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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버터] 보청기를 끼고 ‘DAY6’ 콘서트에 가다

2026.07.09 05:30

난청인 위한 청취보조시스템 도입
DAY6 데뷔 10주년 서울 콘서트 현장

DAY6(데이식스)의 데뷔 10주년 콘서트가 열린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보청기와 인공와우를 착용한 난청인 관객들이 청취보조시스템 ‘오라캐스트’로 공연을 즐기고 있다.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음악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려워요.”

유은아(가명·28)씨가 말했다. 은아씨는 중증 청각장애인이다. 보청기가 없으면 일상적인 대화조차 어렵지만 음악은 늘 곁에 두고 산다. K팝 밴드인 DAY6(데이식스)의 열성팬이기도 하다.

“데이식스를 좋아하게 되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어폰으로 듣는 것도 이렇게 좋은데 공연장에서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3일 데이식스의 데뷔 10주년 콘서트가 열린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KSPO DOME)에서 은아씨를 만났다. 데이식스 팬임을 인증하는 민트색 ‘마데워치(응원봉)’를 왼손에 차고 있었다.

은아씨를 포함해 7명의 난청인이 약속한 부스 앞에 모였다. JYP엔터테인먼트와 사단법인 히어사이클의 협업으로 진행하는 ‘청각 접근성 개선 프로젝트’ 참가자들이다. 난청인 관객이 공연을 선명하게 들을 수 있게 도와주는 최신 청취보조시스템 ‘오라캐스트(Auracast)’를 공연장에 설치하는 프로젝트다.

청각장애인이 공연장에 가는 이유
‘마데워치(데이식스 응원봉)’를 손목에 찬 난청인 관객이 오라캐스트 수신기를 들고 소리를 듣는 모습.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본격적인 ‘K팝 시대’가 열렸지만 국내 난청인은 여전히 공연 문화에서 소외돼 있다. 2026년 기준 우리나라 난청 인구는 300만명. 일상에서는 보청기나 인공와우를 통해 음악을 듣지만 공연장에서는 불가능하다. 스피커에서 나온 소리가 벽과 천장에 부딪혀 울리는 반향(소리울림) 때문에 아티스트의 목소리도 악기 소리도 제대로 들을 수가 없다.

은아씨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기대를 안고 콘서트장에 갔지만 팬들의 함성과 밴드 사운드, 주변 소음들이 뒤섞여 웅웅거리는 소리로 들리거나 가사를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래도 계속 공연을 보러 갔어요. 비록 다 이해하진 못해도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며 음악을 느끼는 그 자체로 행복하니까요.”

오라캐스트는 공연장의 반향과 소음 문제를 해결해 주는 새로운 기술이다. 국내에서는 사단법인 히어사이클이 오라캐스트 보급을 이끌고 있다. 히어사이클은 난청인의 청취 환경을 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공익법인으로, 청각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한 우승호 대표가 해외에서 직접 기기를 구입해 들여왔다.

“쉽게 설명하면 오라캐스트는 공연하는 가수의 목소리와 악기 소리만을 잡아내 난청인의 보청기로 직접 전달해 주는 기술입니다. 주변 잡음을 차단해 선명하게 들려주는 노이즈캔슬링 기술과 비슷합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히어사이클에 협력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K팝 공연장 최초로 난청인을 위한 청취보조시스템을 도입하는 사회공헌 사업을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공연 접근성 개선은 음악 회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정성 있는 CSR(기업의 사회적책임) 활동이라는 판단이었다.

지난 5월 데이식스 원필의 솔로 콘서트에서 오라캐스트를 시범 도입한 데 이어, 이번 데이식스 데뷔 10주년 서울 콘서트에서는 규모를 확대해 운영했다. 7월 3일부터 사흘간 21명의 난청인 관객을 초청해 오라캐스트 서비스를 제공했다.

꿍빡! 드럼 소리가 귀에 꽂혔다
엄마와 함께 공연을 보러 온 중학교 3학년 박민호(가명)군은 인공와우를 착용하고 있었다. 콘서트에 온 것도 처음이고, 음악도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닌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공연장에 꼭 가고 싶다고 엄마를 졸랐다.

