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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의 판앤펀] AI 배우의 4초, 티모시 샬라메의 6년

2026.07.10 00:08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며칠전 뉴욕타임스에서 AI 배우 ‘틸리 노우드’와의 인터뷰를 읽었다. 묘한 서늘함이 느껴졌다. 옆집 소녀 같은 미소에 주근깨와 보조개까지 갖췄고, 어떤 질문에든 척척 대답한다. 무엇보다 감독이 원하는 감정을 단 ‘4초’ 만에 오차 없이 출력해낸단다. 우리는 이미 사이버 아이돌에 열광하고 AI 강아지 쇼츠 영상에 즐거워한다. 틸리는 장편영화 주인공으로 데뷔한다니, AI 영화가 거부할 수 없는 새 플랫폼이 될 거라는 예감은 이제 지극히 현실적이다.

순식간에 감정 출력하는 AI 배우
인간은 6년 연습 끝에 탁구 연기
감동은 인생 담긴 연기에서 나와

같은 날 영화 ‘마티 슈프림’(사진)을 봤다. 주연 티모시 샬라메가 말 그대로 불꽃 연기를 펼치는 영화였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기사를 떠올렸다. 이런 영화도 AI 배우가 대체하는 날이 오는 걸까. 데이터의 최적화를 통해 샬라메의 출연료보다 훨씬 싼 값에 이 영화를 만든다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

주인공 마티는 정 주기 힘든 악질적 나르시시스트다. 탁구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겠다는 목표를 위해 사기·배신·불륜 등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임신한 연인까지 이용해먹다 돈 때문에 총에 맞아 죽을 뻔하는 등, 난리법석에 관객은 정신이 하나도 없다.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사나 싶다.

그러나 영화는 이 굴욕 가득한 현실 속에서 진실 한자락을 끄집어낸다. 죽도록 고생해서 도쿄까지 날아갔지만 우승도, 인생 반전도 없다. 마지막에 기다리는 건 더 큰 수모뿐. 그것을 벗어나려 일격을 날려, 의미 없는 승리를 겨우 건진다. 그리고 그토록 밀어내려 했던 고향과 연인에게로 하릴없이 돌아와, 그토록 바라던 트로피 대신 생명을 팔에 안고 눈물을 흘린다. 두 시간 내내 이 지긋지긋한 인간에게 진심이란 게 존재할까 의심했던 마음이, 그 사소한 기쁨과 눈물 한 방울에 무너져 내린다. 영화는 완벽한 성공이 아니라, 실패와 굴욕, 가짜의 연쇄 속에서도 어쩌면 진심과 행복이라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 같다.

모든 영화는 결국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다. 그리고 그 인생이란 스크린이 옮기는 이야기일 뿐 아니라, 그것을 담아내는 배우라는 인간의 삶이 함께 스민 결과물이기도 하다. ‘인간은 그 비루한 삶을 뚫고 어떤 진실을 걷어 올리는가’라는 질문은, 실제 진창 속에서 꽃을 피워낸 인간이 있기에 비로소 타당한 대답으로 다가온다.

티모시 샬라메는 탁구를 6년간 연습했다고 한다. AI라면 몇 초면 해결될 문제다. 스크린에서 마티의 인생이 펼쳐질 때, 관객의 머릿속에는 탁구 라켓을 쥔 손에 굳은살이 배기던 시간이 겹쳐 보일 수밖에 없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여리고 깨질 것 같은 미소년이 이렇게 악착같은 인간으로 뒤바뀌어 나타났을 때, 낙차가 유독 크게 다가온 건,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성장을 지켜봐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자라는 동안 우리도 나이를 먹었고, 그 시간은 분명 함께 흘러간 시간이었다. 그 역시 몇 단계의 변신을 거쳐 우뚝 서기까지, 스크린 뒤에서 좌절을 견디며 성장해왔을 것이다. 캐릭터가 겪는 시련 에 배우의 노력이 겹쳐질 때, 관객은 깊은 감정적 연대를 경험한다.

뉴욕타임스의 기자는 “왜 내 사생활을 궁금해하냐”던 브래들리 쿠퍼 인터뷰를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감동적인 작품을 본 사람들은 그 작품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자신의 상처를 알아봐 주고 위로해 주었는지 예술가를 통해 확인하고 싶어 한다”고. 예술이 우리 마음을 건드리는 건, 매끈한 결과물 뒤에 진짜 시간과 대가를 치른 진짜 사람이 서 있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에 흐르는 팝송처럼 모두가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만 이 징글징글한 인생을 죽도록 달리다 보면 결국 실패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죽일 놈 같은 주인공에게, 그리고 그를 살아낸 배우에게 결국 마음을 여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인간에게 전할 수 있는 시간의 굳은살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틸리 노우드는 앞으로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어쩌면 티모시 샬라메보다 더. 하지만 그에게는 우리가 함께 지켜본 지난 시절이 없다. 어제 태어나 오늘 완성된 얼굴에는, 우리가 마음을 줄 시간의 층위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이 모든 판단은 유보적이다. AI가 인간의 거부감을 극복하는 속도는 내 상상력보다 훨씬 빠를 테니까. 하여간 오늘의 판단은 그렇다는 것이다.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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