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는 동맹을 이기지 못했다…캐나다 잠수함 수주 실패가 남긴 것
2026.07.09 05:02
60조원 규모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은 한국 방산의 한계를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이다. 한화오션은 검증된 잠수함 플랫폼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웠지만 우선협상대상자 자리는 독일 TKMS에 돌아갔다.
성패를 가른 것은 잠수함 성능보다 안보 동맹과 외교, 절충교역을 결합한 국가 패키지였다. 캐나다 수주전은 ‘잘 만드는 나라’에서 ‘함께 싸우는 나라’로 방산 경쟁의 기준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이 싸고 빠르게 잘 만드는데, 왜 독일이 이겼나
전문가들은 캐나다 수주전 패배의 근본적 원인으로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로 대변되는 서방 핵심 정보 동맹의 폐쇄성을 꼽는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구성된 파이브 아이즈는 군사기밀과 최고 등급 신호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철통 같은 카르텔이다.
한국이 아무리 배를 싸고 빠르게 만들어도 정보 동맹 바깥의 국가라는 태생적 한계 탓에 오타와 안보라인의 최종 승인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다. 독일은 이 장벽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자국과 노르웨이가 추진 중인 212CD 잠수함 사업을 캐나다까지 연결해 ‘24척 규모의 나토 북극해 공동 함대’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잠수함 공급과 MRO, 공동 작전, 정보 공유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었다. 노르웨이가 인도받을 예정이던 선도함 물량까지 캐나다에 먼저 양보하는 파격 조건도 보탰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선정 배경으로 나토 상호운용성을 가장 먼저 언급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카니 총리는 “TKMS 플랫폼은 나토와 완전한 상호운용성을 갖춰 통신과 정보 공유, 합동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무기를 단순히 사고파는 ‘방산 1.5’ 수준의 상업 세일즈로는 국가의 명운이 걸린 다자간 정보·안보 동맹 블록화를 넘어서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교훈이다.
유럽·북미 수주전 4연패가 말해주는 것
캐나다 잠수함 사업은 최근 1년간 한국 방산이 서방권 시장에서 마주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성능과 가격 경쟁력에서는 밀리지 않았지만 최종 선택은 대부분 안보 동맹과 역내 공급망을 갖춘 경쟁국으로 향했다.
지난해 8조원 규모의 폴란드 차세대 잠수함 사업에서는 한화오션이 스웨덴 사브에 고배를 마셨다. 올해 5월 6조원 규모의 루마니아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IFV) 사업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레드백이 가격 경쟁력과 높은 현지화 조건을 제시했음에도 독일 라인메탈이 최종 계약을 따냈다.
6월 프랑스 다연장로켓체계(MLRS) 후속 사업 역시 영국·프랑스 컨소시엄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까지 더하면 한국 방산은 유럽·북미 주요 시장에서 사실상 4연패를 기록한 셈이다.
EU의 역내 우선 조달 정책과 공동 방산 육성 전략, 나토 회원국 간 상호운용성 강화가 입찰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EU의 공동 방산 조달 프로그램 SAFE다. 역내 기업 제품을 공동 구매하면 저금리 금융을 지원하는 구조여서 비유럽 국가인 한국은 입찰 단계부터 불리한 조건에 놓였다.
캐나다 역시 SAFE 참여를 통해 EU 및 나토와의 방산 협력을 강화했다. 절충교역도 성패를 가른 변수였다. 캐나다는 계약금액의 100%를 자국 산업에 환원하는 절충교역을 핵심 평가 기준으로 제시했다.
한화오션은 현지 기업과 연간 1200만 톤 규모의 부유식 LNG 생산설비(FLNG) 구축 사업을 추진하고 캐나다 자동차부품협회(APMA)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K9 자주포와 천무 등을 현지 생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술 경쟁력은 절대 뒤지지 않았다. 해군은 지난 5월 3000톤급 도산안창호함에 캐나다 해군 장병을 태워 태평양을 횡단하는 이례적인 ‘잠수함 쇼케이스’를 진행하며 실전 운용 능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캐나다가 원하는 절충교역의 방향은 한국이 제시한 산업 협력보다 한발 더 나아가 있었다. 독일은 핵심 광물 공급망 연계와 북극 기지 현대화 참여, 방산 공급망 통합 등 안보와 산업을 결합한 절충교역 패키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한국 역시 다양한 산업 협력안을 제시했지만 캐나다가 전략적으로 요구한 절충교역의 무게중심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는 평가다. 나토 동맹이라는 구조적 우위가 출발선부터 존재했던 데다 캐나다가 원하는 안보 결합형 절충교역까지 독일이 선점하면서 한국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은 끝내 결정적 변수가 되지 못했다.
‘나누크 작전’이 던진 질문
지난 2월 열린 한·캐 외교·국방(2+2) 회의는 이번 사업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단서로 꼽힌다. 캐나다는 러시아 견제를 위한 북극 연합훈련인 ‘나누크 작전’ 참여 확대를 한국에 요구했다.
단순한 군사훈련 초청이 아니었다. 러시아의 핵추진잠수함 활동을 견제해야 하는 캐나다로서는 ‘우리와 함께 북극해 냉전 전선에서 피를 흘릴 안보 파트너가 될 수 있느냐’를 묻는 외교적 신호였다.
정부는 참여 확대를 검토하겠다는 수준의 답변에 머문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가에서는 캐나다가 원한 것은 잠수함 성능 설명이 아니라 북극에서 함께 행동할 국가적 의지였다고 평가한다.
방산 수출은 외교와 군사 협력이 결합하는 국가 총력전이다. 반면 한국은 기업이 전면에 나서고 정부가 뒤에서 보조하는 과거의 ‘수출역군’ 모델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차순위’ 희망 고문 넘어 서방 안보 블록 속으로
카니 총리는 한국을 차순위 후보로 남겨뒀다. 표면적으로는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처럼 들린다. 업계의 해석은 다르다. 독일과 최종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협상력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라는 시각이다. 개발 일정과 비용 증가 가능성을 감안하면 캐나다로서는 언제든 선택 가능한 대안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선협상대상자가 뒤집히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차순위 후보라는 표현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다른 시장 공략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성능 좋은 무기를 싸게 판다’는 제조업 마인드로는 서방 시장의 견고한 빗장을 열기 어렵다. 무기와 함께 동맹의 가치를 제안하는 국가만이 다음 계약서를 가져갈 수 있다.
이제는 무기 단품을 파는 시대를 넘어 군사·외교·금융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방산 2.0’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7월 7일(현지 시간) 나토 방위산업포럼 기조연설에 나선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나토 방산협력 파트너십 2.0’을 제안했다.
기존 무기체계 중심의 단순 판매를 넘어 공동 연구개발과 공동생산, 공동운용, 장기 산업협력으로 외교·군사적 결속을 고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호주가 오커스(AUKUS)를 통해 서방 안보 블록에 안착했듯, 파이브 아이즈 등 최고 등급 정보 동맹과의 다자간 협력 확대로 ‘안보 밀착도’를 끌어올리는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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