오라캐스트 수신기를 통해 민호의 인공와우 기기로 노랫소리가 전달됐다. 조금씩 음악을 느끼며 민호가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음악을 멀리했던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다.

은아씨도 한 손에는 응원봉을 다른 손에는 수신기를 들고 신나게 공연을 즐겼다.

“데이식스 노래 중에 ‘Congratulations’이라는 곡이 있어요. 노래가 시작될 때, 팬들이 흔히 ‘쿵빡’이라고 표현하는 상징적인 드럼 연주가 있거든요. 이번 공연을 듣는데 그 드럼 연주가 그대로 딱 들려서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그는 “오라캐스트를 연결하는 순간 주변 소음이 모두 차단되면서 공연 사운드만 보청기로 들어왔다”면서 “그동안 다른 팬들이 남긴 공연 후기를 보며 멤버들의 멘트, 보컬, 악기 연주를 생생하게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공연으로 아쉬움이 많이 해소됐다”며 웃었다.

JYP와 히어사이클이 진행하는 ‘청각 접근성 개선 프로젝트’에서 난청인 관객들에게 지급되는 수신기와 안내문.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장애와 인권에 대한 JYP 아티스트들의 관심은 이번 프로젝트의 토대가 됐다. 특히 원필은 오래전부터 청각장애와 수어에 대한 관심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왔다. 김미경 JYP엔터테인먼트 지속가능경영팀장은 “더 많은 팬과 음악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아티스트들의 의지를 공연 접근성 확대 프로젝트로 연결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누구도 소리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사회’라는 이번 프로젝트의 비전은 팬들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난청인을 위한 이번 프로젝트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소셜 미디어와 팬 커뮤니티에는 “원필의 꿈이 이뤄지는구나” “이런 프로젝트를 하는 데이식스가 자랑스럽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K팝 팬덤은 공익 활동의 진정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티스트가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의제가 실제 활동으로 이어질 때 팬들은 지지와 공감을 드러낸다. 이번 프로젝트가 호응을 얻은 것도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즐기는 공연 문화를 만들기 위한 진정성 있는 실천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K팝이 만드는 ‘인프라 필란트로피’
난청인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전혀 들리지 않는 사람, 거의 안 들리는 사람, 한쪽만 들리는 사람,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보청기를 착용하는 사람,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사람 등 청취 방식과 특성이 모두 다르다 보니 오라캐스트를 도입하고 적용할 때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공연 당일 원활한 송수신을 위해서는 난청인 관객들이 사용하는 청각보조기기의 기종부터 전부 파악해야 한다. 오라캐스트를 보청기나 인공와우와 연결하려면 기기 내 텔레코일(T모드) 기능이 활성화돼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것도 체크해야 한다. 송수신을 위해 필요한 악세사리들도 미리 구비해 둬야 한다.

우승호 대표는 “클래식 공연이나 다른 공연에 비해 K팝 공연은 변수가 훨씬 많고 복잡하다”고 말했다. “파일럿으로 진행한 5월 콘서트 때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리허설할 때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공연이 시작되자 바로 문제가 생겼어요. 팬들이 들고 있는 응원봉이 원인이었죠.”

응원봉이 모두 블루투스 기반이라 오라캐스트 송수신에 간섭이 생기면서 수신이 끊기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송신기를 두 대로 늘리고 난청인 관객들을 콘솔 근처 자리로 최대한 이동시켰다. 데이식스 10주년 공연 때도 비슷한 이슈가 있었지만, 수신기 위치를 조정하고 공연장 내 전파 환경을 점검하며 시스템을 안정화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난청인 팬과 비난청인 팬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연을 경험할 수 있도록 공연장의 환경과 시스템을 바꾸는 ‘인프라 필란트로피(Philanthropy)’로 주목받고 있다. 사각지대에 놓인 청각장애인에게 물품이나 서비스를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연장 자체의 접근성을 높여 더 많은 사람이 문화를 즐길 수 있게 하는 지속가능한 사회공헌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7월 10~12일 열리는 트와이스 콘서트와 7월 25~8월 2일 열리는 스트레이 키즈 콘서트에서도 오라캐스트를 도입할 예정이다. K팝의 영향력이 음악을 넘어 다양성과 포용성을 실현하는 도구로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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