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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트럼프 독트린을 ‘조기 부검’한다

2026.07.10 06:51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은 트럼프 행정부 스스로 핵심적인 대외정책 교리와 공약을 파기하는 행위였다. 결국 트럼프는 현실주의의 거짓 선지자였던 셈이다.
4월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이란 전쟁 상황에 대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CNP


이 글은 2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이미 ‘조기 부검’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만큼 근본적 난맥상에 빠져 있다고 전제한다. 출범 당시 이 행정부가 내세운 대전략의 언어와, 지난 1년여 동안 실제로 집행해온 정책 사이에는 이제 더 이상 간과하기 어려운 간극이 벌어져 있다. 그 간극은 단순한 시행착오의 수준을 넘어 미국의 국익 자체를 흔들고, 더 넓게는 미국이 주도해온 패권 질서 전반에 심각한 교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이 혼란의 한복판에는 지난 2월 말, 예고 없이 발발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사태가 놓여 있다.

국가안보전략서(NSS)와 국가방위전략서(NDS) 같은 정권 1년 차 공식 문서에 담겨 있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전략 노선은 분명히 현실주의적 논리가 중요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즉, 단극 시대 동안 방만한 외교정책 운영으로 급격히 벌어진 수단과 목표 사이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기존 미국 외교의 목표를 대폭 축소하고, 대신 수단은 비축해가는 방향의 내향적 독트린’을 천명한 것이다. 이는 지역별 접근법에서 소위 역외 균형(offshore balancing) 전략을 추구했다. 즉, 미국의 고유 세력권으로서 서반구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지배는 공고히 하되, 유럽과 중동의 경우 역내 국가들끼리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사업에 매진하고 미국 자신의 개입은 점진적으로 축소할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러한 수습과 재정비 작업은 21세기 전략 경쟁의 유일한 맞상대인 중국과의 장기전을 준비하기 위한 숨 고르기 차원에서 이해됐다.

특히 중동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는 명시적으로, 해당 지역이 미국 외교의 관심과 에너지를 지배하던 시절은 종료되었다고 선언하면서 이는 역내에 임박한 재앙적 문제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과거 미국이 중동에서 행한 잘못된 실험(=외부에서의 민주화 강제 및 국가 건설)을 폐기할 것이라 공약하면서 지역과 지역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책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란과 그 대리 세력들을 억지하고 방어하는 1차 책임을 역내 동맹국과 파트너국들이 맡도록 할 것이라고 묘사했다.

3월 21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이란혁명수비대 전 대변인 알리 모하마드 나이니의 장례식에서 한 이란 남성이 미국의 폭격으로 사망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EPA


그럼에도 이런 문서들이 출판되고 채 한 계절도 지나지 않은 2026년 2월28일,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전격적으로 이란 침공을 단행했다. 그리고 4개월간 전쟁이 지속되었으나 애초에 미국이 추구한 전쟁 목표는 거의 달성하지 못한 채 지루한 휴전 협상만 진행되고 있다. 독재자 하메네이에게 ‘순교자의 죽음’ 서사를 부여해줌으로써 도리어 신정체제 유지의 논리가 보강되었으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며 미국에 막대한 비용을 부과하는 소모전 수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처럼 잘 풀리지 않은 전황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이란 침공이 트럼프 행정부 스스로 핵심적인 대외정책 교리와 공약을 파기하는 행위였다는 사실에 있다. 오랜 기간 기성 외교 기득권층의 ‘영구 전쟁’ 독트린을 비판하고 반개입주의로 자기 브랜드를 구축해왔으며, 특히 2기 집권 과정에서 ‘평화’ 대통령의 면모를 부각해왔던 트럼프의 자기 서사와 이 전쟁은 도무지 화해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이란 침공은 ‘핵심 교리’ 파기한 행위



결국 트럼프는 현실주의의 거짓 선지자였던 셈이다. 1기의 ‘원칙적 현실주의’에 이어 2기에도 ‘유연한 현실주의’로 자신의 독트린을 이름 붙임으로써 기존 미국 외교의 자유국제주의 컨센서스와 자신을 차별화하는 데 노력했고, 이를 통해 자신만이 국익을 우선하는 민중의 대변자임을 자임해왔지만, ‘장대한 분노’ 작전의 무모한 정책 결정 과정과 혼란스러운 전쟁 목표의 변경은 도리어 현실주의가 경고해온 악덕만 부각해주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일반론적 차원에서는 현실주의가 강조하는 일관된 전략, 절제된 힘의 사용, 명확한 국익의 정의 등이 부재함을 노출했다. 미국 외교 차원에서는 역외 균형의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결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간 기인에 가까운 행태와 언사를 보인 트럼프에 대해 좌우를 가리지 않고 숱한 비판이 쏟아졌음에도, 일부 현실주의자들은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계속 ‘구조적 산물’로서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동맹 비용 전가, 개입 축소 등의 ‘미국 우선’ 정책은 특정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쇠퇴하는 패권국이 구조적 압력에 따라 부담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성된 결과로 이해됐다. 즉, 트럼프는 원인이 아니라 거시 변동의 증상이며, 그의 외교정책은 보다 깊은 체제적 전환이 만들어낸 비인간적 힘들의 산물이라는 것이 현실주의자들의 분석이었다. 현실주의라는 기표는 어찌 보면 트럼프의 대외정책을 지적으로 정당화해주는 거의 유일한 학술 언어로 존재해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전쟁 결정과 뒤이은 혼란상으로 인해 트럼프의 외교정책은 현실주의라는 학문적 정당성마저 상실해버렸다.

