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전
[더버터] ‘2026 더기버스50’ 3차 명단 공개
2026.07.09 05:30
이번 명단에는 김맹근·김태옥·대원스님·문군모·백태규·손단비·손영학·여홍구·오시훈·정혜라 등 10명이 선정됐다. 시각장애인, 지역 사업가, 평범한 직장인, 온라인 강사 등 직업과 경험은 서로 다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의미 있는 나눔을 이어온 기부자들이다.
‘더기버스50’은 더버터가 주최하는 민간 주도 기부문화 확산 캠페인 ‘파이위크(Pie Week)’의 대표 프로젝트다. 파이위크에 참여하는 비영리단체들의 추천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의미 있는 나눔을 실천해온 기부자 50인을 선정해 소개한다.
더기버스50은 비영리단체의 추천과 검토 과정을 거쳐 최종 명단을 선정한다. 이번에 공개된 10명을 포함해 현재까지 총 30명의 기부자가 소개됐으며, 남은 20인은 파이위크 캠페인 홈페이지와 공익섹션 더버터 지면을 통해 순차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선정 과정에서는 지속성, 태도, 스토리, 영향력, 다양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기부 금액의 규모보다 얼마나 오랫동안 나눔을 이어왔는지, 어떤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실천해왔는지, 주변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쳤는지를 중요하게 살핀다.
올해 진행되는 ‘2026 파이위크’에는 총 23개 비영리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구세군, 국경없는의사회, 국제구조위원회, 국제앰네스티, 굿네이버스, 굿피플, 기아대책, 대한사회복지회,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사랑의달팽이, 세이브더칠드런, 아름다운재단, 열매나눔재단, 월드비전, 초록우산, 컨선월드와이드, 플랜인터내셔널코리아, 한국해비타트, 함께하는사랑밭, 환경재단, 홀트아동복지회, IJM코리아(이상 단체명 가나다순) 등이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파이위크 캠페인에 동참한다.
연금으로 모은 500만원, 자선냄비에 담다
김맹근 기부자는 은평의마을에서 생활하는 시각장애인이다. 겨울이면 마을에서 열리는 구세군 자선냄비 시종식에 참여한다. 6년 전 처음 시종식 현장을 지켜보던 날, 그는 “나도 나보다 더 어렵고 소외된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빈곤과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온 그는 도움의 손길이 얼마나 절실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2020년 12월 첫 기부를 시작한 김 기부자는 매달 조금씩 돈을 모아 자선냄비 시종식에서 100만원씩 기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 누적 500만원을 나눴다. 장애인연금과 노령연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형편이라 기부를 결심하기까지 망설임도 있었다. 그러나 기부를 할수록 마음은 채워진다. 김 기부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새로운 삶의 가치를 느꼈다”고 했다.
지역 학생들에게 ‘입학 축하금’을 주다
매년 전북 완주군 용진읍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입학생들은 ‘입학 축하금’을 받는다. 지역에서 낙농 설비 제조기업을 운영하는 김태옥 서진이엔지 대표가 아이들의 새 출발을 응원하며 마련한 축하금이다. 초등학생에게는 10만원, 중학생에게는 5만원이 전달된다.
김 기부자가 지역에서 이런 나눔을 시작한 건 2019년이다. 소멸 위기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인으로서 지역의 미래는 결국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2024년부터는 국내 다른 지역과 해외로도 시선을 넓혔다. 국내외 위기가정 아동을 위해 굿네이버스를 통해 약 1400만원을 후원했다.
사업 초기에는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노력 끝에 사업이 안정되자마자 곧바로 나눔을 실천했다. 김 기부자는 “지금도 사업이 어려울 때가 있지만 기회가 닿는 대로 더 기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눔은 결국 나를 향한 수련입니다”
“나눔은 더 가지려고 애쓰는 삶에서 한걸음 물러나, 나와 남이 숨 쉴 자리를 남겨두는 일이에요. 순간순간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나아가면 나눔은 결국 나를 향항 자비행(慈悲行)임을 깨닫게 됩니다.”
대원스님은 국경없는의사회 고액후원자 모임 ‘샹프론티에르 클럽’ 멤버로, 8년째 의료구호 활동을 후원하고 있다. 이념과 사상을 떠나 가장 위험한 곳에서, 고통 속에 놓인 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자비로운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서다. 대원스님은 “병고의 고통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으며 여기에 경제적 어려움마저 있다면 그 고통은 엄청나다”며 “이런 사람들에게 빛을 전하는 훌륭한 분들에게 작은 손길을 내민 것 뿐”이라고 기부의 이유를 설명했다.
대원스님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동국대학교에도 지난 31년간 총 7억원의 장학금을 기부하며 교육 분야에 오랜 지원을 이어왔다.
폭력을 막는 시스템에 힘을 보태다
문군모 기부자는 법과 제도가 한 사람의 삶을 지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경험했다. 자원 무역 사업을 하던 그는 18년 전 경쟁 업체들의 허위 고소로 법정에 서야 했다. 출국금지로 해외 사업도 챙길 수 없게 됐다. 4년 만에 무혐의 판결을 받았지만 결국 큰 손해를 안고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때 그는 억울한 상황에 놓인 사람을 지켜주는 시스템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약 3년 전 IJM코리아 후원을 시작한 것도 이 경험 때문이었다.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에 노출된 피해 아동들이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그는 피해자를 구조하는 데서 나아가 폭력을 막을 시스템을 만드는 IJM의 활동에 공감했다. 문 기부자는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힘을 보태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아이들이 다시 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기부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고액기부자가 된 ‘10수생’
백태규 기부자는 긴 실패의 시간을 지나 교육 기업가가 됐다. 의사의 꿈을 품고 수능에 여러 차례 도전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한동안 깊은 좌절 속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다시 일어선 그는 2012년 잇올을 창업해 연매출 830억원 규모의 교육 기업으로 키웠다.
