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이재명 정권, 과거와 헤어질 때 됐다
2026.07.10 00:16
낌새가 예사롭지 않다. 삼성전자는 2분기 89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며 세계 1등이 됐다. 올해 반도체 이익은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해 온 지난 40년간의 누적 이익보다 많을 거라고 한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메모리 시장 점유율은 약 60%에 달한다.
우리는 인공지능(AI) 혁명에 따른 반도체 칩 부족을 ‘AI 특수’라고 기뻐하지만, 미국의 빅테크들엔 죽을 맛일 거다. 그들은 칩 부족으로 가격이 오르면 수익성이 떨어진다. 미국 경제 전체로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재앙의 불씨가 된다. 오죽하면 애플이 중국 반도체 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메모리 칩 구매를 허용해 달라고 미 정부에 로비까지 벌이고 있을까. 칩 가격 폭등을 “100년 만의 홍수”(팀 쿡 최고경영자)라고 했던 애플은 결국 맥북과 아이패드 가격을 큰 폭으로 올렸다.
호남에 반도체 팹(fab·공장) 4기를 구축하겠다는 이재명 정권의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는 그 AI 특수를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를 앞세운다. 그러나 상대는 미국, 중국, 일본이다.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국가적 이벤트보다 기업을 뒤에서 힘껏 지원하는 모양새가 더 실리적이었을 거다.
호남 반도체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AI 사이클이 꺾이기 전에 팹을 완공하고 시장 지배력을 확고히 하는 게 관건이다. 반도체 팹에는 ‘인(人)·수(水)·전(電)·지(地)’가 필요하다. 정부가 최근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광주 군공항 부지에 조성키로 한 것은 그중 ‘지’에 해당한다. 난이도로 치면 가장 쉽다.
이제 전력과 산업용수, 인재를 어떻게 조달할지를 정부가 답해야 한다. 대략 호남 반도체 팹에만 대형 원전(1.4GW) 4.5기 규모의 전력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원전만큼 효율적인 방도는 없다. 청정 산업용수는 어떻게 댈 건가. 결국 4대강·댐 건설 반대를 뛰어넘어야 한다. 우수 인력 유치를 위한 교육과 의료 등 정주 요건 충족도 긴요하다. 동시에 노동시장 규제를 풀어야 한다. 공장을 서둘러 짓자면서 주 52시간제, 노란봉투법에 갇히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탈원전, 댐 반대를 민주당의 정체성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원전은 민주당이 배출한 김대중(DJ)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활발했다. DJ 시절엔 월성 3·4호기를 비롯해 원전 6기가 완공됐고, 한울 5·6호기 등 2기가 새로 착공됐다. 노무현 정부에선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 선정됐고, 신고리 1·2·3호기 등 5기가 착공됐다. 두 정권에선 용담댐·장흥댐 등 대형 다목적댐도 여러 개 세워졌다. 노동 정책도 지금처럼 노조 편향적이지 않았다. IMF 체제의 영향이 크긴 했지만, DJ 정부 때 정리해고까지 도입됐다.
이 대통령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진심이라면 과학과 상식의 궤도를 이탈했던 탈원전, 댐 반대, 노조 편향 등 포퓰리즘 기조와 결별하는 것밖에 길이 없다. 그게 호남 반도체 성공의 필수 요소다.
‘전쟁’은 지금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현 정권은 ‘호남 반도체’를 비장의 무기로 선택했다. 세간엔 갑작스럽고 놀라운 결정의 동기가 특정 당권 주자 지원이라는 의구심이 있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호남 반도체 성공을 위한 여정에서 원전과 댐이 확충되고 노동시장 개혁이 이뤄질 수 있다면, 어쩌면 진짜 국운이 열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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