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시간 전
누가 산 정상에 맷돌을 옮겨놨나? [경상도의 숨은 명산 경주 마석산]
2026.07.10 07:30
최근 산꾼들 사이에서는 또 하나의 숨은 명산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바로 경주시 내남면 명계리와 외동읍 제내리에 걸쳐 있는 해발 531m의 마석산이다. 정상 부근의 바위가 맷돌처럼 생겼다 하여 맷돌산이라 불렸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마석산磨石山이 되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산 곳곳에 자리한 기암괴석과 시원한 조망 덕분에 '바위 맛집'이라는 별칭까지 얻고 있다.
이번 산행은 북토리마을에서 출발해 기암지대를 둘러본 뒤 정상을 거쳐 용문사로 하산하는 종주형 코스로 진행했다. 이틀 동안 전국에 내린 초여름 비가 산과 숲을 촉촉하게 적셔 놓아 더욱 기대가 되었다.
산행은 '마석산이 토해내듯 흙이 샘솟는 토상지吐上池 북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인 북토리마을에서 시작된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북토리'라 새겨진 표지석 뒤로 오늘 올라야 할 마석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이 푸른 능선의 산허리를 감싸고 있었지만 오히려 산세의 깊이와 신비로움을 더해 주고 있었다.
들머리 인근 연지저수지는 또 다른 볼거리다. 잔잔한 수면 위로 넓게 펼쳐진 연잎에는 빗방울이 영롱하게 맺혀 반짝였고, 수령이 오래된 고목들은 저수지를 지키는 수호목처럼 고즈넉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인적 드문 시골마을의 한적함은 산행 전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기에 충분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북토리와 연지저수지는 마석산의 암릉과 기암괴석을 만나기 전 산객에게 설렘을 선물하는 아름다운 프롤로그였다.
마침 지나가는 마을 어르신께 들머리를 여쭈니 친절하게 길을 알려준다. 혹시 택시가 필요하면 연락하라며 전화번호까지 알려주는 따뜻한 시골 인심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골목길을 걷다 보니 집집마다 정성스럽게 가꿔 놓은 꽃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집 앞은 물론 담장과 마당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꽃들은 마치 작은 화원을 옮겨놓은 듯 아름다움을 뽐내며 마을을 더욱 생기 있게 만들고 있었다. 또 담장 너머 길가까지 가지를 내민 오디나무에는 검붉게 익은 오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당장이라도 따 먹고 싶었지만 눈으로만 담아둔다.
밀양박씨 제실을 지나 등산 안내판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과수원 옆 농장을 지날 때 커다란 뿔을 지닌 흑염소 여러 마리가 갑자기 몰려나와 순간 긴장했지만, 이내 관심을 거두고 자기들 영역으로 돌아가 해프닝으로 끝났다.
오르막이 시작되자 세상의 소음은 사라지고 자연의 소리만이 숲을 채웠다. 멀리서 들려오던 뻐꾸기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꿩 한 마리가 갑자기 날아오르며 힘찬 날갯짓 소리를 내 깜짝 놀라게 했다. 깊은 숲으로 들어갈수록 다양한 새소리와 낙엽을 밟는 소리, 나뭇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만이 귓가를 채웠다.
비가 내린 뒤의 숲은 촉촉한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젖은 흙냄새와 피톤치드향이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육산 특유의 부드러운 흙길은 발걸음을 가볍게 했고, 초여름 숲의 싱그러움은 일상의 지친 심신에 최고의 보약이 되어주었다.
한참 오르다 처음 만난 두꺼비바위는 이름과 달리 큰 부리를 가진 새처럼 보였다.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바위 보물찾기가 시작되었다. 숲길을 벗어나자 하늘을 향해 창끝처럼 솟은 삼지창바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 갈래의 암봉이 하늘을 찌르는 모습은 자연이 빚어낸 거대한 조형물이었다. 조금 아래 자리한 선바위 역시 오랜 세월을 견뎌낸 위엄을 보여 주었다. 바위 곁에 서서 내려다본 북토리마을과 외동 들판, 토함산 능선 풍경은 마석산이 선사한 아름다운 선물 가운데 하나였다.
삼지창 바위를 지나 조망바위에 오르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선바위와 횃불바위, 크고 작은 기암들이 한눈에 펼쳐지며 거대한 야외 조각 전시장을 연상케 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마석산을 찾는구나."
왜 마석산이 바위 맛집이라 불리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탁 트인 조망과 독특한 바위군이 어우러진 이곳은 마석산 최고의 핫플레이스이자 가장 인상 깊은 전망 터이다.
'마석산 정상 0.5km, 가시개바위 0.3km'를 알리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가시개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경상도 사투리로 가위를 '가시개'라 한다. 이 바위와 가위바위보를 하는 사진이 인기다.
나는 로마시대 기사의 옆모습이 떠올랐고, 아내는 상투를 튼 남자의 얼굴 같다고 했다. 같은 바위를 보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기암 탐방의 묘미다. 거침없는 조망을 벗 삼아 시원한 그늘에서 시원한 물 한 모금과 간식을 먹으며 조용한 쉼을 누렸다.
마석산 바위의 주인공은 단연 맷돌바위였다. 보면 바로 "맷돌이네!" 소리가 나온다. 상상력이 풍부한 아내는 고개를 돌려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높이 약 15m에 이르는 거대한 맷돌바위 뒤편으로 돌아가니 로프를 잡고 오를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조심스레 올라서자 더욱 넓은 풍광이 펼쳐졌다. 바위꼭대기까지 욕심을 내고 싶었지만 고도감이 상당하다.
