골' '내촌(內村)'이다. 들판에 있는 마을은 '들모실' '평림(坪林)'이다. 냇가 옆은 '냇가데미' '사촌(沙村)'이다. 내촌과 평림의 첫 글자를 따서 '내평'이 됐다.
내평은 '안쪽 들판'이다. 영산강 지류인 지석천이 감싸고 흐른다. 분지형 땅이다. 홍수가 나면 물에 잠기기 일쑤였다. 벼농사로 먹고살기 힘들었다. 생존을 위해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다른 길'이 목화와 삼(대마)이었다. 천변 모래가 섞인 사질토는 물 빠짐이 좋았다. 목화와 삼 재배지로 맞춤이었다. 목화를 많이 심었다. 마을 아낙네들이 베를 짜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실을 뽑았다. 한밤에도 베틀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생존을 위한 '길쌈'이었다. 목화솜에서 실을 뽑고, 베를 짜는 길쌈은 아낙네들의 일상이 됐다. 한데 모여 옷감을 짜는 모임도 만들어졌다. '길쌈 두레'다. 내평 아낙네들이 짠 베는 인근 능주장과 남평장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자연스레 마을이 '길쌈마을'로 입소문을 탔다.
| ▲ 내평마을에서 만난 벽그림. 목화와 길쌈을 주제로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
| ⓒ 이돈삼 |
| ▲ 내평마을 담장에 그려진 벽그림. 목화와 길쌈을 주제로 그려져 있다. |
| ⓒ 이돈삼 |
하지만 길쌈은 너무 힘들었다. 삼을 베고, 찌고, 껍질을 벗기고, 가늘게 찢어 실을 잇고, 베틀에 앉아 허리와 다리를 쓰며 베를 짜야 했다. 노동은 고되고,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아낙네들은 눈물겨운 노동의 고통을 '노래'로 이겨냈다. 수십 명씩 모여 길쌈 두레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노동의 고단함과 졸음을 달래는 길쌈노래가 탄생했다. 한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면, 다른 사람들이 뒷소리를 받으며 밤을 지새웠다.
신세 한탄으로 시작된 노래였지만, 어느새 서로를 다독이는 연대의 노래가 됐다. 노래는 단조로운 동작을 흥겹게 풀어냈다. 덩달아 생산성도 높아졌다. 노래는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다시 딸에게로 전해졌다.
| ▲ 내평마을 입구에 조성된 목화밭. 포토존도 만들어져 있다. |
| ⓒ 이돈삼 |
그 목화밭이 1970년대 중후반부터 사라져갔다. 화학섬유가 나오면서다. 화학섬유는 목화솜보다 가벼웠다. 보온 효과도 괜찮았다. 80년대 이후 목화밭이 완전히 사라졌다. 장롱을 지키고 있던 목화솜 이불도 버려졌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목화가 잊혀졌다. 책에서나 간간이 사진으로 볼 뿐이었다.
내평마을의 베틀 소리도 잠잠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을의 혼이 담긴 베틀노래를 그대로 묻어두지 않았다. 목화와 함께 사라지고 잊혀진 길쌈노래를 다시 불렀다.
아낙네들이 노랫말을 기억해 냈다. 목화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목화솜을 따고, 길쌈을 하는 과정을 시나리오로 썼다. 마을 아낙네들이 한데 모여 물레를 돌리고, 솜을 타고, 베를 짜고, 다듬이질하며 노래를 불렀다. 한편의 작품이 됐다. '내평마을 길쌈노래'가 다시 만들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틈나는 대로 모여 연습을 했다. 농번기를 피해, 그것도 저녁 시간에 만났다. 길쌈노래 보존회도 만들었다.
'물레야 자세야 어리뱅뱅 돌아라/ 어리렁 스리렁 잘도나 돈다/ 바람 솔솔 부는 날 구름 둥실 뜨는 날/ 월궁에서 놀던 선녀 옥황님께 죄를 짓고// 물레야 자세야 어리뱅뱅 돌아라/ 어리렁 스리렁 잘도나 돈다/ 인간으로 귀양와서 좌우산천 둘러보니/ 한도 많고 꿈도 많은 인간세계 여기로다….'
내평마을 길쌈노래의 '물레 돌리기' 부분이다.
| ▲ 내평마을 풍경. 여느 농촌처럼 고요하고 평화롭다. |
| ⓒ 이돈삼 |
| ▲ 내평길쌈노래 시연. 10여 년 전,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지정 기념 시연 모습이다. |
| ⓒ 화순군 |
내평마을 아낙네들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길쌈노래 시연을 했다. 1990년 남도문화제에선 물레노래와 베틀노래, 길쌈 노동을 재현했다. 2008년엔 화순풍류문화큰잔치에서 길쌈노동을 선보였다. 2013년 내평마을 길쌈노래가 화순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2015년 전남민속예술축제에 나가 대상을 차지했다. 2016년엔 전라남도를 대표해 제57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참가, 최우수상(국무총리상)을 받았다. 2017년 제15차 세계유산도시기구 세계총회 초청을 받아 공연도 했다.
내평마을 길쌈노래가 예술성과 역사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길쌈노래를 연습하며 보존·전승할 길쌈마루 전시관도 마을에 들어섰다. 생존을 위해 길쌈을 하던 내평마을이 전통 길쌈문화를 계승하고 알리는 문화마을로 재탄생한 것이다.
| ▲ 목화와 길쌈을 주제로 그려진 내평마을 벽그림. 마을 초입 모습이다. |
| ⓒ 이돈삼 |
| ▲ 내평마을 풍경. '길쌈마을'임을 자랑하고 있다. |
| ⓒ 이돈삼 |
추억 속의 목화밭을 내평마을에서 만났다. 목화밭에 포토존도 만들어져 있다. 마을로 가는 길목에서다. 목화와 길쌈을 주제로 한 벽그림도 다채롭게 그려져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품으려 하니 모두가 꽃이었습니다'라는 시구도 보인다.
기억 저편에 있던 옛 추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어렸을 때 다래는 훌륭한 주전부리였다. 떨떠름하면서도 달큼한 맛이 생생하다. 누비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키를 뒤집어쓴 채 소금을 얻으러 나간 기억도 끄집어낸다. 내평마을이 방문 기념으로 길손에게 준 선물이다.
| ▲ 내평마을 전경. 화순의 '핫플'로 뜬 개미산전망대가 저만치 보인다. |
| ⓒ 이돈삼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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