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실적에 美日도 "돈 풀어라"…K메모리에 날아드는 견제구[Why&Next]
2026.07.09 10:38
美·日 등 글로벌 견제 시작
가격 치솟자 통상 압박 가능성까지
"생산량 확대해야" 외교 대응 필요한국 메모리 반도체가 인공지능(AI) 슈퍼사이클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면서 국내에서 진행되는 반도체 초과이윤 배분 논의가 자칫 해외 통상 압박의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가격 담합 집단소송과 공급망 다변화 움직임이 나타났고, 일본에서는 1980년대 미일 반도체 협정을 거론하는 경고까지 나왔다. 당시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했던 일본 반도체가 미국의 통상 압박에 무너진 전례를 한국이 되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서 K메모리가 호황과 견제라는 이중 국면에 진입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9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AI 메모리 매출은 대부분 미국 빅테크에서 나오고 있다. 수익 원천이 미국 시장에 집중된 구조에서 사상 최대 이익의 성과 배분을 둘러싼 국내 논의가 공론화될 경우 자칫 미국측에 현지 환원을 요구할 명분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지 생산과 투자 요구는 관세·규제와 맞물려 미국이 무역 상대국을 압박할 때 동원해온 대표적 통상 카드다. 국내 분배 논의가 이런 요구의 지렛대로 역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호황의 과실 상당 부분이 미국 시장에서 나온 것"이라며 "국내에서 초과이윤 배분 논의가 부각될수록 미국도 그에 상응하는 기여를 요구할 여지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런 우려는 국내 업체들의 실적이 커질수록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2분기 잠정 실적 기준 매출 171조원 영업이익 89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9배 수준이다. SK하이닉스도 10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 상장에 나선다. 사전 수요예측에 청약이 모집 물량의 7배 넘게 몰리며 외국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에 도전한다. 이처럼 실적과 자금 조달 양면에서 한국 업체들의 독주가 뚜렷해지자 견제도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메모리가 AI 인프라의 핵심 병목으로 떠오르면서 가격 급등의 부담을 떠안은 고객사와 각국 정부가 잇달아 대응에 나서는 양상이다.
美 집단소송·애플 이탈 조짐…日선 "미일 반도체 협정" 경고
가장 직접적인 압박은 미국에서 현실화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주요 메모리 제조사를 상대로 D램 가격 담합 의혹을 제기하는 집단소송이 제기됐다. 미국 소비자와 중소 PC 업체들은 3사가 AI용 HBM 생산 확대를 명분으로 일반 D램 공급을 의도적으로 줄여 가격을 끌어올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메모리 가격 급등이 법적·규제 리스크로 전이되는 첫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수요 측의 이탈 조짐도 감지된다. 애플은 중국 내 판매용 기기에 쓸 메모리를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와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로부터 구매하는 방안을 검토하며 미국 정부에 승인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는 미국 국방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곳이다. 그동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의존해온 애플이 블랙리스트 기업까지 대안으로 검토한다는 것은 메모리 값 부담이 한계에 이르자 한국 업체 의존도를 낮춰 가격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언론은 한국 메모리 독주가 통상 문제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전날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을 비중 있게 다루며 AI용 메모리 가격 급등이 한국 반도체 업계의 새로운 경영 리스크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합산 점유율이 60%에 달하는 만큼 통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경고다. 특히 닛케이는 미국이 1980년대 미일 반도체 협정과 환율·통상 압박으로 당시 세계 시장의 50%를 장악했던 일본 반도체 산업을 무너뜨린 전례를 들어 한국 기업에도 현지 생산 확대나 추가 투자 요구가 제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40년 전 일본이 걸었던 길을 한국이 되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도 이런 기류를 감지하고 관리에 나선 모습이다. 일본 낸드플래시 기업 키옥시아는 AI 데이터센터용 고용량 낸드 수요를 타고 주가가 급등해 최근 일본 증시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을 통해 키옥시아에 약 4조원을 투자했는데 주가 급등으로 보유 지분과 전환사채 가치가 15배인 60조원 규모로 불어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 평가차익과 관련해 "돈을 번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본 반도체 산업과의 협력 확대 의지를 밝혔다. 투자 성과를 한일 협력의 지렛대로 삼아 견제를 완충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견제는 선두의 숙명…생산능력·기술 투자로 정면 돌파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국면을 단순한 호황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메모리가 AI 시대의 전략 자원으로 격상된 이상 한국 기업은 압도적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미국·일본·중국 등 주요국의 산업정책 변화에 맞춘 외교적·전략적 대응에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최기영 반도체공학회장(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메모리 가격 급등을 그대로 방치하면 고객사 부담이 커지고, 미국·일본 등 주요국의 견제도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며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결국 생산량 확대"라고 밝혔다. 이어 "메모리 시장에서는 누가 먼저 생산능력을 확대하느냐가 다음 경쟁 구도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견제 자체에 과도하게 위축될 필요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기술 경쟁의 선두 주자를 향한 견제는 불가피한 통과의례인 만큼 본원적 경쟁력 강화가 최선의 방어라는 논리다. 이창한 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각국의 압박이 실질적 위협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요구는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제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오히려 국내 업체들은 미래 기술 투자를 통해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키옥시아 주가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