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전남 국립의대…순천시, '500병상 대학병원 먼저' 응급 해법 내놔
2026.07.09 10:00
시민들 "정치 논리 아닌 시민 건강권, 생명권이 우선"
[더팩트 l 순천=김영신 기자] 전남 국립의과대학 설립 논의가 의대 소재지와 대학병원 건립지를 둘러싼 동·서부권 갈등으로 장기간 표류하는 가운데, 순천시가 '500병상 이상 대학병원을 먼저 구축하는 단계적 추진' 방안을 공식적으로 제시했다.
수개월째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의대 설립 논의에 현실적인 해법을 제안한 것이어서 향후 전환점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9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전남 국립의대는 지난해 국립순천대학교와 국립목포대학교가 대학 통합을 전제로 공동 추진에 합의하면서 지역에서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통합 논의는 의대 소재지와 대학본부 위치, 대학병원 건립지를 둘러싼 이견에 가로막혔다.
교육부는 통합 신청 과정에서 대학본부 위치를 명확히 할 것을 요구했지만, 양 대학은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대학본부를 어느 지역에 둘 것인지가 의대 캠퍼스와 직결되는 문제로 이어지면서 협상은 평행선을 달렸다.
순천대는 지난 4월 공식 입장문을 통해 "의대 소재지를 대학 간 협상만으로 결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먼저 동·서부권 대학병원 설립과 이원화 교육 체계를 확약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타 지역 대학병원의 분원 형태가 아닌 권역별 독립적인 대학병원을 구축해야 지역완결형 의료 체계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목포대 측은 의대 운영 체계와 교육방식에 대한 순천대의 선행 조건에 난색을 보였고, 양측 협상은 결국 중단됐다. 당초 추진했던 통합대학 출범 일정도 사실상 차질을 빚게 됐다.
정치권에서도 다양한 해법이 제시됐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동·서부권에 각각 대학병원을 건립하는 구상을 내놨고, 의대 정원을 권역별로 나누는 방안도 거론됐다. 그러나 교육계와 의료계에서는 100명 안팎의 의대 정원을 단순 분산할 경우 교육의 질 저하와 교수진 확보,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인증 기준 충족 등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이어가면서 지역 사회에서는 "의대 문제가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소모적인 지역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동부권 주민들은 무엇보다 상급종합병원 수준의 의료기관이 없어 중증환자들이 광주나 수도권으로 원정 진료를 떠나는 현실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순천시 연향동 A 씨는 "작년 5월 쯤 지역 병원에서 몸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모든 검사를 다 했다. 그런데 대학병원 등 큰 병원으로 다시 가보라고 했다"며 "서울 큰 병원에 진료 예약을 하고 한 달여를 기다렸고, 처음부터 다시 모든 검사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불편은 의료 문제다. 큰 병원 진료를 기다리다 병증은 더 악화되고, 환자와 가족들은 경제적인 문제 등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대학병원이 됐든, 의대가 됐든 지역 갈등을 해소하고 시민들 건강권부터 지켜져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가운데 순천시가 이날 전남 동부권 국립의대와 대학병원 설립의 기본 원칙을 발표했다.
순천시가 발표한 내용의 핵심은 국가 의학교육 인증 기준에 맞는 500병상 이상 규모의 주 교육병원을 우선 확보한 뒤 의학교육과 병원 기능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현실적 추진 전략이다.
정부의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에 따르면 국립의과대학은 500병상 이상 주 교육병원을 갖춰야 하며, 병원 내 임상교육본부가 설치되면 의대생의 약 4분의 3이 병원에서 교육과 임상실습을 하게 된다. 순천시는 이 기준을 충족하는 대학병원 확보가 의대 설립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순천시는 현재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국립순천대학교와 협력해 2030년 국립의대 정원 100명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여수·광양 국가산단과 경남 서부권까지 아우르는 광역 의료 수요를 고려하면 동부권 대학병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입장이다.
특히 막대한 사업비와 국가 병상수급계획 등을 고려할 때 동·서부권에 동일 규모의 대학병원을 동시에 건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판단 아래 △단계적 대학병원 건립 △의료 수요가 높은 지역 우선 완성 △의학교육 기능과 병원 기능의 순차적 확대 등을 추진 원칙으로 제시했다.
전남광주시도 특별시 재정과 통합지원금을 활용한 기금 조성 등을 통해 대학병원 건립을 지원하고 정부 국비 확보에도 나설 계획이다.
지역 사회에서는 순천시의 이번 발표가 그동안 원칙론에 머물렀던 의대 논의를 구체적인 실행 전략으로 연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다만, 의대 정원 배정과 대학 통합, 정부 승인 등 핵심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중앙정부가 더 이상 대학 간 협상에만 맡기지 말고 국가 차원의 로드맵과 재정 지원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2캠퍼스·2병원', '의대 정원 절반 배분' 등 다양한 구상이 쏟아졌지만 정부 차원의 확정안은 나오지 않았고, 지역 사회에서는 '의대가 정치 쟁점으로만 소비되고 있다'는 피로감이 커졌다.
순천시 관계자는 "의료는 정치적 논리가 아니라 시민의 생명권과 직결된 문제"라며 "가장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단계적 확충을 통해 전남 동부권 주민들이 더 이상 수도권 원정 진료를 떠나지 않고 지역에서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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