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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AI에 생각을 맡겨버린 아이들

2026.07.09 23:51

숙제도, 보고서도, 탐구도 AI로
무조건 챗GPT부터 여는 아이들
AI에 사고를 맡기는 습관 들면
생각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을까



2023년 11월 9일 부산 해운대구 양운초등학교에서 5학년 학생들이 태블릿PC로 생성형 AI를 활용해 논설문 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김동환 기자

고백하자면 필자는 ‘AI 교육론자’였다. 챗GPT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아이들은 가능한 한 빨리 AI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AI와 함께 살아갈 세대이기 때문에 일찍 익숙해지는 것이 미래 경쟁력이라고 믿었다. 궁금한 것을 언제든 답해주는 ‘AI 튜터’가 사교육 문제와 교육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정부가 2023년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발표했을 때 먼저 던진 질문도 “챗GPT 같은 챗봇 기능이 들어가느냐”였다. 많은 기자의 관심이 거기에 쏠려 있었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몇 년 만에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이들이 AI를 배우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공부할 때만큼은 AI부터 켜는 습관을 들여선 안 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공부를 하다가 생각이 그렇게 바뀌었다. 작년부터 논문을 읽을 때마다 AI를 썼다. 논문 수십 편을 올리면 연구 목적과 핵심 결과를 순식간에 정리해 주는 AI다. 논문 읽는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었고 최신 연구를 누구보다 많이 읽는다는 뿌듯함도 컸다. 그런데 올 초부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읽은 논문인데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대략적인 맥락만 떠오를 뿐, 무엇을 새롭게 배웠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공부를 많이 한 것이 아니라, 많이 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교사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숙제는 물론 발표 준비, 보고서, 문제 풀이까지 거의 모든 학습 활동에 AI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생이 수학 문제를 사진 찍어 AI에 올려 답만 받아 적는 걸 보고 이건 아니지 않나 싶었다”고 했다. 집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다. 고등학생 딸은 과제를 할 때 먼저 챗GPT를 연다. 최근엔 ‘원하는 주제를 골라 탐구 보고서를 쓰라’는 과제를 하면서, AI에 가장 먼저 “탐구 주제를 찾아달라”고 했다. “생각할 시간도 없고, AI가 더 잘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한 중학교 교사는 “교사들이 먼저 ‘챗GPT에 물어봐’라고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학계에서는 이런 생성형 AI 학습의 부작용을 경고하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OECD는 ‘디지털 교육 전망 2026’에서 생성형 AI가 수행 성과는 높일 수 있지만 학습 자체를 대신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글을 읽고, 이해하고, 머릿속에서 씨름하는 인지적 과정이 학습인데, AI가 정답을 곧장 제시하면 그 과정을 통째로 건너뛰게 된다는 것이다. 생각을 AI에 맡겨버리는 ‘사고의 외주화’가 심각하다. 목적지까지 빨리 이동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뛰거나 걸을 때 생기는 근육은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

흥미로운 점은 이제 AI 기업들조차 이런 위험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최근 ‘교육용 AI’를 내놓고 있다. 정답을 바로 알려주지 않고, 질문을 던지고, 힌트를 줘서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AI다. 가장 앞선 AI 기업들이 오히려 ‘천천히 생각하게 만드는 AI’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곱씹어 봐야 한다.

국가 차원의 고민도 시작됐다. 노르웨이는 오는 8월부터 학교에서 초등학생의 생성형 AI 사용을 사실상 금지하기로 했다. 중학생은 교사의 지도 아래 제한적으로 쓸 수 있다. 읽기와 쓰기처럼 사고의 기초를 먼저 익힌 뒤 AI를 접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우리 교육 현장은 AI 사용에 대한 논의가 아직 시험 부정 행위 차단 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 늦기 전에 생성형 AI를 어떤 나이에, 어떤 방식으로, 어디까지 사용하는 게 좋을지 진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아이들이 생성형 AI에 의존하고 중독되기 전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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