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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30억 강남 아파트 옆 ‘판자촌’은 침수 걱정…80대 노인은 직접 배수로를 퍼냈다 [세상&]

2026.07.10 06:46

장마 소식에 떠는 구룡마을
80대 노인 나와 배수구 청소
집 앞에는 모래 자루 쌓아놔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 비가 내리자 주민 황모(83) 씨가 나와 배수로 청소를 하고 있다. 윤승현 수습기자


[헤럴드경제=이영기 기자·윤승현 수습기자] “여기(배수로)가 막히면 집으로 물이 들어와요. 비 올 때마다 나와서 직접 퍼내요.”

장맛비가 내리는 지난 9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 인근엔 20-30억대의 개포동 아파트가 즐비한 이곳에서 만난 황모(83) 씨는 내리는 비를 맞으며 배수로의 토사물을 퍼내며 이렇게 말했다.

우비만 입은 황씨는 배수로의 철망을 들어내 쉴 새 없이 토사물을 퍼냈다. 조금만 지체했다가는 집으로 물이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그의 다급한 손놀림이 무색하게 황씨 앞으로는 빗물이 고여 이미 작은 도랑이 됐다.

황씨는 이날 “폭우 온다고 하면 늘 걱정이다. 오늘도 비가 많이 온다고 하던데 큰일이다”라고 토로했다.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 비가 내리자 주민 황모(83) 씨가 나와 배수로 청소를 하고 있다. 윤승현 수습기자


이날 수도권에 장맛비가 집중된다는 소식을 들은 구룡마을 주민들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저지대 주민들은 불안한 듯 분주하게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가는 집 안으로 물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임시로 지은 건물인 데다 낡기까지 한 구룡마을 가구들은 문턱이 없다. 집 앞에 빗물이 고이면 안으로 물이 들어오기 십상이다.

구룡마을주민회 회장 김병찬 씨는 “골목과 집 사이에 턱이 없다. 빗물이 다 내려와서 집 안으로 들어간다”며 “모래 마대를 쌓아서 대비한다”고 말했다.

이어 “폭우가 내린다고 하면 걱정이다”라며 “비가 새면 잘 수가 없으니 허름해도 천장에 비닐만 치고 그러면서 지낸다”고 덧붙였다.

지난 1월 발생한 화재로 집을 잃고 화재민 임시 거주지에서 생활하는 이모(64) 씨는 “폭우가 내린다는 뉴스를 보면 걱정되고 심장이 뛴다”며 “다른 곳에 잘 곳이 따로 있는 사람들은 장마철에 거기로 가서 지낸다”고 설명했다

70대 김모 씨는 “비 많이 오면 집 무너지고 정전되는 건 늘상 반복되는 일”이라며 “겨울에는 불이 날까봐 무섭고 여름에는 장마가 무섭다”고 토로했다.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의 한 가구 앞으로 모래자루가 쌓여있다. 구룡마을의 저지대에는 비가 고이기 쉬워 집마다 주민들은 침수를 대비하기 위해 모래자루를 쌓아놨다. 윤승현 수습기자


이처럼 주민들이 폭우·장마 소식에 경기를 일으키듯 걱정하는 이유는 마을이 침수된 기억 때문이다. 중부지방에 폭우가 내려 곳곳이 물에 잠겼던 2022년 8월.

당시 구룡마을의 일부 지대도 침수됐다. 침수 피해로 이재민 106명이 발생했다. 다른 거처가 없는 이재민 89명은 인근 구룡중학교에 차려진 이재민 임시 주거시설로 몸을 피했다.

구룡마을은 침수뿐 아니라 화재에도 취약하다. 노후화하고 임시 시설로만 지어진 마을에는 현대식 소방 시설이 없다.

지난 1월 화재가 발생한 구룡마을 5지구의 모습. 정주원 기자


지난 1월 구룡마을에서는 대형 화재가 반복됐다. 마을 4지구와 6지구에서 큰 불이 발생해 8시간 만에 진화됐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잿더미가 됐다. 총 165세대 258명이 대피했으며, 129세대 181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2023년에도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같은 자리인 4지구에서 화재가 발생해 500명이 대피하고 62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바 있다.

구룡마을은 무허가 임시 건축물이라 스프링클러 등 현대화된 소방 시설이 설치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구룡마을 일대를 상시 순찰하며 주기적인 수로 정비와 적치물 제거를 통해 침수를 대비하고 있다”며 “현재는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에서 관리를 담당하고 있고 강남구청은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구룡마을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도시미관정비사업을 실시하며 집을 잃은 이들이 모인 곳이다. 이들이 구룡산 자락에 모여 판자촌을 이루면서 ‘구룡마을’이 됐다.

현재 재개발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보상 절차 등이 합의에 이르지 않아, 당장 개발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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