마지막은 유두바위다. 아내의 눈초리에 얌전하게 감상만 하고 어느 말도 덧붙이지 않은 채 경주의 남산인 고위봉을 바라본다. 마석산의 진짜 매력은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숨어 있는 바위 보물을 하나씩 찾아가는 즐거움에 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기암괴석들은 때로는 동물이 되고, 때로는 사람의 얼굴이 되며, 또 어떤 것은 이름 없는 예술작품이 되어 산객을 맞이한다. 바위를 만날 때마다 저마다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름을 붙여보고, 바위를 뒤로하면 또 다른 풍경과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어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진다.
출발 2시간 20여 분 만에 마석산 정상에 올랐다. 해발 531m의 정상은 주변으로 소나무와 활엽수가 어우러져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가득 품고 있다. 아늑한 쉼터 같은 편안함을 선사하는 대신 조망이 아쉽다.
또 벤치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고도 자신이 만든 흔적을 그대로 남겨둔 모습은 아쉬움을 넘어 안타까웠다. 씁쓸한 마음으로 쓰레기를 챙겼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천년의 숨결이 깃든 용문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산 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 이어졌다. 짙은 녹음이 만들어 내는 그늘 덕분에 한여름에도 시원한 산행이 가능할 것 같다. 길가에는 송이버섯 채취금지 현수막과 출입금지 줄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석산이 송이버섯 산지임을 짐작하게 하는 풍경이었다. 숲길이 다소 단조롭게 느껴질 즈음, 누군가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작은 돌탑들이 눈길을 끌었다. 작은 돌 하나하나에 담긴 염원이 전해져 우리도 살포시 작은 돌 하나씩 얹어 놓았다.
용문사 경내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삼신각이 눈에 들어왔다.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잠시 두 손을 모아본다. 이어 만난 백운대 마애불입상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발길을 멈추게 했다. 높이 4.6m 규모의 통일신라시대 마애불로 비록 완성되지 못한 채 세월 속에 남겨졌지만 오히려 투박하고 소박한 모습이 더 경건하게 느껴졌다.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의 온화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천 년의 시간이 한순간에 스며드는 듯했다.
마애불의 시선으로 바라본 풍경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하얀 뭉게구름이 떠가는 하늘 아래 힘차게 뻗어가는 영남알프스산군이 병풍처럼 펼쳐져 한 폭의 산수화를 완성하고 있었다. 마석산 품속에 조용히 자리한 용문사는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가 전부인 아담한 사찰이다. 또 눈길을 끈 것은 오랜 세월 바람과 비를 견뎌온 노송들이었다. 붉은빛을 머금은 굵은 줄기와 사방으로 힘차게 뻗은 가지들이 신라의 역사와 어우러져 자연스레 이어진다.
이제 택시를 이용해 북토리마을로 돌아가 차량을 회수한다. 이후 경주 시내에서 놋전국수로 허기를 달래고 최근 SNS에서 핫한 '경북천년의숲'까지 둘러본 뒤 집으로 향했다. 이번 마석산 산행은 화려한 명산을 찾는 산행은 아니었다. 하지만 비에 젖은 촉촉한 숲길, 뻐꾸기와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 담장 너머로 손짓하던 검붉은 오디, 그리고 하나하나 찾아가는 바위 보물찾기까지 즐거움이 가득한 힐링 산행이었다. 바위 보물창고 마석산. 초보 등산객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으면서 눈과 귀, 입과 마음까지 모두 만족시켜 주는 숨은 명산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두 코스 모두 비교적 부담 없이 마석산의 대표 볼거리인 정상과 암릉 바위군을 둘러볼 수 있으니 자신의 체력과 산행 목적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북토리 코스는 기암괴석 탐방, 용문사 코스는 숲길 트레킹과 문화유산 관람에 더욱 적합하다.
교통(지역번호 054)
자차 이용 시 내비게이션에 북토리마을회관 (경주시 외동읍 방어북토리길 245-4) 검색. 대중교통은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경주터미널에서 506번 버스(보광사 정류장행 평일 08:10, 11:10, 13:10, 15:20, 17:40, 토·일·공휴일 08:10, 11:20, 14:40, 17:40)나, 508번 버스(08:10, 09:00, 12:30, 16:00)를 타면 된다. 북토리 정류장에서 경주터미널로 가는 506, 508번 버스 시간은 08:30, 10:50, 12:50, 15:40, 17:45. 택시는 불국사택시(746-9292), 경주브랜드택시(749-3000).
맛집(지역번호 054)
경주 황리단길 노포 놋전국수(749-2162)는 예전부터 숨어 있는 맛집으로 아는 사람만 찾는 곳. 잔치국수, 비빔국수, 회국수 등과 빈대떡, 파전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맛집. 맷돌순두부(620-9000)는 경주를 찾을 때면 꼭 생각나는 곳. 자극적이지 않은 깊은 맛의 순두부찌개와 다양한 반찬이 제공되며, 국산 콩으로 만든 부드럽고 고소한 순두부가 일품이다. 대표음식 맷돌순두부찌개 1만3,000원.
별미로는 함양집(777-6947)의 한우물회(1만4,000원)다. 물회에 해산물이 아닌 경주 한우로 만든 육회가 올라가 식감이 부드럽고 쫄깃하다. 소면과 밥까지 말아 먹으면 든든한 한 끼로 손색이 없다. 현지인 추천 맛집으로는 정록쌈밥(772-9333)과 이풍녀 구로쌈밥(749-0600)이 있다. 모두 푸짐한 반찬과 신선한 쌈채소를 내며 건강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쌈밥집이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황남빵이다. 얇은 피와 풍부한 팥소가 조화를 이룬 경주 간식이다. 본점(749-9000)에서 낱개는 물론 대량 구매, 택배 서비스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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