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의 시대사색]‘혐오의 놀이화’를 넘어서기 위한 5가지 대책
2026.07.09 19:57
교육은 언제나 그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산업화 시대 학교는 규율과 근면을 가르쳤고, 민주화 시대 학교는 자유와 참여를 배우는 공간이 되어야 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플랫폼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그러나 나는 질문을 조금 바꾸고 싶다. 오늘날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10년 동안 서울시교육감을 맡으며 학생인권과 민주시민교육, 세계시민교육을 우리 교육의 중요한 방향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교육감을 마친 뒤 돌이켜보니, 우리가 학교 안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동안 학교 밖에서는 또 다른 사회화가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디지털 플랫폼과 알고리즘이 있다. 학생들은 교과서보다 쇼트폼을 먼저 접하고, 교사보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더 오래 만난다. 민주주의보다 밈을 먼저 배우고, 역사보다 자극적인 이미지와 짧은 영상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알고리즘은 숙고보다 즉각적인 반응을, 맥락보다 자극을, 공감보다 분노를 확산시키는 데 훨씬 능숙하다.
그 결과 우리는 새로운 현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 혐오가 놀이가 되었다. 과거에도 혐오는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정치적 신념이나 사회적 편견을 배경으로 했다. 지금은 다르다. 학생들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느냐고 물으면 “그냥 재미있어서” “밈이라서” “다들 하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혐오는 더 이상 신념만이 아니라 놀이가 되었고, 놀이가 된 혐오는 죄책감 없이 반복된다. 최근 배재고 야구부의 5·18민주화운동 희화화 사건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많은 사람은 학생들의 도덕성, 학교의 생활지도 부족을 비판했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을 학생 몇명의 일탈이라기보다 디지털 시대 사회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하나의 징후로 읽고 싶다.
디지털 시대 ‘사회화’ 방식의 변화
교사들이 학생을 지도하지 않아서만도 아니다.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혐오 표현 상당수는 현실 정치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이를 교육하려 하면 정치교육이라는 비판과 학부모 민원이 뒤따른다. 교사는 학생 앞에서 한 번 위축되고, 민원 앞에서 또 한 번 위축된다. 결국 가장 안전한 선택은 침묵이다. 학교가 비운 공간은 알고리즘이 채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처벌 중심의 대응이 아니라 시민교육의 새로운 재구성이다.
나는 다섯 가지 대책을 제안하고 싶다. 첫째, 교육계가 공유할 ‘반혐오 교육협약’을 만들어야 한다. 인종·지역·성별·장애·역사적 희생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시민적 기준은 특정 진영의 가치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공통 규범이다. 교사는 이러한 원칙을 분명하고 자신 있게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교사의 교육권을 다시 세워야 한다.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과 교육과정에 대한 전문적 교육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학생이 유튜브에서 접한 혐오 표현을 교실에서 반복하면, 교사는 그것이 왜 문제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순간 정치교육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학부모의 민원이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치적 민원이 교육과정을 좌우하는 구조에서는 어떤 시민교육도 성공하기 어렵다.
셋째, 혐오를 토론의 공론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혐오는 단순히 금지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금지와 처벌만으로 접근하면 학생들은 그것을 또 하나의 놀이로 받아들이거나, 더욱 음성적으로 소비할 가능성이 있다. 공동체가 넘지 말아야 할 분명한 기준은 세우되, 그 이후에는 학생 스스로 언어와 행동을 성찰하도록 만드는 교육이 뒤따라야 한다. 학생들이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토론하고, 자신의 언어를 성찰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서울교육청이 추진했던 ‘역지사지형 공존 토론모형’은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혐오를 토론의 양지로 끌어내야
넷째, 정치도 책임을 져야 한다. 학교와 사회는 서로를 비춘다. 정치가 혐오를 동원하고 조롱을 자산으로 활용하는 한, 학생들은 그것을 사회적으로 승인된 행동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여야를 막론하고 미래세대만큼은 혐오의 정치에서 보호하겠다는 최소한의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우리 안의 그늘에 대한 성찰적 개혁도 함께 가야 한다. 산업화의 그늘을 넘어 민주화를 이루었듯이, 이제는 민주화 과정에서 생겨난 새로운 그늘도 돌아볼 때가 되었다. 상대를 악마화하고 조롱하는 정치문화, 내 편의 혐오는 정당화하는 ‘내로남불’,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제거하려는 적대의 문화는 특정 진영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배재고 사태에서 배재고 학생들의 깊은 사과와 광주일고 학생들과 광주 시민사회의 포용적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혐오와 조롱의 근거가 되는 ‘우리 안의 그늘’을 성찰하고 보완하려는 정치·사회·문화적 노력도 같이 가야 한다. 나는 최근 <극우시대가 온다>는 책에서 이러한 문화를 넘어서는 새로운 실천을 ‘햇볕정치’라고 불러왔다. 햇볕정치는 원칙을 포기하는 정치가 아니다. 오히려 그 그늘이 혐오와 차별 의식으로 무장한 극우의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민주화의 그늘을 성찰하면서 이를 초극하는 길을 찾는 정치다. 이는 적대를 경합으로 바꾸고, 승패를 넘어 공존의 질서를 만들어 가려는 민주주의의 실천이다.
디지털 시대 시민교육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길러내야 할 것은 단순히 혐오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가진 시민이다. AI는 지식을 대신할 수 있지만, 타인의 존엄을 존중하는 마음은 대신 길러주지 못한다. 알고리즘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시민성을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차제에 (민주)시민교육도 AI와 디지털 플랫폼 시대에 맞춰, 권리교육에 더해 책임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 시민교육의 과제도 분명하다.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 배우는 혐오보다, 학교 안에서 배우는 공존이 더 오래 남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 교육의 새로운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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