오늘날의 역사적 국면은 장기적인 구조적 변동과 트럼프 2기 정부의 대외정책적 선택이라는 우발적 사건이 맞물려 있어 더욱 위중하다. 즉, 중국의 부상에 따른 패권 이행, 반세계화와 민주주의 역진, AI 등 신기술의 부상, 기후변화 같은 장기적 위기들이 수렴하는 와중에 트럼프 정권의 여러 ‘악수’가 더해지면서 공위기(interregnum·최고 권력의 공백기)로의 이행을 가속화하는 정세다. 그리고 이러한 변환기에는 그람시의 말처럼 여러 병적 징후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2026년 4월1일, 이란 전쟁 개전 후 첫 대국민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거의 어떠한 석유도 수입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를 공급받는 세계 각국은 그 항로를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결정으로 일어난 전쟁 때문에 해협이 봉쇄되어 전 지구 경제가 대혼돈을 겪는데도 향후 벌어질 일을 각국이 알아서 대처하라는 식의 무책임한 자세를 보인 것이다.

6월11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작은 모터보트가 정박 중인 선박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ISNA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관리하지 못하는, 나아가 아예 관리를 포기한 듯한 미국의 모습은 기존 현대사에서 워싱턴의 숱한 개입 기록과 비교해봤을 때도 질적으로 달랐다. 특히 1970년대 두 차례 석유 위기에서 미국이 위기 발생 원인의 한 축이면서도 패권국으로서 그 해결사 역할을 담당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현재 시점에서 전쟁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완전히 끝날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이란 전쟁을 계기로 미국 패권에 심대한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은 확실히 감지 가능하다. 그리고 그 위기는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무모한 결정들이 자초한 것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2000년대 이후 오랜 기간 워싱턴은 “중국이 언제 미국 패권을 위협할 것인가”를 고민해왔지만, 보다 본질적인 질문은 타자가 아닌 자아에 대한 물음, 즉 “미국이 과연 패권을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자격과 정당성에 대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미국 패권 체제의 골간을 이뤄온 동맹 시스템의 균열이 크게 부각되었다. 행성적 범위에 걸친 동맹 네트워크는 팍스아메리카나의 독특한 안보제도적 기반을 형성해왔으며, 미국은 늘 동맹국들과의 연합에 기반해 주요한 전쟁을 수행했다. 일방주의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이라크 전쟁조차 미국은 ‘의지의 연합’이라는 다국적군을 구성해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이번 호르무즈 해협 위기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유럽과 아시아 양대 동맹체제 소속국 중 어느 나라도 미국의 군사 지원 요청에 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개별적으로 이란과 접촉해 해협 통과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며, 나아가 미국을 제외한 해협 운영체계 구축마저 모색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각자도생적 개별 행동의 등장은 미국 패권의 제도적 기반이 흔들리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자, 글로벌 질서 전환의 중요한 신호로 간주된다.

‘동맹 비용’ 아끼려다 네트워크 잃었다



이는 ‘장대한 분노’ 작전 이전부터 동맹에 대해 관세 부과, 방위비 분담 압박으로 약탈적 일방주의 행동을 일삼았을 뿐만 아니라, 전쟁 수행 과정에서 중동으로의 전력 집중을 위해 협의 절차 없이 러시아·중국 방어망을 약화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동맹국들에게 미국이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보호자’라는 확신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미국 우선’의 구호 아래 동맹의 비용을 아끼려다 오히려 동맹 네트워크라는 미국만의 예외적 전략자산을 손실한 셈이다.

탈단극이라는 권력 분산화가 시대의 필연적 변동이라고 한다면, 과연 미국이 이 세계 구조 전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21세기 중반 국제정치 질서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의 유럽 협조체제에서 볼 수 있듯 다극 세계에서도 국제정치의 질서와 안정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강대국 간 상호 승인과 복잡한 제한(restraint)의 제도적 아키텍처(구조 설계), 규범의 집합이 요구되는 일이다.

5월14일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의 톈탄에서 악수하고 있다. ©AP Photo


결국 하강하는 패권국으로서 워싱턴이 다극 시대의 도래를 인정하고 타 강대국과의 ‘경쟁적 공존’을 추구하는 등 자기 역할 개념 및 대전략상 구조조정이라는 거대한 탈예외주의적 현실주의 실험이 요구되는 시점이라 하겠다. 환언하면, 다극화 시대에 대응하는 자기 절제와 신중성, 다원성의 존중이라는 의제가 미국 대전략 논의의 새로운 중심이 되어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트럼프의 미국이 나아가고 있는 길은 19세기의 카우보이 제국주의 혹은 포함외교의 길처럼 보인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겠다는 ‘돈로(Donroe) 독트린’ 선포와 뒤이은 베네수엘라와 이란에서의 일방적 군사행동은 미국 패권 위기를 가속화하는 것이자, 열강들의 세력권 확장 경쟁이라는 ‘헬게이트’를 열어젖힌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트럼프의 외교가 다른 강대국들의 행위 기준까지 낮추는 효과를 낳아, 예컨대 중국의 타이완 침공조차 충분히 용인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면, 국제 질서 전반이 일촉즉발의 대전쟁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작금의 정세는 1930년대 전간기(제1차 세계대전 종료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의 기간)의 위기-패권국이 부재한 공위기의 조건에서 강대국 간 전략 경쟁이 심화되었던 국면-에서 불길한 기시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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