성공 이후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나눔’이었다. 지금까지 27만 명의 장학생을 지원했다.
보호종료아동, 학교 밖 청소년, 개발도상국 아동 등을 위한 기부와 봉사도 이어왔다.
고액 기부와 봉사활동 참여로 기아대책의 ‘필란트로피 클럽’ 회원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기부와 봉사를 많이 할수록 에너지를 받고, 사업도 더 성장하고 있다”며 “앞으로의 삶도 세상을 살리는 데 쓰고 싶다”고 말했다.
“혼자만 편하게 사는 삶이 무슨 의미인가요”
15년 전, 대학생이던 손단비 기부자는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월급에서 학자금과 생활비를 빼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부를 하고 싶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못 할 것 같다”는 마음으로 아름다운재단에 기부를 시작했다. 2년 뒤 직장인이 된 뒤에는 기부금을 늘렸다. 매달 소득의 1%를 나누기로 했다. 그로부터 3년 후 결혼을 앞두고는 배우자에게 “따뜻한 시작이 우리 인생을 응원하는 힘이 될 것 같다”며 “조금이라도 여유 있을 때 기부하자”고 제안했다. 예비 신랑은 흔쾌히 동의했다.
이렇게 2011년 2월부터 이어온 정기기부는 어느덧 16년 차가 됐다. 결혼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에는 일시기부도 더했다. 현재 그는 서울의 한 장애인복지관에서 인권 교육 사업을 맡고 있다. “나 혼자 편하게 잘 살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모두 함께 잘 살고 싶은 제 마음의 방에 항상 불을 켜두고 싶어요.”
20년간 이어온 방글라데시와의 인연
손영학 후원자가 방글라데시와 처음 연결된 건 2006년이었다. 플랜인터내셔널코리아를 통해 오지 마을에 사는 열두 살 여자아이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이후 두 아이를 더 후원했다. 시골 마을에서 어렵게 자란 손 후원자는 “아이들을 보면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고 했다.
방글라데시의 마을도 직접 찾아간다. 지난 20년 동안 10차례 넘게 비행기에 올랐다. 극심한 매연과 불편한 교통을 감수해야 하지만 매일 조금씩 아껴 모은 돈으로 2년에 한 번씩 축구공, 배드민턴 라켓, 학용품 등 선물을 한가득 챙겨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70대 초반이 된 손 기부자는 “앞으로 최소 다섯 번은 더 방글라데시를 찾고 싶다”고 했다. “럭셔리한 크루즈 여행을 가는 것보다 고물 버스를 타고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게 더 좋아요. 후원받은 아이들이 언젠가 누구에게나 따뜻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요.”
현금 6000만원 들고 NGO를 찾아간 이유
여홍구 기부자는 현금 6000만원을 들고 세이브더칠드런 본사를 찾았다. 7년 전 겨울, 작은 식품회사에 취직한 지 얼마 안 된 사회초년생 시절이었다. 돈은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했다. 월 3만원에서 월 15만원까지 정기기부금을 조금씩 늘리다가 결심한 일시 기부였다. 6000만원은 여 기부자가 그동안 모은 전 재산이었다.
지금도 그는 형편이 될 때마다 기부한다. 많으면 수백만원씩 전달하다 보니 누적 금액이 1억원이 됐다. 그래도 여전히 케어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여 기부자 눈에 자꾸 밟힌다. 주변에서는 “너무 기부 많이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여씨는 “아직 젊고 건강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고 대꾸한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여유가 있을 때마다 계속 기부하며 살고 싶어요.”
‘청년의 집’ 고민하는 공인중개사 1타 강사
공인중개사 부동산공법 강의 ‘1타 강사’인 오시훈 기부자는 자립준비청년들의 홀로서기를 돕고 있다. 특강과 책 판매를 통해 얻은 수익을 홀트아동복지회에 기부한다. 2023년 12월 2000만원을 처음 후원한 뒤 꾸준히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자립준비청년을 대상으로 부동산·경제금융 특강을 재능기부하고, 주거 문제와 전세사기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멘토링도 한다. 그의 나눔은 수강생들에게도 확산되고 있다.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한 뒤 그를 따라 기부에 동참하거나, 자신이 활동하는 지역에서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무료 자문을 제공하는 수강생도 늘고 있다. 그는 “가르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만드는 일”이라며 “앞으로 기부금을 계속 늘려 언젠가는 1년에 1억원씩 기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밥 한 줄 못 싸주던 엄마의 나눔
세 자녀를 홀로 키우는 일은 무엇 하나 쉽지 않았다. 한부모가정의 가장이었던 정혜라 기부자는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늘 버거웠다. 교회 식당에서 봉사하고 받아온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고, 아이들 소풍날엔 속이 꽉 찬 김밥 한 줄을 싸주지 못했다. 작은 도움이라도 받고 싶어 동사무소를 찾았지만 형편을 증명하지 못해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다. 하지만 반찬을 나눠주고 손을 내밀어준 이웃들 덕분에 어두운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다.
작은 가게를 열고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자마자 정 기부자는 나눔을 시작했다. 2005년부터 지역아동센터을 후원하면서 주변인들과 ‘봉사회’도 만들었다. 매사에 감사한 마음이 생기면서 삶은 더 긍정적으로 변했다. 기부도 늘렸다. 2023년에는 대한사회복지회에 정기기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대한사회복지회 강원지역 후원회장까지 맡아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눔을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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